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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교실쌤들의 마공이야기

서로 진심만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1. 19. 11:22

아이들에게 진심을 전하려 노력한 2021년.. 그 과정이 험난하고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애써온 것만으로도 벅차고 감사한 나날이었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선 줄이 웅성웅성 시끄럽다.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온다. 별(가명)이와 민수(가명)가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다. 급식실에서 줄을 서고 있는데 별이가 친구와 계속 이야기를 해서 그 뒤에 민수가 앞으로 빨리 가라고 했는데 오히려 별이가 민수에게 화를 퍼부었다. 내가 말려도 별이는 한참 화를 멈추지 못했다.

나중에 두 아이를 불러 이야기를 듣는데 별이는 민수 말을 끊고 억울하다고 했다. 그래서 민수 이야기를 먼저 다 듣고 보낸 뒤, 별이와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별이는 민수가 자꾸 재촉하고 화를 내서 화가 났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그 사건이 아닌 별이를 바라보았다.

“별아,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정말 반가워. 잘 지냈니? 할아버지께서 최근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어. 많이 놀랐겠다 괜찮니? 어머니께서도 지금 병원에서 외할아버지를 간호하고 계시고, 별이도 학교에 정말 오랜만이네.. 그동안 많이 답답하고 힘들었겠는데.. ”

입을 꾹 닫은 말이 없어진 별이는 나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별이가 계속 친구들과 부딪치고 있는데 별이도 많이 힘들고 속상하지? 선생님은 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늘 행복한 사람보다, 어려운 일을 겪고도 극복한 사람이 더 멋지지 않니? 선생님은 별이가 얼마나 멋진 아인지 알아.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도 열심히 잘 도와주고 배려도 잘하지? 그런데 급식실에서 민수의 말 때문에 화가 많이 났구나. 앞으로 살면서 민수처럼 별이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그럴 때 오늘처럼 싸우면 누가 제일 힘들까?”

"저요"

“그래, 별이가 제일 힘들지. 선생님이 조언해줘도 될까? 먼저 별이 마음에 불이 나면, 주변을 볼 수가 없어. 화가 날 때는 멈추고 심호흡을 해봐.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선생님이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도록 해줄게. 그리고 자기 마음을 잘 알아줘야 해. 아 내 마음이 이렇구나 충분히 알아주고 나면 주변도 살필 수 있어. 점심때, 민수랑 싸웠었잖아. 지금은 민수한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니? 별이는 민수한테 어떤 부탁을 하고 싶니?”

"미안해, 그리고 앞으로 화내지 말아 줘"

“그래 그렇게 말해주자.”

오랫동안 화가 난 별이를 위로하며 아이에게 넋두리하듯 내뱉은 말들이 내 마음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했다.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늘 이성적으로 말하며 살가운 말을 해주지 않으시던 엄마, 버럭 화를 내다 다시 금방 언제 화가 났었다는 듯 풀어지는 아빠,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감정이 폭발하는 오빠.
나는 늘 긴장되고 불안했다. 살얼음 걷듯 맘을 졸이며 지냈던 나는 내 기분보다는 가족들의 마음을 먼저 살피기 바빴다. 나는 우리 집이 별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커서도 내 마음보다는 남의 마음에 맞추며 살기위해 애써왔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이 내 책임인양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다. 참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엄마가 아프면서 아빠가 변했고 오빠가 변했고, 그리고 내가 변했다. 사실 엄마가 오랜 투병 생활을 할 때에도 나는 늘 아프고 힘없는 엄마가 내 편이 되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해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나의 진심을 전하고 또 전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1년 전쯤부터, 나는 엄마와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뻥 뚫린 가슴을 채우는 그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더욱 선명히 알았다. 평생 표현하지 못하며 사셨지만, 나를 태어나게 해 준 우리 엄마.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엄마가 표현할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준 그 사랑도 나는 알았다. 벅찼고 그리고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아빠와 오빠와의 관계도 따뜻하게 변했다. 더 이상 서로 진심이 아닌 말로 상처 주지 않았고 상처받지 않았다.

