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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호. 그래, 나는 교사다.

홍석연(봄) 2021. 5. 14. 14:04

김수진 (열음)

공감교실의 교사는?

지난 토요일 한국교사힐링센터의 팀 식구들과 여름 워크숍을 하면서 발제와 토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맡은 부분은 「학습의 자유」(Carl. Rogers)라는 책을 읽고 ‘공감교실의 교사’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교사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교사를 모델로 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가장 의미 있게(?) 존경했던 것 같다.

장면1

190cm가 넘는 큰 키와 체격을 가진 꼼꼼한 체육쌤으로 기억하는데, 그 쌤 덕분에 나는 바닥까지 떨어져서 멘붕이었던 고1성적을 웬만큼 끌어올릴 수 있었고, 그 후 대학을 결정하는데도 영향을 받았다고 인식한다.

그는 아주 꼼꼼하고 섬세했고 학급의 아이들 앞에서 말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귀신같이 알아차려 ‘쓰윽’ 지나가며 건네는 몇 마디 말들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바로 나에게 그랬다. 나는 1시간이 넘는 아침 자습 시간에 정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 당시 엄마가 큰 수술을 했었고 엄마의 병간호로 내 성적도 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병간호에 따른 물리적인 공부 시간의 부족 때문이기라보다 나는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청소시간 교실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있는 나에게 담임 쌤이 꺼낸 첫 말은 “너, 집에 무슨 일 있냐?”였다. 순간 소름 돋았다. 무엇보다 나를 통째로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나는 ‘엄마가 병원에 큰 수술로 입원하셨고 고등학교에 들어와 보니 중학교 때와는 달리 공부가 너무 힘들고, 학급 아이들이 모두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아 많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꺼낼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이미 성적으로 고등학교 공부의 어려움을 증명해 내고 있으니 드러내어 말하는 것이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와 짧지만 긴 이야기를 마치고 난 후 나는 중학교 때 성적을 회복했다. 그리고 나를 알아준 것에 대한 감사함과 자신에 대한 뿌듯함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가장 먼저 찾아간 분도 그 담임쌤이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찾아가지 않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쌤은 여고에서 남고로 학교를 옮기셨고, 서울로 가게 된 나의 대학 입학은 축하해 주셨지만, 함께 간 우리가 반가운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5시간, 버스 안에서 서운함과 민망함과 아쉬움에 가슴 아리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쌤이 형의 사업에 보증을 섰다가 형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삶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많이 고단해 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래서 고1때 담임쌤은 교사로는 존경하고 닮고 싶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안타깝고 슬펐다. 그래서 나도 그런 것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실재하는 현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차리게 하여 자신의 삶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면서도 교사로서 꼼꼼하고 분명하게 아이들을 살펴주고 알아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나는 갖고 있을까? 뭉클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많이 아리다.

장면2

중학교 1학년 우리반 아이들이 <진로의 날 행사>에서 명함 만들기를 하였다. 명함 만들기를 한 아이들 중 꽤 많은 아이들이 교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회장 명인이, 부회장 서윤이, 동민이, 지영이 등 6~7명의 아이들이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명함을 그린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삶에 교사가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구나.’ 싶다. 그럼 나도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많은 영향력을 주지 않을까? ‘저런 교사가 되어야 겠다’ 라거나, 혹은 ‘저런 교사가 되지 말아야 겠다.’는 삶의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하고 있는 ‘교사’라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의 존재 방식으로 가르치는 교사. 그렇게 존재하는 한 인간을 아이들이 보고 영향을 받는다면 교사가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지금 여기에만 살아가는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며 살고 있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삶이 경건해진다.

장면3

토요일 오후 한국교사힐링센터 팀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한 젊은 아가씨가 말을 건다.

아가씨 : 저기..(주저하며 그러면서 아주 반가워한다).. 혹시 김수진쌤 아니세요?

나 : 어~ 저를 아시나 봐요.. (아무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 같은데...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출판사와 관련된 사람인가? 교육방송 관계자인가? 아니면 강의를 들었던 누구인가? 쌤이라고 하는 걸 보면 두 딸아이와 관련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내가 생각이 잠긴 것처럼 보이자 상대가 고맙게도 말해준다.)

제자 : 쌤 저는 OO중 출신이예요. 쌤이 저희 사회 담당 쌤이셨거든요.

나 : 아 그래요. 반가운데 (그때 13개 반이 넘었던 것 같다. 아쉽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안해요. 떠오르지가 않아요.

제자 : 아~ 그러실 거예요.. 저는 아주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은 아이였거든요.

나 ; 아.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였나 보네요. 그래도 나는 많이 미안한데.. 이름이?

제자 : 양은지예요.

나 : 어~ 양은지. 반가워요. 조심스러운데. 올해 나이가 몇 살이예요?

제자 : 28살이예요..

나 : 아~ 그래요. 그러면 제가 3학년 7반 담임했을 때 그 때 3학년이었나 보네요. 13년 전 에..

제자 : 네, 쌤. 맞아요.(반가워한다.) 그때 3학년 7반이 저희 학교 전체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은 반이었어요. 제 친구가 그 반이었거든요.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나 : 정말 부러웠나봐요.

제자 : (눈을 반짝이며)네, 쌤. 그리고 그때 학교 축제에 나가서 춤도 추셨잖아요.

나 : 예. 그랬지요. (아직도 어색하고 쑥스럽다. 말을 놓기도 주저된다.)

제자 :또 그 때 교육방송 강의도 하셨잖아요?

나 : 예. 그랬지요.(많이 멋쩍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지요?

제자 : 제 눈에 쌤이 정말 좋아 보였거든요. 아~ 근데 쌤. 저는 여기서 내려야 해요.

나 : 그래요.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잘 가요.

제자 : 네, 쌤~ 안녕히 가세요. 근데 쌤. 저두 학교에 있어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누군가의 교사로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아이들을 삶에서 만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따뜻해진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가 내 삶의 여정에 갑자기 나타나 나에게 ‘교사로서 당신이 어떻게 아이들과 만나고 있었는가’ 하는 삶의 단초들을 선물로 주고 갔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그가 자신의 입을 빌어 이야기 해준다. 그러면서 과거의 나를 알아주고 간다. 당신 참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그리고 괜찮은 교사였다고, 나를 토닥여준다. 그가 자신의 길을 간다. 내가 세상에 뿌리는 많은 말들과 행동과 감정들과 삶이 누군가의 가슴에 홀씨처럼 뿌려져 꿈을 키워갈 수 있다는 것이 포근하고 따숩고 그러면서도 뭉클하다. 그래 나는 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