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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제171호. 언제나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홍석연(봄) 2021. 6. 3. 14:32

김태곤 (보리)

 

 최근에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하고 있어서 공유해요. 아직 스스로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감흥이 없어지기 전에 그냥 쓰고 싶어요. 관점이 바뀌면서 문제가 해결된 경험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완벽주의를 버리면서 행복해진 경험이기도 해요. 혹은 미래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현재를 즐기는 경험, 또 '지금의 나로서도 충분하다'는 체험이기도 해서 저에게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어요.

 

저는 영어교사이고 꽤 오랫동안 공부를 해왔지만 항상 부족감에 시달려왔어요.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어서 스트레스였거든요. 그런데 올해 초에 영어책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한 달 쯤 전부터는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실력이 갑자기 늘었을 리는 없는데 전에는 안 되던 게 이제는 가능해졌어요. 그것도 어떤 한 순간에.

 

책읽기야 그렇다 치고,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꽤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전에는 영화를 보려면 말소리 알아들으려고 집중해서 보다가 10분쯤 지나면 스트레스 받아서 그만두기 일쑤였어요. 억지로 끝까지 본 적도 있지만 의지로 버텨내는 거였지요.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실력이 늘어서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공부를 했어요. 하지만 의지로 해내는 공부는 없어서 좀 하다가 중단하기를 수차례 반복했죠. 20년 이상 같은 짓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더랬어요. 이번 생에는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고 여겨지니 영어를 선택한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꽤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있단 말이에요. 이게 왜 가능해졌는가 하면, 영어책 읽기에서 경험한 것을 그대로 영화에 적용했기 때문이에요. 안 들리는 부분을 억지로 들으려고 하지 않고, 들리는 부분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으로 그냥 보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에요. 물론 여전히 안 들리는 부분이 정말 많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 이걸 20년 전에 경험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뭐 지금 경험한 것으로도 충분히 기뻐요.

 

그렇게 즐기다보니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제가 느꼈던 부족감에 대해서도 어쩌면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바꾸려 노력하고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가야 지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인정하고 학생 지도를 했다면 스트레스 덜 받고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마리공부를 했다면 좀 더 즐겁고 편안하게 적용하며 생활하지 않았을까요? 하기야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마리공부(마음리더십공부)는 안 했을 지도. ㅎㅎ

 

학교생활이 스트레스인 상황에서, 마리공부를 하고 적용을 했는데 결과가 썩 마음에 안 들 때에는 그냥 의지로 버텼어요. '내가 아직 미숙해서 그런 걸꺼야. 잘 안 되더라도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행복해지겠지.' 그래서 마리가 희망으로 여겨졌고 마리에 기대서 힘든 상황을 견뎌냈어요. 그렇게 견뎌내면서 살다보니 공부를 하면서 좋기도 했지만 점차 지쳐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기본적인 학교생활이 좀 편안해져서, 지금부터 하는 마리 공부는 또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부터 마리공부를 하면 '애들을 이렇게 지도해야지 저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현재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좀 더 즐기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김창오선생님이 책에 쓰셨던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어떤 조건이 주어진다고 해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저에게는 제가 영어책과 영화를 한 순간에 즐길 수 있게 된 것처럼, 자꾸만 '언젠가는.. 언젠가는...'을 되뇌이면서 노력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계기를 통해 마음이 바뀌면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로 다가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