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우리)
드디어 오늘 학부모총회를 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전체 총회가 일찍 끝나 학급에서 계획한 대로 활동할 수 있었다.
총회를 준비하며 무척 고민이 많았다. 담임인 나만 특별하고 돋보이는 이벤트성 행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이 활동을 왜 하려는지 미리 목표를 생각하고 활동 순서를 계획해 보았다. 우선 학부모들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안심하게 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자각하여 아이와 학부모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 이렇게 목표를 분명히 하니 마음이 환해지고 내 계획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1. 첫인사
약 15분의 어머님들이 오셨고 몇 명은 큰 아이 때문에 왔다 갔다 하신다. 학부모님들이 어려운 시간 내어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했다. 직장 다니는데 일부러 오신 분도 계시다. 열의가 대단하다. 신경쓰며 일부러 오신 만큼 뜻 깊은 시간을 만들고 싶어 몇 가지 활동을 준비했고 조금 늦게 마칠 수도 있다는 안내를 드렸다. 시간이 안되시는 분은 자유롭게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2. <무표정한 엄마, 웃는 엄마> 동영상 보기
-교사인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말보다는 표정이나 행동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부모님도 그럴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님의 웃는 모습, 표정을 통해 어려움도 잘 이겨내는 긍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노력하겠다고 했다. 동영상은 무척 진지하게 보셨는데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도 답을 안하신다.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라 억지로 답을 요구하지 않고 넘어갔다. 잘한 거 같다.
3. 간단한 학급 운영 안내 및 공감 교실에 대한 설명
공감교실의 의미를 설명하며 감정 교류의 중요성을 간단히 언급했다.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었을 때 좀 더 이해받는 기분이 들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을 예를 들어 설명해 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감정, 생각, 본심까지 읽어 주고 마지막에 칭찬까지 해준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4. 공감 체험하기
1) 우리 아이가 초1학년이 되고 나서 드는 감정을 모두 골라 표시하고 큰 감정 말하기
학습지부터 나누어 주니 설명을 하지 않아도 체크하고 써내려 가신다. 영민하시고 적극적이라고 칭찬해드리며 자발적으로 발표하도록 하였다.
“나는 우리 아이가 1학년이 되고 나서 뿌듯한 기분이 들어요.
왜냐하면 스스로 잘 하며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기 때문이에요.”
라고 말씀하시길래 이 말에 감정추임새를 해 보자고 했다.
‘뿌듯하시겠어요.’
‘듣고 어떠세요?’ 하니 ‘부끄럽다’ 고 하신다.
‘부끄러우신가봐요.’ 했더니 어머님들이 놀라며 웃으신다.
‘저는 많이 해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어머님들도 이런 말씀을 자연스럽게 하기까지는 많이 어색하고 민망하실 거예요’ 라고 말씀드렸다.
다른 분 중에 비슷한 기분이 있는지 여쭈어 보니 손을 드는 분이 계신다.
비슷한 감정이 나오니 다음에 발표할 분이 자연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이렇게 돌아가며 다 이야기 했다.
-뿌듯하다: 늘 씩씩하게 등교준비를 하고 혼자 해결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자랑스럽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표현해서 불안해 했는데 씩씩하게 생활하고 계단 올라가고 교실도 잘 찾고 즐겁게 다닌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하다: 매일 학교에 가고 싶어하고 학교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가 커지고 씩씩해져서
-두근거린다: 첫 아이이고 내가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진급했을 때가 떠올라서
-걱정된다: 둘째라 아기 같아서, 혼자 밥도 안 먹고 한글도 늦게 시작해서
-걱정된다: 적응 잘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감동스럽다: 또래 아이보다 작고 소극적이라 혼자 학교 가는 것도 걱정이었는데 씩씩하게 일어나 뭐든 혼자하려는 게 뿌듯하고 매일 감동적이다.
이렇게 감정과 이유를 이야기만 해도 아이들과 엄마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서 참 신기하고 뭉클했다. 각자의 사연들이 다 의미 있고 아이들이 새롭게 보인다. 듣고 나서 내가 바로 피드백 해주기도 했다. 걱정된다는 부모님께는 밥을 너무 잘 먹는다고 안심시켜주기도 했고 적응하는데 시간 걸린다는 아이는 다섯 살 정도의 수준이라 학기 초부터 지금까지 엄마와 수많은 통화를 하며 피드백을 주고 받았기에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2) 우리 아이를 떠올리며 올 한해 내가 정말 바라는 것과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쓰기
- 나는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바르게 커주기를 바라며 즐겁게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엄마로서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이 엄마는 아이 셋에 직장맘인데 본분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나중에 소감나누기 할 때 아이가 잘 하지만 늘 시간이 부족해서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나도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마음이 짠했다. 본분이란 바로 엄마로서 보살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었던 거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다민이의 뜻을 맞춰주고 행복한 말과 사랑을 많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자신있고 용기있게 표현하고 행동하는 아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수린이를 재촉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주며 수린이 감정을 읽어주도록 하겠습니다.
-자신감있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민재와 시간을 자주 가지고 싶습니다.
-친구를 많이 사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아이의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항상 격려하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감정을 읽어주겠다는 수영이 어머님 말씀에 내 말을 믿고 실천해보겠다는 의지를 내신 것이니 놀랍다.
5. 지금 여기 기분중심의 소감나누기
활동을 마치고 난 소감을 지금 여기 기분 중심으로 나눠 보자고 했다.
‘미안하다. 그 동안 더 잘 못해준 것 같다.’ 는 말은 아까 그 세 아이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시다. 이런 공감체험활동을 해보니 더욱 미안해진다고 하셔서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심된다.’
‘1학년 보내면서 무섭다고 주위에서 겁줬는데 다행이다.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1학년 보내며 긴장을 많이 했지만 구체적으로 아이한테 어떻게 대해줘야 할 지 생각은 안 해봤는데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
‘선생님 인상만 보고 까칠할 줄 알았는데 너무 편안하고 배울 게 많다.’
‘아이가 학교 가길 좋아해서 다행이고 좋다.’
마지막 소감을 말 안 하신 분도 있지만 비슷한 마음이셨을 거라 생각한다.
할머니 두 분이서 오셨는데 무한 지지를 보내주어서 참 감동이었다.두 할머니들이 무척 적극적이고 재미있으셔서 차분한 분위기의 활력소가 되어 주셨다. 심지어 ‘사랑합니다’라는 표현도 해주시고 ‘나이와 관계없이 참 배울 게 많다.’고 하신분도 할머니 중 한분이시다.
나도 이 활동을 계획하며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려드렸다. 말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텐데도 따라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알려드리고, 목표한 대로 부모님께서 아이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렸다. 또 내 능력보다 더 많은 걸 기대할까봐 살짝 염려되는 마음과 부담되는 것도 표현했다. 아이들이 1 년 안에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급성장하는 걸 기대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드렸다.
다 표현하니 나도 시원하고 내 소감을 말씀드리니 더 진지해지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늘 의무 방어같은 학부모총회를 이렇게 해보니 괜찮다. 약간 얼떨떨하고 뿌듯하고 신기하고 여전히 기대가 너무 커졌을까봐 두렵고 걱정도 된다. 큰 일 하나 치르니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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