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담쟁이)
- 뒤늦게 전학 온, 유난스런 개별반 아이! -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주목을 끌만한 행동을 요란하게 하는, 사회성 작렬하는 그러나 지능은 좀 떨어지는 남자아이 영환이가 11월 초에 부산에서 전학을 왔다. 첫 전학생이라 반 아이들(중3)은 초미의 관심을 보였고 장난기까지 얹혀져 영환이는 특별한 환대를 일단 받았다. 며칠 지나면서 엄청난 피로감이 나를 비롯 모든 아이들에게 몰려왔다. 쉼 없이 말을 걸고 오버액션을 하며 셀카를 찍거나 아무나 찍어댄다. 나는 하루에 시간 불문하고 열 통 정도의 전화를 받아야 했고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도 꽤 됐다. 남자아이들의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져서 장난을 빙자하여 영환이의 뺨을 때린 아이가 있었고 진심으로 성질나서 발로 걷어찬 아이도 있었다. 영환이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고, 전학 오던 날 무지막지한 분노 표출로 교무실을 발칵 뒤집었던 영환이의 엄마가 애들을 바꾸라 해서 다이렉트로 조정하거나 혼내는 일들이 발생했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개별반 아이를 돕기는커녕 뭔가 매우 고약한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이 때 마침 영환이가 일주일간 체험학습을 내고 부산을 갔다. 이 틈에 뭔가 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은 없었지만 일단 격해진 아이들의 마음을 풀 수 있는 자리를 제안했다.“원형으로 둘러앉아 영환이 얘기를 해볼까?”
처음으로 반 전체가 둥글게 둘러앉았다. 일단 영환이가 어떻게 했을 때 자기 감정이 어땠는지 사실과 기분과 감정을 위주로 솔직하게 말해보자고 했다. 첫 시도여서 내 마음은 두렵고 떨렸다.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몰라 막막했다. 어떻게 되든 감정을 말하게 함으로써 분노가 누그러지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생긴 여유 공간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영환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와 돕고자하는 마음을 심고 싶었다.
개별반 아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는 거칠고 이기적인 비난도 있었고(이런 발언 직후에는 내가 영환이를 해명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가르치기도 하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힘든 마음을 조금은ㅠㅠ 알아주기도 했다), 돕고 싶지만 받아들이기 어렵고 짜증나는 행동들에 대한 곤혹스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예 말을 안 걸거나 안 받아주거나, 원하는 걸 단호하게 말하는 등 나름의 대처법을 사용한 사례를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적절한 내용일 땐 대처 매뉴얼로 정리해나갔다). 영환이에 대한 불만도 불만이지만 자기 아들을 보호하려 일반 아이들의 고달픔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혼내고 요구하는 영환이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도 상당했다.
좀 더 참고 돕지 않는 것이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아이들 심정이 깊이 공감되기도 했다. 긴장하고 가르치고 정리하려 애쓰는 마음을 어느 순간 내려놓고 그냥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흐르는 대로 맡겨두기로 했다. 중간 중간 장난치는 남자애들에 대한 제지로 짜증스러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비교적 진지하게 두 시간 동안 서로의 마음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두 시간 째 끝 종이 쳤고, 조금은 급하게 훈화로 마무리 했다. 모두가 고생 많다고, 많이 힘들었겠다고 알아주었고, 우리는 잠시 곁에 머물지만 영환이는 평생 장애 속에서 살아간다고, 영환이의 힘든 삶을 공감하는 마음으로 각자가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와주기를, 영환이의 짜증나는 행동들에 감정적으로 맞대응하지 말고 동네의 초1 동생 대하듯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부탁했다. 나는 담임으로서 영환이에게 친구들을 대할 때 어떤 행동들을 조심해야할지 가르치겠고, 영환이 어머님께는 일반 아이들의 고충을 이해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영환이가 돌아왔다. 영환이를 둘러싼 팽배했던 짜증과 분노가 많이 가셔졌음이 느껴졌다. 다수의 아이들이 영환이에 주목하지 않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다행스럽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영환이와 단 둘이 마주앉아 한 시간 반 정도 그 아이의 흐름을 따르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하기도 하면서 두세 가지 약속을 했다. 본인의 허락 없이는 절대 사진을 찍지 말 것, 상대가 싫다고 하면 장난을 바로 멈출 것,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한테 전화하지 말고 반드시 쌤한테 의논할 것!
3주 정도 지났다. 영환이는 아직까지는 집에 전화하지 않았다. 사진도 찍지 않는다. 오버액션은 쉬지 않고 여전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짜증나한다. 하지만 전처럼 격렬하지는 않다. 딱 두 명 정도가 여전히 영환이에게 수시로 까칠하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 삶의 짐이 무거워 좀 더 여유가 없다고 여겨진다.
두 달 이라서 이정도지 만약 1년을 함께 살아야했다면 어찌했을까. 아찔하다. 그러나 언제나 길도 있을 것임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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