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우리)
학예회 연습 중이다.
불평불만이 많고 부끄럼도 많지만 성실하고 공부에 열심인 수정이.
어릴 때 날 보는 듯 하여 조심스럽고 늘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간다.
뾰족한 저 표현 속에 여리디 여린 마음이 있단 걸 알기에.
1학기에는 거의 표현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다가
2학기 들어서는 전체 앞에서 자주 발표도 하고 불만도 이야기 한다.
불만을 들으면
‘우와, 정말 부정적이다. 어쩜 저렇게 부정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랍다.
수학 시험지 답안에 ‘수직’을 ‘수진’으로 잘못 써서 글자가 틀렸는데도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인정하거나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툴툴거리면서 이게 왜 틀린 거냐고 따지는데 내 말은 듣지 않고 잘라 먹기 일쑤다.
학예회 연습 때 율동을 하기로 했었는데 한 가지 동작이 너무 민망하다고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다른 걸로 바꾸자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2학기 들어 말하는 건 반가운데 이제 질리기도 하고 내 인내심의 한계가 올 때가 종종 있다. 참고 참다가 나도 모르게 ‘욱’하게 되어 학기 초처럼 말문을 닫아버릴까 걱정되어 늘 조심스러웠다.
이번에는 학예회 뮤지컬에서 남자 아이들은 안하고 자기만 여러 번 노래와 율동을 해서 불만이란다. 내 딴에는 설치는 남자애들보다는 여자애들이 무대에 많이 서면 좋을 거라 생각해서 기회를 많이 준건데 속상했다.
수정:(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화를 내며) 선생님, 저는 학예회 때 제가 맡은 게 너무 많아요. 노래도 몇 번이나 불러야 하고 율동도 해야 되고. 계속 나가서 해야 되요. 근데 남자애들은 계속 놀기만 하고 왜 우리만 이렇게 하는 게 많아요. 남녀 차별이에요.
나: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노래 외울 것도 많고 율동도 해야 하니까 힘들었겠다. 게다가 남자 아이들은 노는 것 같으니까 더 하기 싫겠다. 남녀 차별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부당하다고 생각했나봐.
수정: 네. 저는 ‘눈이 와요’ 율동도 만들어야 하는데 남자 아이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요. 여자 애들만 많이 하잖아요.
나: 남자 아이들도 수정이가 고생하는 만큼 많이 했으면 하나봐. 그런데 수정이와 함께 하는 아이들은 어떤지도 들어보고 싶네. 선생님은 수정이한테만 이 말을 들어서 다른 아이들도 힘들었나 궁금하고 염려되기도 해. 혹시 수정이처럼 다들 힘들면 선생님이 조정해 줄 수도 있을 것 같거든. 혹시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 있어?
예진: 저는 수정이랑 조금 다른데요.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남자 아이들이 우리가 율동 만들고 있는데 그게 뭐냐면서 똑바로 하라고 하고 놀리듯이 말해서 속상해요.
나: 지금 뮤지컬에서 맡은 양은 괜찮고 남자 아이들 말이 힘들다는 거구나.
수정:(내가 말하려는데 가로막으며)제 말이 예진이랑 같은 뜻이에요.
나: 같은 뜻이라면 예진이처럼 네가 맡은 파트가 많은 건 괜찮은데 남자들 때문에 약올랐다는 말이지?
수정: 네.
나: 아 그랬구나. 남자 아이들이 약올리는 게 싫었구나. 남자아이들한테도 확인하고 싶네. 수정이 이야기 듣고 어때?
종현: 저는 좀 억울해요. 저도 계속 서 있어야 되고 노래 부르느라 얼마나 힘든데요. 여자애들만 역할 많은 거 아니에요. 또 저는 놀린 적 없어요.
나: 종현이도 맡은 부분이 많아서 힘들었구나. 선생님은 종현이는 신나게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힘들어도 참고 하고 있었던거네. 알려줘서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네.
