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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호. 가장 도전이 되는 아이

홍석연(봄) 2021. 5. 11. 15:11

안숙희(요정)


성수와의 첫 만남.

야생 1반에서의 3월 첫 수업.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교탁에 섰는데도 아이들은 내겐 관심도 없는 듯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짝꿍이랑 소곤소곤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뒤돌아보고 얘기하거나, 혹은 몇 사람 건너 멀리 있는 아이들과 큰 소리로 얘기하고. 휴지 버리러 갔다오는 아이. 우유 가지러 가는 아이.... 너무나 소란스럽고 정돈되어 있지 않은 분위기였다.

첫 만남 첫 시간에 이런 상태라니...이런 반은 처음이었다. 교사가 들어왔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몇 분을 그 상태로 있는 아이들을 보니 기가 막히고 막막하고 암담했다. 이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내 말의 영향력이 없을 것 같았고, 앞으로의 1년이 너무 힘들 것 같았고, 이 아이들과 시간을 어찌 보내나 걱정스러웠다.

첫 시간 첫 만남에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고 조심스러움도 눈치보는 것도 없고...참 버겁고 힘겨울 것 같았다. 에너지 넘치는 자유로운 영혼이 족히 10명은 되는 것 같았다. 제멋대로일 뿐만 아니라 힘도 세고 거칠고 무서워 보이는 아이들이... 중3의 덩치 큰 남학생들 중 매서운 눈빛을 지니고 거칠고 사나워 보이는 느낌을 풍기는 아이들이 내겐 가장 버겁고 컨트롤이 안되는 힘겨운 아이들이었다. 그런 느낌을 주는 아이들은 내게 함부로 하거나 욕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힘을 휘둘러서 다치게 하거나 아프게 할 것 같았다. 무서운 느낌을 넘어 두렵고 공포스러운 느낌마저 있었다.

쓰다보니 그런 느낌을 풍기는 아이들에 대해 내가 만든 상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고 만나왔었다는 걸 알겠다. 막연한 두려움을 품은채. 지금은 한 명 한 명 만나서 얘기하고 알아가고 친해지니 선입견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겠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아이들로 보이지 않았고, 내가 더 나약하고 힘 없는 존재로 느껴졌었다. 지금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관계의 힘으로 아이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뭉클하고 아리다. 뿌듯하고 기쁘다.

야생 1반에는 차분하고 안정감을 주는 아이들은 절반도 안되는 것 같았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차분히 공부하고 조용히 집중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이 너무 적은 것 같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제멋대로일 것 같은 아이들이 절반은 되어 보였다. 1반을 야생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아이들을 어찌 길들여갈지 막막하고 답답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중의 최고봉이 성수였다.

첫 시간. 어수선한 분위기를 견디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한참만에 아이들이 두리번거리고 서로 눈치를 보며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부반장 호재가 "얘들아, 조용히 좀 하자"한다. "고마워. 그러고 보니 인성이 닮았네. 조인성. 잘생겼다. 앞으로 인성이라 부를께." 호재 입이 귀에 걸리며 "제가 좀 멋있죠"한다.

성수는 여전히 혼자 뒤돌아서 얘기를 한다. "어머, 너는 별 그대의 천송이 남친 닮았네." "아니예요. 안닮았어요."그러면서도 얘기를 멈추고 내 말에 귀 기울인다.

"ᆢ ᆢ ᆢ 샘은 너희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이 가고,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어. 너희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고. 그래서 너희들이 소망하는 꿈을 이루어가는 걸 보면 참 기쁠 것 같아." "너희들이 샘에게도 관심 가져주면 좋겠고. 샘한테 알고 싶고 궁금한 건 없어?"

"몇 살이예요?" "아이는 몇 명이예요?" "에구. 학생들이 늘 묻는 건데ᆢ 말 하려니 마음 아프다. 전에는 너무 마음 아프고 슬프고 눈물이 펑펑 쏟아져서 말도 못 꺼냈었어. 그래서 '네가 샘 아들이잖아.' 이렇게 농담으로 말을 돌리곤 했고. 샘은 아이가 없단다." 아이들의 안타까워하는 탄식의 소리가 들렸다.

성수가 "왜요? 샘은 아이를 못 낳아요?" 한다. 그 말에 마음이 아프고 서글픔이 올라와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들이 성수를 향해 "야~~~" "너무 못 됐다" "나쁘다" "눈치도 없냐?"하며 야유를 보냈다. 성수는 "왜? 그냥 물어 본거야. 궁금해서. 내가 뭘 잘못했어?"

"아냐, 얘들아. 성수가 나빠서 샘이 눈물이 난 게 아니라 아기에 대해 샘이 너무 가슴 아픈 일이 많아서 그래. 성수는 당황스럽고 억울하겠어." 제법 긴 아기에 대한 내 삶의 과정과 진솔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아이들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내 얘기를 듣고 "힘 내세요" ......이런 저런 위로의 말들을 해주었다. 그렇게 첫 시간을 보내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앉아있는데 성수가 찾아왔다.

"샘, 너무 죄송해서 사과드리러 왔어요. 그냥 있으면 너무 찝찝할 거 같아요" 큰 키에 험한 인상에 무서운 표정이었던 성수가 눈가가 촉촉해진 상태로 부드러운 눈빛으로 찾아와서 하는 얘기를 듣고 나도 울컥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너무 고맙고 감동스럽구나. 성수가 아까 그 말하고 샘한테 미안한 마음이 컸나보구나. 그냥 있자니 마음에 걸리고 불편했나봐." "네. 찝찝했어요" "샘한테 상처줬을까봐 염려가 됐나보구나" "네, 죄송해요" "샘을 염려하는 성수 맘이 참 따뜻하고 고마워. 교무실까지 찾아와서 마음 표현하기 어려웠을텐데ᆢ용기내서 말해줘서 고맙고 멋지다" "외모만 천송이 남친 닮은 게 아니라 마음도 닮았네" 표정이 환해진 성수. 인사를 꾸뻑하고 갔다.

그렇게 성수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유형의 아이. 싫어하고 무서워할 만한 유형의 아이. 문득 문득 야비한 느낌마저 드는 눈빛의 아이. 거칠고 험한 말을 마구 쏟아낼 것 같은 아이. 내 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서 나를 힘들게 할 것 같은 유형의 아이.

내겐 가장 큰 도전이 될 아이. 이 아이를 변화시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