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공감교실

따뜻한 협력, 성장의 다살림 공동체

교실 속 관계가 자라는 연수, 배움회원 모집 자세히보기

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제172호. 국어사전, 조요하다(照耀--) :밝게 비쳐서 빛나는 데가 있다

홍석연(봄) 2021. 6. 3. 14:34

이맹기 (비스따리)

 

스스로 아쉬웠다, 제법 많이...

 

계속 생각이 났고 자책이 되면서도 스스로 이해해주고 수용하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를 이해받고도 싶다. 

 

어제 영어단어 수행평가 겸 어휘경시대회를 했다. 영어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연우가 다른 것은 다 맞았는데 '조용한'을 '조요한'이라고 써서 채점이 고민되었다. 

 

같은 과 선생님도 오답처리하는 게 맞다고 하셨고 나도 연우의 명백한 실수라고 생각했다. 평소 친했고 자기 실수를 잘 수용해주기도 하는 친구라 복도에서 만난 김에 불러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연우는 '맞다고 해줘야 한다'면서 계속 주장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니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객관적 사실만 이야기하면 엄연히 틀린 답이야."라면서 나의 타당한 근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하면서 점점 나를 방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아이도 그게 어떻게 틀린 답이 되냐며 점점 울먹이다 눈물까지 흘렸다. 우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짠하기도 했고, 맘 한켠에 미안함이 올라왔다. 생각을 하다가 "선생님의 입장이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학업성적관리 위원회 선생님들 의견을 물어서 채점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하고나서야 그 아이와 헤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교무실서 이 사건을 이야기하자 한 분은 "만약 자신이라면 그냥 그 아이를 조용히 불러 동그라미가 빠졌다고 빨리 적으라고 했겠지만 이런 상황까지 왔다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이 엄격해야 한다"고 하셨다. 또다른 선생님도 아이에 대한 염려가 우선이었지만 결국 교사인 나의 정당성만 더 강화되는 답변을 주었다.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학생의 입장이 타당한 지 확인하면서 나의 주관적 판단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첫마음이었는데 확인 작업을 하면 할수록 연우의 입장을 이해하기 보단 나의 타당성과 근거를 쌓으면서 안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연우에게 미안했다.

 

 연우를 만나면 심정이 어떠한지 먼저 물어야겠다. 어쩌면 긴 시간동안 그 한 문제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염려가 되었다. 마음이 불편해지고 스스로 못마땅하기까지 했다. 수용하고 싶었다.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구나, 나 스스로에게 많이 못마땅하구나.

 

생각이 단절되며, 침묵이 찾아왔다. 

 

침묵 속에 머물러 나의 심장박동과 호흡에 집중했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고, 아침에 다시 연우를 만났다.

 

연우의 표정은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먼저 따뜻한 차를 한 잔 준비해서 같이 마시며 말을 걸었다.

 

나: 어제 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많이 불편했지?

 

연우: 좀 그랬어요. 

 

나: 지금 기분은 좀 어때?

 

연우: 좀 불편하지만  오늘은 좀 괜찮아요.

 

나: 조금 불편하지만 오늘은 좀 괜찮은가보구나. 선생님도 너랑 이야기하고 난 후 답답함과 함께 스스로 아쉽기도 했고, 너한테 미안했어. 

 

그리고나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한 결과를 안내했다. 

 

나: 선생님 말 들으니 어때?

 

연우: 좀 억울하긴 하지만 받아들이려구요. 

 

나: 어제보다는 담담해 보이는데? 조금 괜찮아질만한 일이 있었니?

 

연우: 어제 그 일로 울었는데 친구들이 많이 위로해 주었어요. 

 

나: 친구한테 위로를 받았다니 다행이다.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답변을 전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연우: ....... 

 

나: 선생님은 너랑 친하다는 이유로 너에게는 불편이 될 수 있는 일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한 것 같아 스스로 많이 아쉬웠고 이번일로 좀 더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 말을 하는데 스스로 속상하고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아이의 눈빛에서 편안함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여서 용기를 내어서 물었다. 

 

나: 선생님이 많이 미웠지?

 

연우: ........... 네.

 

나: 지금은 어떠니?

 

연우: 지금은 괜찮아요.

 

나: 나라면 아직도 많이 미울텐데 니가 내보다 낫구나.

 

연우가 살짝 웃었다. 안심이 되었다.

 

나: 니가 웃으니까 선생님도 조금은 안심되네.

 

그 말에 웃음을 참는다.

 

나: 혹시라도 미움이 찾아오면 참지 말고 표현해 주면 좋겠어. 니가 좀 더 편안해져서 하고 싶은 것을 잘 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 이번일로 힘들겠지만 다음 주가 시험이니까 잘 준비하면 좋겠어.

 

연우: 네.....

 

나: 그래, 어제 오늘 고생 많았고 오늘 하루 잘 보내~~

 

연우: 네, 선생님도요.

 

그렇게 연우와 헤어졌다. 안도감도 생기고, 고마움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스스로 수용하고 싶었다.

 

'아직도 많이 미안하구나. 연우가 불편함을 딛고 원하는 준비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구나.' 계속 반복해 주었다. 아직은 힘이 부족하지만 점점 그 말에 힘이 실려서 연우의 심정에 까지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힘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