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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호. 영진이의 지적, 아프지만 기쁘다.

홍석연(봄) 2021. 5. 18. 13:00

추주연 (단풍나무)

 

원서를 쓰느라 북새통인 교무실로 옆 반 반장인 영진이가 왔다.

 

영진 : 선생님, 제 수행평가 점수가 왜 이따위일까요?

 

이따위라는 표현에 놀랐다. 평소 아주 예의바른 영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영진이가 이따위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니 점수 때문에 많이 놀랐나 보다. 확인해 보고 싶어서 왔다는 거지?

 

근거 서류를 보니 이상이 없다. 다만, A등급을 받아온 영진이가 아깝게 B등급을 받은 것이다.

 

: 과제를 늦게 낸 적이 있었고, 서술형 평가 점수가 한 개 차이로 아깝게 B등급이네. 많이 아쉽고 속상하겠다.

 

영진 : , 좀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급간 차이가 너무 큰 거 아니에요? 그리고 미리 급간 차이에 대해서 말씀 안해 주셔서 이렇게 점수가 나올 줄 몰랐어요. 전 수행평가 이런 점수 처음이에요.

 

: 영진이가 많이 아쉽고, 이런 점수가 처음이라니 놀라고 당황스럽고 속상하겠어. 선생님한테는 서운하고 원망되겠다.

 

영진 : .

 

: 그런데 지금 선생님이 급간의 기준을 알려준 것 이해가 되었어? 선생님도 네 점수가 아주 아깝고 아쉽다. 그런데 기준을 정했고 그 기준대로 할 수밖에 없구나. 듣고 어때?

 

영진 : , .

 

쉬는 시간이 끝나서 일단 영진이는 교실로 돌아갔다. 다음 쉬는 시간에 영진이에게 종례 후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자 그러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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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선생님은 시간 상 영진이 이야기를 충분히 못들어 준 것 같아서 좀 아쉬웠어. 그래서 영진이가 어떤 생각이 드는지 더 듣고 싶은데 들려줄 수 있겠어?

 

영진 : . 저는 하루 늦게 냈지만 아예 안 낸 애들하고 점수가 같은 건 이해가 안돼요.

 

: 넌 하루 늦게라도 냈지만 안 낸 아이들하고 점수가 같은 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나봐? 그랬다면 억울하고 속상하고 못마땅했겠다. 선생님한테 서운했겠어.

 

영진 : ~~~~ .

 

: 대답을 망설이다 하는 것 같은데? 말하기 조심스러워?

 

영진 : 서운한지 생각을 좀 했어요. 좀 서운한 것 같아요.

 

: 그렇구나. 어떤지 살펴봤는데 서운한 맘이 있다는 거지? 그래. 또 다른 생각은?

 

영진 :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급간 점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래. 그럼 한 등급 내려갔을 때 점수 차이가 많이 나니까 더 속상하다는 거지?

 

영진 : .

 

: 그래, 속상하고 급간 차이 큰 건 못마땅하겠다. 또 다른 생각도 있어?

 

영진 : 급간 점수에 대한 안내가 사전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점수가 안나올 거라고 예상을 못했어요.

 

: 예상 못했으니 더 놀라고 당황스러웠겠어. 또 다른 생각도 있어?

 

영진 : 저는 사회과목이 제일 좋아요. 꼭 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하구요. 그래서 시험공부도 사회를 가장 먼저 해요. 그런데 이런 점수가 나와서...

 

: 그래, 영진이가 항상 열심이었지. 제일 좋고 꼭 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했다니 선생님도 기쁘다. 그래서 더 속상했겠네. 이렇게 못마땅한 게 많았는데 말 안하고 어떻게 참았어? 그건 선생님 방식을 존중해주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맞아?

 

영진 : .

 

: 그렇구나. 고맙네. 그리고 하나하나 분명히 제도적인 이야기까지 아쉬운 점을 말하는 영진이가 합리적이고 분명한 사람으로 보여. 또 솔직하게 이야기 해줘서 시원시원했어. 말하고 지금 기분은 어때?

 

영진 : 그냥 그래요. 아무 생각 없는데요?

 

: 그래. 말해서 좀 후련하진 않아?

 

영진 : . 좀이요.

 

: 그렇구나. 선생님은 영진이 이야기 듣고 좀 위축되고 찔리기도 하고 한편으로 억울하기도 해. 그래서 선생님이 몇 가지 확인해 주고 싶은데 괜찮겠어?

 

영진 : .

 

: 우선 하루 늦게 낸 영진이와 아예 안낸 다른 아이들이 있는데 그건 여러 과제와 수업 준비, 태도 부분의 체크내용을 합산해서 하다 보니 과제 제출만 두고 보면 같아 보이겠지만 나머지 내용을 함께 봐야할 부분이거든. 이제까지 과제, 수업준비, 태도가 다 합산된 거니까.

 

그리고 급간은 선생님이 혼자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과 전체에서 함께 정하는 것이고 급간 점수 차가 크다는 건 선생님도 동의가 돼. 급간에 대한 사전 안내가 없었던 건 전체적인 과제 수행 상황을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 미리 발표하지 않은 거야. 너희들 수준과 상태를 고려해서 점수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더 잘 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듣고 어때?

 

영진 : . 이해는 돼요.

 

: 그래? 네 점수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속상할텐데 선생님 말 듣고 이해된다고 하니 안심된다. 지금 기분이나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영진 : . 이제 선생님하고 저하고 더 만나게 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급간 기준에 대한 안내가 미리 되면 좋을 것 같아요.

 

: 네 점수는 받아들이지만 앞으로 선생님이 이후에 급간 기준에 대해 안내하고 아이들이 예상할 수 있게 해서 선생님이 아이들과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말인 것 같은데. 맞아?

 

영진 : . 맞아요. (얼굴이 환해진다.)

 

: 그래, 선생님이 고맙네. 그리고 놀라워. 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살펴보고 더 개선하길 바라고 그래서 선생님이 평가를 통해서 아이들과 불편한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말야. 영진이처럼 분명한 친구들은 미리 안내가 안되면 답답할 것 같아. 그 부분은 선생님 스스로도 좀 아쉽네. 무엇보다도 영진이랑 이런 이야기해서 좋았어. 선생님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었어. 지금은 기분은 좀 어때?

 

영진 : ... 그래도 점수 생각하면 여전히...

 

: 그래? 점수 생각하면 속상하구나. 시험이나 수행평가를 꼼꼼하게 챙기는 영진이라 많이 속상하겠어. 그럼 선생님한테는?

 

영진 :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 그래? 아까는 서운하고 원망되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니 다행이네.

 

영진 : ~ (웃는다.)

 

영진이와의 대화에서 영진이의 이야기들에 수긍이 간다. 올해 여러 가지로 새로운 학교에서 평가 기준 등을 구성원들과 맞추는 과정이 나에게도 아쉬웠기 때문이다. 바쁘고 경황이 없다보니 마지막 평가에서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영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싶었고 제안이나 지적이 비교적 편안하게 들렸다. 한편으로는 아쉽다. 내 상황을 말하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받거나 인정받은 것 같지는 않다.

 

한편으로 아프기도 하지만 영진이의 지적을 받을 수 있는 건 다행스럽고 그런 영진이를 보는 건 기쁘다. 자기 점수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영진이는 참 신뢰롭고 기특하다. 영진이는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은 꿈을 키우는 아이다. 이런 영진이와 배움도 지적도 주고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