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제164호. 내 생각의 껍질을 벗고 실제와 만나기

홍석연(봄) 2021. 6. 3. 14:22

박모정 (봄비)

 

며칠 전부터 이상한 감정들이 나를 찾아왔다.

 

힘겨운 상황에 대한 섭섭함이나 서운함, 원망 대신수치심, 막막함, 버거움, 힘겨움, 진공상태의 무기력감, 무거움과 자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체중이 줄었고 웃는 표정 하는 것이 힘들었다.

 

손이 놀랄만큼 차고 석 달째 새벽마다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무섭고(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눈길을 확인하는 것이 두렵다.)

 

교실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도 불안하고 긴장되고 무섭다. 맹수 우리에 갇힌 병아리 같은 심정이다.

 

예전에도 느꼈던 익숙한 감정들이다. 또 찾아왔구나. 과거, 내가 이 감정들 안에서 살 때는 정말 이 감정들이 전부 진실이고 그래서 나는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감정들을 바라보는 나는지금 내 에너지가 많이 떨어져서 잠시 침잠해 있다고 느끼고 있고 이 감정들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또 언제그랬냐는 듯 건강한 삶 속으로 복귀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마리연수에서 돌아오는 차안.창문에 비친 밤 풍경들을 바라보며 편안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작은 결심을 해본다.시선을 잠시만 돌려 내 껍질을 열고 밖으로 나가 실제 사람들을 만나 확인해보기.

 

돌아오니 남편의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인사를 주고받았지만 표정이 없어보인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아이들도 별 말 없이 조용히 밥을 먹고있다.

 

지친 아빠에게 싫은 소리를 잔뜩 들은 것 같다. 순간 내가 연수에 다녀오느라 남편이 아이 셋 데리고 지지고 볶느라 힘들었을테고 아이들도 아빠의 짜증을 받아내느라 고통스러웠을거라 여겨졌다.

 

그리고 다음 번 연수에는 상황봐서 그냥 집에 있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야. 많이 힘들었어?" 내가 묻자

 

"어..힘들어..허리가 좀 아프네" 한다.

 

나는 지난 겨울처럼 또 남편이 119에 실려가는 상황이 발생할까 무서웠다.

 

그리고 사실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연수가는 바람에 자기가 힘든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우성이가 아직은 많이 어린데 내가 너무 욕심 냈나봐"

 

"아니아니. 그건 아니야. 난 자기가 다녀오는 건 좋아. 허리가 또 안 좋아져서 기분이 좀 내려간 거야."

 

"내가 연수에 가면 뭐가 좋은데?"

 

"애들도 자기 영향 받아서 자기 감정표현 잘 하고 서로 싸울 때 예쁘게 화해도 하잖아. 우리집이랑 자기집 부모님께도 좋고~그래서 나는 좋아. 그냥 다녔으면 좋겠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를 안심시키고 배려하려는 남편의 참는 마음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남편이 힘들었을 것 같은 이유를 몇 가지 더 물어보았다.

 

"애들이 힘들게 했나봐. 자기 표정이 넘 지쳐보인다"

 

"난 애들이 뭐 흘리고 쏟고 싸우면 한숨이 나오고 화가 나. 그런데 애들이 흘리고 나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내 눈치를 살피는 걸 보면 자책이 또 돼. 애들하고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쓰리고 아프고 안쓰러웠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첫째와 둘째가 다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엔 둘째가 와서 내게 "엄마~~누나가~~"하고 눈물을 흘린다. 가서 배운 대로 갈등을 중재해 보았다.

 

서로 째려보던 아이들이 서로의 입장을 들으며 감정이 내려간 것이 확인되었다.

 

마지막에는 이렇게 중재한 엄마에 대한 마음도 듣고 싶었는데 갑자기 둘째가 다음에 또 싸우면 자기들끼리 이 방법으로 해결해보겠다고 하여 그거 칭찬해주다가 내 인정받는 걸 또 까먹었다. 까먹어도 괜찮았다.

 

다음날 학교에서회의를 하다 늦게 수업에 들어갔는데 한 아이가 노골적으로 내게 기분나쁜 티를 내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내 농담에 연필을 부러뜨리고 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모습에 머리가 그만 얼어버렸다.

 

겁도 났다.

 

수업이 끝난 후 그 아이를 불러 물어보았다.

 

"샘이 아까 보니까 네가 무척 화가 난 것 같아 샘은 두렵고 무서웠고 무슨 일일까 궁금했어"

 

"아, 아니에요. 옆친구한테 짜증난 마음을 장난식으로 표현했던 건데~"한다.

 

내 이야기를 듣고 미안해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기분이 나아졌다.

 

무섭고 두려운데 못본척 하고 나왔더라면 계속 마음 쓰이고 찜찜했을 것 같았다.

 

다행이다. 훌훌 털어버리듯 글을 쓰니 홀가분하고 가볍다.

 

내일이 조금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