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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호. 솜사탕과 호랑이

홍석연(봄) 2021. 5. 12. 11:30

정유진 (낄낄)


포시라운 지은이는 받아쓰기 컨닝한 걸로 0점 처리 했다가 10분 후에 다시 매겨 돌려주었는데 놀라서 선생님이 공책도 안 줬다고 집에 가서 말하는 녀석이다. (밤 10시 반에 지은엄마는 나한테 전화해서 자기 딸 말만 믿고 소리소리 질러댔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뭐든 속도가 빠르고 달리기도 잘하는 씩씩한 여학생 태연이는 마치면 학원에 갔다가 지역아동센터에서 놀다가 늦게서야 집에 간다. 벌써 3학년은 되어 보이는 태연이.

이 둘이 12월 짝꿍이다.
며칠 밖에 안 지났는데 지은이 엄마가 아침부터 전화를 하셨다.

지은맘 : 선생님, 지은이가 학교에 잘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짝꿍이 힘들다고 학교 가기 싫다고 아침에 엉엉 울다 갔어요.

나 : 에고 걱정이 많이 되셨겠네요.

지은맘 : 예. 그래서 짝꿍을 바꿔주시면 안될까 해서요. 태연이랑 우리 지은이랑 너무 안 맞는 것 같아요. 너무 걱정이에요.

나 : 걱정도 많이 되고 속상하셨겠네요. 하지만 지은이가 앞으로도 이런 씩씩한 아이들을 만날 텐데 이런 아이들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은맘 : 네. 그러면 좋겠지만, 아직 어린데 그런 환경에서 힘들어 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요.

나 : 아직 어린데 고생하는 것 같아서 마음도 아프고 걱정도 되시나봐요.

지은맘 : 네.

나 : 그래도 저희 반은 짝꿍을 바꿔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요청받은 적이 있어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여러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을 배우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요. 하지만 어머니께서 걱정도 많이 되시고 저도 지은이가 태연이의 어떤 말에 상처를 받는지는 알 것 같아요.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성향 차이니까 제가 한 번 잘 이야기해보고 조금만 더 지켜보면 좋겠는데 어떠세요?

지은맘 : 네 그럼 그럴게요.


마침 지은, 태연이가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같이 다녀오겠다면 간다.

나 : 지금 지은이 태연이가 손을 잡고 같이 도서관에 가겠다고 갔어요. 둘이 오해 풀고 잘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으니 한 번 더 기다려보면 좋겠어요.

지은맘 : 아, 그래요? 참 나~

나 : 아이들이 또 금방 푸니까요. 걱정 많이 되실 텐데 명확한 답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지은맘 : 아니에요.


좀 후에 태연이를 먼저 불렀다.

나 : 태연아, 가끔 친구들이 태연이 씩씩함이 힘들다고 이야기하거든. 알고 있어?

태연 : 네. (바로 눈물)

나 : 속상하고 억울하고 섭섭하겠다. 그런데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태연 : 네. 지은이랑 지민이요.

나 : 태연이도 속상했겠다. 지은이, 지민이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하는 게 아닌데 친구들이 무섭다고 할 때는 억울하고 섭섭하고 그랬겠어.

태연 : 네 저는 그냥 말한 거예요.

나 : 그래, 태연이는 그냥 말한 건데. 억울하겠다.

태연 : (안겨서 조금 울었다.)

나 : 태연이도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잖아.

태연 : 네.

나 :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태연 : 제가요. 말을 조심해야 해요.

나 :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구나. 태연이가 잘못한 건 아니고 성향이 다른 것 뿐이라는 건 알고 있지? (여러 번 말했었다.)

태연 : 네.

나 : 그런데 태연이가 말을 조심하려면 힘들지 않겠어?

태연 : 네.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아요.

나 :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친구들이랑 잘 지내려면 참아야 할 것 같은가 보네.

태연 : 네.

나 : 태연이가 마음을 많이 냈구나. 선생님이 태연이도 편한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들어볼래?

태연 : 네.

나 : 태연이가 태연이 성향대로 말을 했을 때 보드라운 어떤 친구가 표정이 안 좋아 질 때가 있지?

태연 : 네

나 : 그럴 때 물어보면 어떨까? 혹시 내 말 듣고 기분 상한 거 아니야? 이렇게.

태연 :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쳐다본다.) 네.

나 : 해볼 수 있겠어?

태연 : 네.

나 : 그러면 태연이도 이해받을 수 있는 일도 생기고 친구들도 마음 안 상할 것 같아서.

태연 : 네 해볼게요.

나 : 그래 고맙다. 기특하다.

그리고 나서 지은이를 불렀다.

내 성향과도 맞지 않는 솜사탕 같은 아이.

나 : 지은아, 태연이랑 짝 하면서 힘들다고 했다면서?

지은 : 네.

나 : 답답하고 힘들었겠네.

지은 : 네.

나 : 그런데 지은아, 태연이한테 힘들다거나 속상하다는 이야기 해본 적 있어?

지은 : (고개를 젓는다.)

나 : 선생님은 지은이가 그렇게 하면 태연이는 지은이 마음도 모르고 혼만 나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야. 태연이는 몰랐는데 지은이가 말도 안 해줬는데. 엄마나 선생님한테만 말해서 갑자기 불려서 혼나는 꼴이잖아.

지은 : (고개를 끄덕끄덕)

나 : 지은이도 태연이한테 기분 나쁠 때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겠어?

지은 : (가만히 있는다.)

나 : “태연아, 그 말 들으니까 좀 속상해.” 이렇게.

지은 : 네

나 :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지? 딱 1번만 해보자. 딱 1번 해보고 선생님한테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지은 : 네.

이렇게 이야기를 끝냈다.

두 녀석 다 막막한 듯 했고, 그래서 내가 방법을 바로 이야기해버렸다.

마음을 알아주려고 할 때는 호랑이 쪽은 내 성향과 비슷해서 알아주기도 편하고 마음이 많이 연결되는 기분이었는데 솜사탕에게는 나도 답답하고 억울하고 어이없고 짜증나고 귀찮고 배신감들고 그 엄마한테도 열 받는게 여러 번이라 억지로 알아주다보니 좀 미진했다.

그래도 솜사탕도 호랑이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앞으로 다른 솜사탕을 만나도 다른 호랑이를 만나도 잘 지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