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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호. 학급 아이들과의 비정상회담

홍석연(봄) 2021. 5. 11. 15:52

추주연(단풍나무)

어제 중학생 아들이 몰래 스마트폰 공기계를 사용하다 나에게 들켰다. 작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자발적으로 폴더폰으로 바꿨는데 공기계를 사용하다 들킨 것이 이번으로 세 번째다. 이상하게 덤덤했다. 실망스럽고 화나고 배신감 느끼고 걱정되고 불안했다. 그런데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이상하고 의아했다.

아들 녀석이 울면서 죄송하다 하고 자기 스스로가 너무 실망스럽다고 한다. 그런데도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냥 덤덤해서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 오늘 아침 4반과 첫 수업

나 : 음, 얘들아 선생님이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야. 엄마, 아빠 몰래 뭘 한다거나 거짓말 해 본적 있어?

아이들 : 있어요. 당연하죠. 거짓말 안해본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말도 안돼.

77 : 어? 난 한번도 없는데? 어떻게 부모님한테 거짓말을 해?

88 : 아~ 뭐야. 너 지금 그게 거짓말이지?

22 : 맞아, 77 니가 더 이상해. 무슨 말이든 다 하는 건 부모님한테 막말하는 거지.

나 : 22야, 그건 무슨 뜻이야? 무슨 말이든 다 하는 건 막말을 하는 거라니?

22 : 부모님한테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거죠. 상처받으실까봐..

나 : 그래? 거짓말하는 게 부모님께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라는 거야? 22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야.

22 : 그럼요.

나 : 실은 우리 아들이 어제 몰래 스마트폰 공기계로 인터넷 하다가 나한테 들켰거든. 이번이 세 번째 걸린 건데, 화고 나고 실망스럽고 걱정도 되고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 덤덤한거야. 예전 같았으면 머리를 막 쥐어뜯었을 상황인데 그냥 덤덤하더라구. 애가 눈물을 흘리면서 죄송하다고 후회된다고 하는데도 그냥 덤덤했어. 나 이상하지?

쭈니가 눈물을 흘렸다는 말에 여러명이 ‘어우~~~~ ’하며 안타까운 듯한 표정들을 짓는다.

33 : 아들이 눈물 흘리는 게 반성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우는 걸로 보이셨나봐요.

44 : 샘, 그건 너무 화가 나서 그런 거예요.

55 : 샘이 아들을 사랑해서 그런 거 같아요.

아...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정말 시원했다.

나 : 야~ 니들 진짜 놀랍다. 맞아. 정말 반성하는 건가? 의심스럽기도 했어. 그리고 진짜 화가 많이 나서 오히려 할 말을 잃었던 것 같아. 아~ 그리고 내가 참 우리 아들을 사랑하는구나 싶다. 야,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아는 거야?

66 : 샘 마음속에 여러 개의 마음이 있네요?

나 : 그래, 그러네. 여러 개의 마음이 다 내 마음인 거 같아. 이런 나... 비정상인가요?

아이들 : 정상이에요. 샘~

나 : 그래. 안심된다. 그럼 우리 아들은 비정상인가요?

아이들 : 정상이에요. 정상!! 완전 정상이에요. 저희도 다 그래요.

나 : 하하하, 그래. 진짜 안심된다. 고마워~ 니들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어. 샘 고민 들어줘서 고맙다.

아이들 : 언제든 말씀하세요~ 샘.

한가득 불편했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이들이 놀랍고 든든하다.

지금 아들이 거실에 나와서 공부를 한다. 내 눈앞에서 공부하는 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책 속의 내용으로 말을 건넨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이렇게 아들과 옆에서 같이 공부하는 게 좋다. 아들이랑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