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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교실쌤들의 마공이야기

프로님 마음 비우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2. 22. 00:01

  방학이라 학생들을 만날 일은 없고, 겨울 방학 때 제가 딱 하나 한 것이 있는데 바로 '골프' 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안전한 스포츠는 골프 밖에 없다며 잘 치게 되면 좋은 곳에서 머리를 올려준다(골프장에 처음 진출하는 것의 은어)는 아버지의 말씀에 작년 봄에 골프연습장을 등록 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신식 시설과 집에서 차로 15분이 걸리는 먼 거리, 옆에서 공을 뻥뻥 날리는 프로같이 잘 치는 사람들, 5분 잠깐 봐주고 "혼자 하실 수 있죠?" 하면서 가시는 저보다 어린 프로선생님에 '이 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라며 그만두길 약 8개월, 아버지의 성화로 다시 골프연습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간 곳은 집 근처의 40년 이상 된 낡은 골프 연습장, 저는 꾸준하게 골프를 배울 수 있을까요?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처음 골프장에 간 날, 그냥 보아도 저희 어머니 또래는 넘어보이시는 언니(이모는 아니라고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심)들과 각 분야의 회장님, 사장님 등 삼촌들이 너무 푸근하게 맞아주시는 덕분에 '이 곳은 거기랑 달리 괜찮겠다!'라고 생각을 했고 골프연습장의 따뜻한 분위기에 저도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적응했던 이유는 80세가 넘으신 프로님 덕분인데요. 둘째 날에 프로님 84세이신데 정정하시다며 제가 농담을 하니 어디 2살이나 올리냐며 화를 내시던, 구력만 자그마치 50년이 되신 올해 82세의 프로님(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동네의 명칭을 이름으로 갖고 계심)과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주 동안 매일매일 골프를 치러 가면서 언니들 삼촌들과 안면도 트고 프로님과 가까워진 어느 날, 프로님께서 제 차를 타고 집에 가셨습니다. 댁이 멀면 부탁도 안 할 분이신데 마침 제 집도 근처라 이동하면서 대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프로님, 그러면 지금은 따님 장사하시는 오리고기 집에 가는거지요?"

 "응 맞다, 예슬아. 우리 딸 집인데 장사 잘 된다. 나는 평일에는 오전에 골프하다가 오후에 딸네 집에 출근해서 일도 도와주고 나는 그 근처에 빌라에 살고, 맨날 골프장이랑 딸 가게 가고 그러지."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골프장 출근하셔서 요즘은 날도 추운데 힘들지 않으세요?"

 "요즘은 추워서 좀 힘들지만 재미있다. 그런데 좀... 외롭다."

 "많이 외로우신가요? 프로님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결혼하고 26살에 결혼했는데 아내가 22살 때 나한테 시집을 왔거든. 근데 결혼하고 4년 만에 아내가 병에 걸려서 꼬박 30년을 넘게 병수발하다가 일찍 갔다아이가. 그리고 일한다고 정신 없이 살다가... 아들, 딸 장가 시집 다 보냈는데 둘 다 이혼하고 요즘은 아들은 뒤늦게 방황하는지 쓸 데 없는 짓만 하고 있고. 그래도 딸래미는 뒤늦게 오리고기 집 열어서 해보겠다고 해서 다행히 잘 되어서 일도 도와주고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혼자이셔서 외로우셨나봐요. 거기다가 따님 아드님도 챙기셔야 하니 가끔은 버겁고 고단하실 것 같기도 하고... 요즘엔 날까지 추우니까 더 그러시죠?"

 "맞다. 힘들 때도 있고 헛헛하고 사무치게 외롭지. 그래도 일주일에 1번은 손자, 손녀보러 가거든. 손녀는 중학교 3학년이고 손자는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인데 190cm 거구다."

 "와 진짜요?? 체격이 너무 좋은데요. 프로님, 외로우신데 그래도 손자, 손녀들 보시면 흐뭇하고 든든하시겠어요."

 "응 그렇지."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쳤는데, 창 밖에 오리고기집이 보였고 누가봐도 프로님과 닮은 따님이 서 계셨습니다. 그날 인사드리고 가게까지 잘 모셔드리고 갑자기 코로나 의심 증상(감기증상)이 와서 나흘동안 공을 치러 못 가고 있는데 프로님이 어제 전화오셔서 하시는 말씀,

 "예슬이 못 봐서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빨리 나아서 공 치러 오이라~"

  저도 그날 프로님 인생 얘기와 속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프로님과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마음에 흐뭇하고 흡족했습니다. 다시 만나면 이런 제 마음을 알려드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