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곤 (보리)
영어 독해 수업은 나에게는 항상 골칫거리였다. 해야 할 것은 많은데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애들은 지루해하는 것 같고, 애들이 지루해한다 싶으면 나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올해는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두 세 명씩 짝을 지어 서로 공부한 후 발표를 시키고, 나는 미진한 부분만 좀 메꿔주기로 했다. 막상 하려니 아이들이 잡담만 하거나, 강의식 수업이 아닌 것 때문에 불만이 생길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예전에 교사 초임 때에도 시도했다가 좌절스러웠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이제 수업을 몇 번 진행했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많은 아이들이 크게 불편해하지 않고 내가 하자는 대로 잘 따라오고 있다. 예전에는 첫 시간부터 실패했고, 이번에는 성공 경험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예전에는 아이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다루었다. 이러이러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면 수업이 잘 될 거라 생각하고 운영을 했으나 실패했다.
이번에는 내 의도, 왜 이런 수업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하고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설명을 했다.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아이들이 서로의 의견과 감정을 나누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기를 바라고 있다.
예전에는 불만이 있는 아이들 두 명의 말을 듣고선 확 위축이 되어서 조별 수업을 접었었다.
이번에는 한 명이 불만을 얘기했다. 나는 그 아이의 생각을 읽어주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수업시간이 아까워요"
"니가 원하는 것은 수업이 알차게 운영이 되고, 너도 나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스스로도 무언가를 배우면서, 배움이 가득한 수업이 되길 바라는 것 아닌가 싶은데 어떠니? 비슷하니?"
"정확해요. 제 생각이랑 똑같아요."
"그럼 이런 식으로 공부할 때의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
별 것 아닌 이 대화 이후에 아이가 나를 대하는 표정이 밝아졌다. 오늘은 공부하다가 모르는 걸 가져와서 질문을 하기에, 바로 대답을 안 해주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줬다. 그게 아주 마음에 들었나보다. 나도 뿌듯했다. 아이도 수업시간에 열심히 참여했다.
뿌듯하다. 내가 막 설명을 안 해도 아이들끼리 수업이 일어나는 장면은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이 지문이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함께 얘기하고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봤다. 아마 안심이 되었을 게다.
"얘들아, 사실 나도 준비하는데 이게 잘 안 읽히더라고.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건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 지문이 어려운 것 아니겠냐?"
"선생님 이상해요. 다른 선생님들은 어려운 지문을 열심히 분석하고 공부하라고 하는데 선생님은 안 그러세요?"
"어, 너무 힘들게 애쓰면 공부를 안 하게 되니까, 난 조금만 애써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공부를 즐겁게 하길 바라. 그래야 더 오랫동안 공부할 수 있다고 믿어."
수업에서 만족스러웠던 게 얼마만인가? 내가 설명을 안 하니 아이들이 안 자고, 공부를 하고, 무언가를 배웠다고 얘기하는 모습은 이상하고 신기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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