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공감교실

따뜻한 협력, 성장의 다살림 공동체

교실 속 관계가 자라는 연수, 배움회원 모집 자세히보기

공감교실쌤들의 마공이야기

사연 모른 채 상담하기_가을하늘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6. 6. 22:39

누군가에게 힘든 일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보통 이렇게 묻는다.
- 무슨 일인데?
왜냐면 무슨 일인지 알아야 공감을 하든 도움을 주든 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배우고 익힌 마음리더십은 굳이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아도 상대를 공감하며 도울 수 있다.

지난 주에 학급 아이 한 명을 상담했다.
나는 고 3이어도 생활, 정서 상담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나는 보통 이런 말로 상담을 시작한다.
- 요즘 어떻게 지내니?

대게는 그냥 뭐 똑같이 지낸다거나 별 일 없다는 식으로 반응하는데 00이는 조금 달랐다.
- 최근에 힘든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평소에 실없이 웃기는 말을 종종 하고 미소가 많은 아이라 나는 00이가 힘들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 어, 그래? 좀 나아졌다니 다행이긴 한데 그동안 힘들었겠구나.
- 네 좀... 종종 우울해지기도 하고...

우울이라는 말에 놀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간 궁금하긴 했으나 구체적인 사연을 묻지는 않았다.
묻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이에게 민감한 문제여서 상대에게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상담이 가능한 걸 알기 때문이다.

- 그래, 네가 우울하기까지 했다니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거기서 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니? 도움 받을 사람이 있었어?
- 네, 친구들한테 이야기 하고 조언도 듣고 그랬어요.
- 그랬구나. 다행이네. 친구들이 네 이야기를 잘 들어줬어?
- 네.
- 그래 좋은 친구들이네. 친구들한테 고맙겠어.
- 네 고맙죠.
- 네가 힘든 일에서 빠져나오는 중이라니까 선생님은 일단 안심이고 네가 참 대견하구나. 왜냐면 너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일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애썼기 때문이야.
- 네..
- 그 과정에서 혼자 해결하려 하지 않고 주변 도움 받은 것도 아주 잘했고.
- 네..

나는 아이에게, 평소 잘 먹고 잘 자는지 몸 컨디션은 어떤지 등을 물으면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까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혹시나 아이 입장에서는 ‘왜 선생님은 무슨 일인지 묻지 않지?’하고 의아해 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을까 조금 조심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상담을 하는 동안 아이 표정이 딱히 불편해 보이지는 않아서 사실을 묻지 않는 상황이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확인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이 글을 쓰기 전에 아이에게 톡을 보내 물었다.
- 00아 궁금한 게 있어. 나랑 상담할 때 내가 너에게 일어난 힘든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은 게 네게는 어떻게 느껴졌니?
- 전 오히려 자세히 묻지 않아 주신게 편하게 느껴졌던것 같습니다!

‘그래, 사실을 묻지 않은 건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어!’

아이의 구체적인 사연은 모르더라도 그 아이에게 힘든 일이 있었다는 것과 지금은 거기에서 조금 빠져나왔다는 것은 알지 않는가? 이것만 알아도 공감과 칭찬을 하며 상대를 알아줄 수 있다.


+)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가 자신의 사연을 말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상대가 말하고 싶어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거든 상대에게 묻고 확인하면 될 것이다.
- 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니?

그리고 상담을 하다가 나에 대한 상대의 신뢰가 더 깊어졌다 싶을 땐 혹은 상대가 조금 편안해지고 안전함을 느낀다 싶을 땐 또는 상대가 말하고 싶으면서도 주저하는 것 같을 땐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겠다.
-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될까? 물론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구체적인 사연을 알면 상대를 더욱 깊고 세밀하게 공감하며 도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번 00이 상담의 경우에는 아이가 딱히 이야기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이기도 했고, 주어진 시간도 충분치 않았기에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상태로 상담을 진행하고 그런 채로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