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우리)
지난 여름부터 초등학교 5학년인 딸 현이 친구 관계에서 힘들어 했다. 절친이라 여긴 친구들이 딸을 무시하는 말을 하거나 욕을 섞어 말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 때마다 나에게 속상하다고 이야기해서 마음을 들어주곤 했지만 나도 힘들고 속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해서 간간이 코치를 해 주고 담임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내야 했다.
그렇게 2학기를 맞이해서 조마조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딸이 그 아이들 중 한 명에게 너무나 심한 욕을 듣고 와서 우는 것이 아닌가? 엄마의 개입을 바라지 않는 딸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과 엄마로서 지혜롭게 딸을 돕고 싶은 마음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친한 사람들에게 내 힘든 마음을 알렸더니 마음이 꽤 편안해지며 무기력에서 벗어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의지가 올라왔다. 그냥 내버려둔다면 현이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엄마로서 지켜주고 싶었다.
다행히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음 날 바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고 선생님께서 잘 처리해 주셨다. 그 아이 엄마와도 통화했다. 처음에는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며 속상했던 맘을 나한테 화풀이 하듯이 흥분하며 역정을 냈지만 나중에는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했다. 두 번째 통화에서 자기 아이가 한 번 더 그런 일이 있으면 꼭 자신한테 알려달라는 당부를 듣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며칠 후 학교샘께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렸다. 아이들이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정식으로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했다. 선생님께서 흔쾌히 승낙하여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얘기를 현이를 통해서 들었다.
저녁을 먹으며 현이와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현이의 표정이 온화하다. 평온하다.
표정만 봐도 안심이 된다. 보복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다행이다.
현이와 이번 일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현이가 어떤 맘으로 이 일을 대했을 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 맘도 표현하고 싶었다.
나: 현아, 이번 일 겪으며 어땠어?
현: 힘들었어.
나: 어떤 게 힘들었어?
현: 걔네들한테 욕먹어도 엄마한테 이야기 못한 거.
나: 나한테 이야기 했잖아. 그거 말고도 또 있었어?
현: 그 전에 몇 번 더 있었는데 엄마 속상할까봐 말 못했어.
나: 아이고, 엄마가 속상할까봐 말 못하고 끙끙 앓았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우리 현이 맘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고마워. 현이가 엄마 안 힘들게 하려고 그랬던 거네. 그런데 앞으로는 네가 더 힘들기 전에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그러라고 있는 거잖아. 우리 현이한테 힘 되고 싶어. 그리고 어땠어?
현: 걱정되고 조마조마하기도 했어. 혹시 잘 해결 안되면 어떡하나 하고.
나: 그랬겠다. 걱정되고 조마조마했겠어. 지금은 어때?
현: 편해. 괜찮아졌어.
나: 다행이다. 지금 엄마한테는 어떤 마음이 들어?
현: 고마워.
나: 선생님한테는?
현: 미안해.
나: 왜?
현: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아서.
나: 그래, 현이 땜에 선생님이 힘들었을까봐 미안했구나. 그 애 엄마랑 통화하면서 안 좋았다는 얘기 듣고 그러지? (응) 우리 현이 참 따뜻해. 현이 맘을 선생님이 아시면 좋아하시겠다. 또?
현: 고맙기도 하지.
나: 그래, 고마웠구나. 걔네들한테는?
현: 글쎄, 잘 모르겠어.
나: 아직 맘이 복잡한가보네. 사과는 받았지만 여전히 불편하기는 하지?
현: 응.
나: 그럴 것 같아. 엄마는 아직도 그 애들이 너무 밉다. 안타깝기도 하고. 그나마 다행인 게 현이가 이야기 했으니 다음부터 걔네들이 현이나 다른 애한테 함부로 말하진 않을 것 같아. 스스로에게는 어땠어?
현: 뿌듯해.
나: 어떤 게 뿌듯해?
현: 잘 해결한 것 같아.
나: 그래, 뿌듯할만해. 엄마는 현이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 보통 12살짜리 아이가 자기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쉽지 않거든. 친구와의 관계에서 애매모호한 상황이 참 많을 텐데 현이는 걔네들과 안좋은 일이 있으면 알아차리고 엄마한테 표현했잖아. 이번에 일이 해결된 것도 네가 표현하지 않았으면 해결하기 힘들었을 거야. 우리 현이가 참 섬세하고 멋진 딸인 것 같아. 또 늘 고마웠던 게 엄마를 믿고 얘기해 준거야. 자랑스럽고 대견해.
현: 응
나: 그런데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현이가 이번 일을 힘들었던 기억으로만 가져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살아보니까 이렇게 힘든 일을 겪고 나면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계기가 되더라. 현이 생각에는 어떤 게 좋을 것 같아?
현: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나처럼 이런 일을 겪는 친구들을 잘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나: 그렇지. 역시 현이답다. 이 일이 우리 현이라는 나무에 주는 거름이나 다름 없는 거지. 그렇다고 늘 힘든 일만 생기는 건 아니니까 안심해.
현: 힘든 일 다음에 좋은 일 이렇게 오는 건가?
나: 엄마는 힘든 일 세 번 정도 겪으면 좋은 일 한 번 정도 오더라구. 그 힘든 일이 밑거름이 되어서 좋은 일이 더 좋게 느껴지지.
현: 그럼 나도 힘든 일 많았으니까 이제 좋은 일만 남았네. 휴대폰 받을 날이 올까?
나: 이런...
딸아이가 스스로 뿌듯하게 여기는 게 가장 고맙고 다행스럽다.
이렇게 우리 둘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현이는 친구와의 문제로 늘 신경이 곤두서 있어 날카로운 말을 하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참 수용적이고 편하다.
아이와 이야기하는 동안 자꾸 울컥해서 힘들었지만 좋았다.
우리 딸한테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은 맘이 컸는데 엄마노릇 한 것 같아 다행이다.
현이와 내가 더 끈끈해진 것 같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 지 모르지만 그 어려움이 나와 아이에게 경험과 배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잘 헤쳐 나가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나도 딸과 함께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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