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혜란 (복숭아)
성지: 선생님, 저는 화가 날 땐 화나게 한 친구가 밉고 화가 풀리면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이 풀리는데 이런 제가 얍삽해요.
나: 그니까 성지 말은 친구에게 화가 났을 땐 화나게 한 친구가 미운데 화가 풀리면 그 친구가 다시 좋아진다는 말이지?
성지: 네.
나: 그 때 성지는 자신이 얍삽하다고 생각되나봐?
성지: 네.
나: 그런 생각이 들 때 기분이 어때?
성지: 기분이 나빠져요.
나: 기분이 나쁜가보구나.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가봐?
학: 네. 저한테 실망스러워요. 화가 나면 제 입에서 욕도 나오게 돼요. 화내지 않고 바로 친구랑 잘 풀고 싶어요.
나: 그니까 성지 말은 화가 나면 친구에게 나쁜 말이 나오게 되니 화를 내는 대신 친구랑 대화로 잘 풀고 싶다는 말인가 보구나?
성지: 네. 친구랑 잘 지내고 싶고 제가 화나 짜증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잘 안돼요.
어떤 책을 보니까 열까지 세면 화가 진정이 된다는데 도움이 될까요?
나: (초3이 '진정'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또 스스로를 고치기 위해 책을 찾아보았다는 점도 놀라운데 게다가 다른 학생도 아니고 adhd 학생이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니 무척 신기하다. 문득 마리 책에서 본 글이 떠올라 시도해보았다.) 궁금하겠다. 그럼 지금 눈을 감아볼래? 그리고 사과를 떠올려봐.
성지: 떠올렸어요.
나: 그럼 이제는 방금 떠올렸던 사과를 머릿속에서 지워봐.
성지: (좀 시간이 지나자 배시시 웃으며) 잘 안지워져요.
나: 잘 안지워지지?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잘 안없어질거야. 어때?
성지: 오! 그래요.
나: 화나는 마음도 마찬가지야. 열까지 세면 마음이 진정될 수는 있겠지만 화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야. 화를 안내려고 하면 할수록 화가 더 날 수도 있어.
성지: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나: 선생님이 알려주면 알려준 대로 해볼테야?
성지: 네.
나: 화가 나면 하던 것을 잠깐 멈추고 심장 쪽에 손을 대고 가볍게 문지르면서 '성지야 너 지금 화가 많이 났나보구나.' 이렇게 말로 너가 너 마음을 알아줘보는 거야. 지금 한 번 해볼래?
성지: (시킨 대로 한다.) 아~ 제가 저를 위로해주는 거군요! 앞으로 화가 나고 짜증날 때 이 방법을 써봐야겠어요.
나: 써 보고 어땠는지 선생님에게 들려주면 좋겠는데?
성지: 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근데 한 가지 더 여쭈고 싶은 게 있어요.
나: 근데 어쩌지? 성지 얘기를 더 들어주고 싶은데 선생님이 회의가 있어서 곧 가야해. 괜찮다면 내일 들려줄래?
성지: (다급한 듯) 제가 기억력이 나빠서요. 내일 생각이 안날까봐 오늘 말해야할 것 같아요. 또 방금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서 같이 해결하고 싶어요.
나: 그렇구나. 그럼 짧게 얘기해볼래?
성지: 저는 선생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력이 나빠서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 기억력이 안좋아 고민되나보구나.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성지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성지: 적는다?
나: 그렇지. 성지처럼 adhd였던 아인슈타인도 굉장히 똑똑한 사람임에도 기억하고 싶은 건 종이에 적어두곤 했었어.
성지:(아인슈타인 얘기에 반가워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럼 저도 선생님이 해주신 얘기를 지금 바로 공책에 적어둘래요.
나: (적기를 싫어하는 애가 뭘 적는다니 아주 반가웠다. 글씨도 평소엔 괴발개발 쓰던 게 그 전보다 조금은 알아볼 수 있게 써서 반갑다. )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너 자신만은 알아볼 수 있게 써야 의미가 있겠지?
성지: (배시시 웃는다.)네.
나: (친구와도 잘 지내고 싶고 자신의 마음도 잘 돌보고 싶은 그 마음을 더 알아주고 본심듣기까지 더 하고팠는데 회의 시간이 돼 아쉬웠다.)
선생님은 성지가 노력하는 모습이 참 기특해. 성지랑 더 얘기하면 좋겠는데 이제 가야겠다.
성지: 네, 선생님. 칭찬 고맙습니다. 회의 잘 다녀오세요.
-----------------
성지가 화가 나서 짜증을 낼 때 나도 화가 욱 올라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여유롭게 봐지는 것이 반갑고 좋다. 여유가 생기니 입으로 듣기를 시도할 수 있었고 입으로 듣기를 통해 ‘그 학생도 화나 짜증이 아닌 대화로 친구랑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구나.’를 알게 되어 더욱 반갑다. 이제 성지를 바라보는 데 더 여유로워질 것 같아 앞으로가 참 기대된다.
'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03호. 그래, 나는 교사다. (0) | 2021.05.14 |
---|---|
제102호. 아이들에게 이해받는 경험, 정말 좋구나! (0) | 2021.05.14 |
제100호. 학급활동 시간에 하는 집단공감! 더 자주하고 싶다. (0) | 2021.05.14 |
제99호. 선생님 입장도 이해받고 싶다 (0) | 2021.05.14 |
제98호. 선생님,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0) | 2021.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