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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호. 1반 민지와의 만남

홍석연(봄) 2021. 5. 11. 15:57

김정석(소망)

학년말, 1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국어교사로서 아이들 수행평가한답시고 수필을 받아낸 적이 있는데, 읽다보니 아이들 삶이 보인다. 아이들은 열심히 써냈는데, 그것에 대해 나누지 않고 사장시키는 것 같아 아쉽고 미안했다.

특히 1반 '민지'의 글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민지'가 초등학교 때 오빠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진솔하게 적어냈다. 사실 '민지'는 수업 태도도 좋지 않고, 불만덩어리(?)처럼 보여서 수업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아이였다. '민지'의 사정을 알기 전에는 '민지'가 짜증스러웠는데, 사정을 알고 나니 그럴 만하겠다 싶어졌었다. 물론 한편에는 불만스러운 마음이 여전하기도 했다.

어제는 1반 아이들이 합창 대회를 한다고 연습할 시간을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민지'가 1반의 리드보컬 역할을 한다. 노래 실력이 출중했다.

오늘은 아이들이 써낸 수필을 다 돌려줬다. 그리고 서로 돌려읽으며 친구들끼리 피드백을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나눈다. “야, 이거 너무 과장이 심한데.” 이러기도 한다.

교사 : 민지야, 니가 쓴 글 읽었어. 그때 기분이 어땠어?

민지 : (주변 아이들 눈치가 보이는지 주변을 살핀다. 원래도 그리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네?

교사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안 해도 돼. 그냥 기분만 말하면 돼.

민지 : 불안했어요.

교사 : 불안했구나.

민지 : 걱정되기도 하고요.

교사 : 걱정되었구나. 그랬겠다.

민지 : 부모님은 병원에 계시고 저는 할머니가 돌봐주셨어요.

교사 : 외로웠다는 이야기구나.

민지 : 네.

교사 : 많이 외로웠겠다. 그 시간들을 어찌 혼자 보냈니~ (문득 남자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민지가 이상했다는 말을 하던 것이 떠올랐다.) 너가 이런 상황인거 친구들한테 말했었어?

민지 : 아니요.

교사 : 그랬구나. 더 많이 외로웠겠다. 외로운데 부모님이나 오빠 걱정할까봐 말도 못했을 거고. 얼마나 서글프고, 외로웠을까.

민지 : 네. 맞아요.

교사 : 초등학교 때 그런 시간을 보낸 너를 보면 너는 어떤데?

민지 : 불쌍해요.

교사 : 불쌍하구나. 불쌍하겠다. 짠하고 안쓰럽지.

민지 : 네.

교사 : 그럼 니가 너를 잘 돌봐줘. 스스로한테 “고생했어.” 이렇게도 해 주고. 지금 기분은 어때?

민지 : (주저하면서)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걸 말할 수 있어서 후련해요. 뭔가 뭉클하고, 감동적이에요. 짠하고요.

교사 : 후련하고 뭉클하고 감동적이구나. 별로 안 친했던 나랑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민지 : (살짝 웃는다.) ….

교사 : 어제 너 노래부르는 거 봤어. 외로웠을 너한테는 노래가 참 소중했겠더라.

민지 : ㅎㅎ 그랬을까요? (부정하는 눈치는 아니였다.)

교사 : 그럼, 그 힘든 시간들을 니가 스스로 헤쳐나온 거잖아. 아주 잘했어. 기특해.

민지 : 고맙습니다.

교사 : 고맙다니까 나도 좋네. 지금 기분은 어때?

민지 : 한결 후련해요. 그동안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걸 이야기할 수 있어서요.

교사 : 아주 반가운 걸. 근데, 사실 나 이 글 읽기 전에는 너 못마땅했었다. 수업태도가 나빠서. 근데, 니가 불퉁불퉁했던 게 너의 경험과 관련이 있나?

민지 : 좀 그렇기도 해요.

교사 : 그랬구나. 너한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알겠다.

1년 간의 앙금이 확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민지'가 느꼈을 슬픔이 전해지니 내 눈가가 촉촉해졌다. 안쓰럽고 딱했고, 그래도 힘이 느껴졌고, 이제는 좀 안심도 되고,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수업 태도를 언급한 것은 교사로서 나의 불편함도 풀면서, '민지'의 수업태도를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살짝 아쉽다. 아쉽다는 말을 쓰려니 내 안의 내가 반발을 한다. '민지'의 태도 때문에 나도 힘들었구나. 그래, 나도 힘들었다. 힘들었던 나도 토닥여 준다. “고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