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주연 (단풍나무)
반마다 겨울방학 전 마지막 수업에서 방학 과제를 안내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방학동안 자기소개서를 써보도록 했다.
‘나를 소개합니다. 나의 인생을 소개합니다.’란 제목의 <자기 소개서>는
함께 공부하는 한창호샘과 얘기하다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접속사를 제시하여 예전의 자신의 모습, 시도와 변화, 지금의 모습,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이 드러나도록 했다.
여기에 성품단어를 제시하고 자기소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성품을 찾아 적도록 했다.
현 : 선생님, 저는 성품이 하나도 없는데요?
나 : 음, 현이 너한테 적합한 성품이 없다는 거야?
현 : 네. 없는데 어떡해요?
나 : 그래, 하나도 없다 싶으면 막막하겠다. 얘들아~ 현이가 지금 자기에게 적합한 성품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현이는 어떤 성품으로 보여?
은 : 솔직해요.
경 : 당당해요.
나 : 아~ 솔직하고 당당해 보이는구나.
범 : 확실해요.
나 : 확실하다고?
범 : 네, '없는 거 같다'는 게 아니라 '없다'고 확실하게 말하니까요.
나 : 아~ '없다.' 이렇게 말하는게 확실해 보이는구나. 그러네. 현아~ 너는 애들 말 듣고 어때?
현 : 어~ 자살하고 싶어요.
나 : 자살하고 싶다고? 죽고 싶다는 거야?
현 : 네
나 : 죽고 싶을 만큼 어떤데? 어떻다는 거야?
현 : 아, 그만 좀 물어보시죠?
그만 물어보라고 했지만 얼굴엔 웃음기가 있고 말투는 장난스러워서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나 : 혹시, 죽고 싶을 만큼 쑥스러운거야?
현 : 음, 어, 글쎄요. 모르겠어요. 이런 말 처음 들어봐서요.
나 : 음~ 처음 들었다면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할 것 같은데. 어때?
현이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웃는 모습이 귀엽다.
은이, 경이, 범이 얼굴도 환해 보인다.
현이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이 ‘죽고 싶을 만큼’ ‘무지 무지’ ‘아주 많이’ 라는 뜻이구나.
나도, 아이들도 오늘 현이에 대해 또 하나 알아간다. 그리고 하나도 없던 현이의 성품을 3개나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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