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평화)
3월 셋째 주 아침활동시간
아이들도 웬만큼 적응해가고 있다. 금요일엔 아침운동을 할 거라고 지난주에 예고한 걸 기억하고 몇몇 아이들은 줄넘기를 들고 나갔다. 교실에 도착해서야 기억난 아이들은 줄넘기가 없다고 걱정하기에 내 것을 있는 대로 빌려주고 그래도 없는 아이들은 긴 줄넘기를 가지고 놀아보라고 쥐어줬다.
9시까지 놀고 들어왔는데 은영이가 와서 ‘철진이가 긴 줄에 얼굴을 맞아 울고 있다’고 했다. ‘걱정되어 선생님께 알려주는 건 고마운데 철진이가 와서 말하는 걸 선생님이 직접 듣고 싶으니 조금만 기다리자’고 말했다. 철진이가 들어오는데 나한테 오지 않고 자리에 가서 앉는다. 표정이 좋지 않다. 철진이를 불렀다.
나:철진아, 선생님한테 와볼래? 선생님 보기에 표정이 밝지 않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철진:긴 줄로 얼굴을 맞았어요.
나: 저런 많이 아팠었나보다. 얼굴에 운 자국이 있는 걸보니. 은영이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네 얘기를 하던데 그럴만했네. 은영이야, 네가 급하게 말한 이유가 있었구나. 고맙다. 그래 너는 줄넘기에 맞고 어떻게 했어?
철진: 혼자 저쪽으로 가서 쭈그려 앉아 울다가 그냥 교실로 왔어요.
나: 저런~ 너처럼 할 말 다하는 아이가 어찌 그냥 왔어? 무슨 이유가 있나보다. 철진아. 우리반 규약을 한번 볼까? 첫째가 뭔지 읽어보자.
철진:(알림판에 있는 학급규약을 보고) 감정이 상한 친구의 감정을 공감해 준다.
나: 잘 읽었어. 철진아. 지금 선생님 보기에 네가 감정이 많이 상해 보여. 네 마음을 선생님과 친구들이 알아주고 싶어. 그렇게 해주면 네가 좀 나아질 것 같은데 한 번 해볼까?
철진의 동의를 얻고 감정 알아주기를 했다.
나 : 얘들아, 지금 누가 감정을 공감 받아야 할 때야?
아이들: 철진이요.
나: 그럼 철진이가 기분이 어떨지 말해줘 보자. 철진이는 듣고 그런 기분이면 '응' '맞아''그랬어'로 반응해주면 좋겠어. 아니면 아니라고 해줘. 그리고 앞에서 친구가 말한 기분을 또 말하면 '내가'라고 말해줘. 그러면 다른 기분을 말하는 거야. 감정단어장을 보고 찾아서 말해도 돼. 다른 친구가 어떤 감정을 공감해 줬는지 잘 기억해야겠지? 그리고 다른 친구가 내가 말한 감정을 말하면 '내가'라고 해줘.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 다른 감정을 찾아 말해요.
나: 그렇지. 선생님 말씀을 아주 잘 듣고 이해했구나.
아이들이 한 명씩 철진이를 공감해주기 시작했다.
수용: 많이 아팠지?
철진: 응. 아팠어.
민아: 속상했겠어.
철진: 그랬어.
영선: 야속했겠어.
철진: 많이.
윤선: 슬펐겠다.
철진: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아서. (눈물이 핑돈다.)
가람: 미안해.
철진: 그렇게 말해주니까 위로돼.
준영: 나두 미안해.
가람: 내가.
철진: 그래도 좋아.
나: 나도 준영 말 듣고 괜찮아. 그래도 준영아, 한 가지 감정 더 말해볼래?
준영: 누가 그랬는지 미웠겠어.
철진: 그런 마음 들었지. 근데 누군지 몰라서 말 못했어.
현수: 궁금하기도 하겠다.
철진: 응.
처음에 21명이 모두 다른 감정의 단어로 공감해 주지는 못했다. 4명이 '내가'에 걸려 다른 감정을 찾느라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3명이 '그건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다른 감정을 찾아 말하기도 했다.
다 듣고 철진이는 시원해졌고 가벼워졌다고 했다. 친구들한테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이 공감해 준 말: 아팠겠다. 속상했겠다. 서운했겠다. 얄미웠겠다. 서러웠겠다. 우울했겠다. 외로웠겠다. 씁쓸했겠다. 미웠겠다. 싫었겠다. 어두웠겠다. 슬펐겠다. 어이없었겠다. 기가 찼겠다. 기분 나빴겠다. 화도 났겠다. 짜증났겠다. 삐지는 마음 들었겠다. 의심 들었겠다. 원망감 들었겠다. 놀기 싫었겠다.
누가 그랬냐고 물으니 철진이는 모르겠다고 하고 은영이는 동건이가 돌리던 줄에 철진이가 맞았다고 했다. 은영은 보았는데 정작 줄을 돌린 동건이도 안에 있던 철진이도 서로 모르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동건이를 불러내니 아주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다.
나: 너는 모르는 일인데 철진이가 줄에 맞았다니 당황스럽고 미안하겠어. 우선 철진이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으니 들어보자.
철진이에게 동건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따라 말하게 했다.
나: 먼저 철진이는 내 말을 따라 말해볼래?
"나는 동건이 네가 줄을 돌리다 나를 맞게 해서 아팠어. 근데 네가 모르는걸 보고 이해가 돼. 왜냐하면 맞은 나도 어떻게 맞게 되었는지 모르고 아파서 울기만 했거든. 그러니까 네가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라는 거지. 운동하다 그런 거니까 이해해. 내말 듣고 어때?"
동건이 너도 선생님 말 따라 해봐.
"네가 그렇게 말해줘 엄청 안심되고 고마워. 네가 맞았다고 해서 걱정되고 미안했어. 의도하지 않았어도 네가 아팠잖아. 내가 안아줄게 미안해."
(‘내가 안아줄게. 미안해.’는 동건이가 스스로 한 것이다.)
둘이 서로 안아주는 걸 보고 우리는 박수를 쳐주었다.
반 전체가 친구의 감정을 감정단어로 의도적으로 알아주는 활동을 세 번째 해보았다.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지는 게 느껴져 나는 반갑다. 우리 반 학급규약으로 감정이 상한 친구의 감정 알아주기(공감해주기), 친구의 말 잘 들어주기(경청하기), 내가 마음 상할 때 이해 받기(내 마음 표현하기, 나 전달법으로 말하기)가 있다. 순간순간 내가 포착하는 힘이 중요하다. 나는 이 방법이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으며 평화롭고 행복하고 즐거운 반으로 가꾸는 비결이라고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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