종현: 네
나: 혹시 다른 남자애들은 수정이가 놀린다는 얘기 듣고 어때? (반응이 없다. 관심 없어 보이기도 하고 ) 그럼 수정아, 네가 놀린다는 아이들이 누군지 말해줄 수 있어?
수정: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보고 웃으면서 얘기했어요.
나:(답답하지만 참았다)그렇게 율동 만들고 있는데 너희들 보고 웃으니까 싫었겠다.
수정: 네, 우리는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하는데 남자 아이들은 막 놀잖아요.
나: 남자 아이들 노는 거 보고 약 오르고 너도 같이 놀고 싶은데 못 노니까 못마땅했구나. 혹시 다른 여자 애들도 그런 마음 있었는지 궁금하네.
서연: 저는 율동 만들 때 재미있었어요.
나: 서연이는 재미있기도 했구나. 서연이처럼 재미있었던 사람 또 있나요?
3-4명이 손든다.
수정이처럼 힘들고 약오른 사람은?
3-4명이 손 든다. 안 든 아이들도 있다.
나: 힘든 애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애들도 있었네. 선생님은 수정이가 이런 얘기 해주어 참 반갑다. 우리가 수정이 덕분에 힘든 아이들이 누군지도 알게 되었고 친구들 생각도 듣게 되었네. 다른 친구들도 수정이처럼 불만이 있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고 풀어갔으면 좋겠어요. (수정이 표정이 확~ 편다)
선생님은 수정이한테 궁금한데 수정이가 정말 바라는 게 뭘까?
수정: 저는 남자 아이들이 우리 율동 만들 때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나: 남자 아이들이 도와주길 바란다고?(반갑고 의아하다. 남자 아이들한테 무슨 기대를 하고 있던 거지? ) 율동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들었나 보네.
수정: 네. 남자 아이들이 도와주면 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수정이가 율동을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구나.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도와주길 바랬구나. 선생님이 한 번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수정이는 그걸 잘 해내고 싶었나봐. 그래?
수정: 네
나: 그렇다면 선생님이 수정이를 좀 도와주고 싶어. 선생님은 너희들이 선생님이 율동 만드는 걸 좋아하고 더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 여겨져서 한 번 해보라고 한 거고 너희들 거 참고 해서 선생님 거랑 합쳐서 만들려고 한 거야. 선생님 말이라면 잘 듣는 수정이니까 꼭 해야 한다고 여겼구나. 책임감이 남다르니 더 열심히 했을 거고. 우리 수정이 정말 든든하다. 너희들끼리 다 하려면 힘드니 선생님과 같이 간단하게 만들어 보자. 어때?
수정: 네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은 건 잘하고 싶은 맘이 크니 부담스러워서라는 걸 돌고 돌아 알게 되었다. 나또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다. 무슨 일이든 쉽게 하기 힘들어 하고 어렵다 생각되니 불평이 생기고 다른 사람 탓하고 핑계를 대고 싶고, 하기 싫어지는 마음이 어릴 때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수정이를 보면 짠하고 자꾸 보게 되고 잘 컸으면 좋겠고 ‘저 뾰족한 말들이 부드럽게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안타깝다. 한편 내가 이렇게 공들이고 있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아서 서운하기도 하고,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아이니 날 돌아볼 여유가 없겠지 싶어 이해가 되면서도 만나면 허전한 아이기도 하다. 다른 여자 아이들은 눈빛으로 관심과 사랑을 마구마구 표현하는데 얘는 눈빛도 정말 시크해서 싫기도 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 송라중 연수갈 때 깡충깡충 뛰어와서 날 문 앞까지 배웅하면서 ‘선생님, 잘 다녀오세요.’라고 했던 말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 아이가 처음으로 내 마음에 드는 말과 행동을 먼저 시도한 거다. 그랬기에 내가 이번에 수정이 맘을 들어주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남자 아이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건 반갑고, 그 말을 듣기까지 내가 화내지 않고 들어주려 노력한 건 스스로 다행스럽고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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