별이는 3월 개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새 학기 때 절친인 우리 반 남학생과 둘이 머리를 뜯고 싸웠다. 별이는 몸집도 우리 반에서 제일 크고 힘도 세서, 나도 제대로 말릴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과도 처음 시비가 붙다 보면 점점 더 싸움이 커졌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화를 참지 못했다. 매일 학교에 늦게 오고, 늦잠으로 아예 학교를 못 오는 경우도 있었다. 숙제나 학교 일정도 전혀 챙기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듣지 못했다. 내가 전체적으로 여러 번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처음 듣는 듯 뭘 해야 할지 몰라 나에게 다시 다시 물어봤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쩌면 아이는 온몸으로 ‘나 힘들어요.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별이가 안타까웠다. 내가 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별이에게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별이 손을 꼭 잡고 긴 대화를 끝내고 교실에 오니, 아이들이 쪼르르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교실이 소란스럽다.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등을 쓸어내리며 ‘사랑한다 사랑한다’ 마음을 보낸다.

“얘들아, 선생님이 늘 말하지? 우리 반 한 명의 일이 정말 그 아이만의 일일까?”

"아니요, 우리 모두의 일이에요."

“그래, 우리 한 명 한 명이 우리 반에 소중한 역할을 하고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 여러분이 동의만 한다면, 선생님은 우리 반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면 좋겠어. 그러면서 서로 오해도 풀고 더 가까워지고 잘 지낼 수 있겠지.

서로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과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달라. 전에 읽어줬던 <화내지 말고 예쁘게 말해요> 그림책 기억나니? 무슨 말이든지 ‘난’으로 시작해서 ‘좋겠어.’로 끝내면 나쁜 말 구름이 사라진다고 했었지.

<함마비> 활동 함께 했던 것도 기억나지? 지금 내 마음을 알아주고 비우면 또 숨겨져 있던 다른 감정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여러분 화가 나면 우선 멈춰서 내 마음을 보고, 내가 뭘 원하는지 안다면 참 좋겠어. 서로 오해 없이 진심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평화로울까? 그리고 선생님도 혼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여러분을 도와주고 싶어. 여러분에게는 모두 마음에 보석이 있잖아. 그러니까, 말 못 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선생님에게 이야기해주면 꼭 들어줄게.”


아이들과 함마비 활동을 했었다. 우선 활동지를 통해 가슴속에 담겨있던 마음을 적는 시간을 갖고, 다 적은 친구들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둘이서 함마비 활동을 하면 된다.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선생님 속이 정말 시원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또 종이 속에 적힌 속상한 마음들을 보며, 열 살 아이들에게도 산다는 것은 참 쉽지 않구나.. 아이들도 마음에 나와 똑같은 어려움을 안고 살고 있구나를 알았다.

또한 우리 사회 속 어른들과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로 자기주장만 하고 존중하지 않는 모습들, 상대의 약점을 파헤쳐 공격하는 것, 화부터 내는 모습, 다름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 나부터 아이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노력하고 또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때로 나도 아이들의 말에 오해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솔직히 표현하고 나눌 수 있기에 오해를 풀고, 속상한 마음을 나누며 좀 더 안전한 학급이 된다. 나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적고 마음이 편안하다. 화를 내는 것과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기에...

다시 별이는 코로나 상황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으로 학교에 2주째 나오지 않고 있다. 원격수업일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 보모님도 코로나인데 전면 등교인 상황에 대해 걱정하시지만, 별이가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시지 않으시는 듯 하다. 1월 중에 전학을 간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때로는 어떤 방법들로도 당장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최선을 다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 아이의 속도와 상황을 인식하고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만이라도 따뜻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별이야,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잘 살자. 선생님은 믿어. 별이도 가족들도 모두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선생님이 마음 보낼게. 학교에서 다시 만나면 우리 다시 잘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