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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호. 다살림 갈등조정 대화 시도

홍석연(봄) 2021. 5. 12. 15:40

추주연 (단풍나무)

 
갈등 조정 1.
 
수빈이 어머님이 학교로 찾아오셨다. 아이들이 엄마 이름을 소재로 놀려서 수빈이가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수빈이가 ‘아이들이 계속 놀리면 홧김에 사고를 칠 것 같다’고 말한다며 불안해 하셨다.
 
다음날 수빈이를 부르자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선오와 민수라고 했다.
 
수빈, 선오, 민수와 1시간 동안 상담을 했다.
먼저 ‘있었던 일, 감정, 생각, 정말 바라는 것’을 찾아 글로 써보게 하였다.
 
수빈 : 나는 화나고 괴롭고 답답하고 밉고 분하고 불편하고 힘들어. 왜냐하면 내가 화를 내는데도 계속하는 태도이고 장난처럼 사과하기 때문이야.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부모님 욕을 안했으면 좋겠어.
 
선오 : 수빈이를 놀렸을 땐 재밌는 기분이 들었어. 왜냐하면 친구이기 때문이야.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수빈이가 알았으면 하는 거야.
 
민수 : 당황스럽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어색하고 혼란스럽고 후회스러워. 수빈이가 나의 장난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앞으로는 심한 장난은 치지 않고 수빈이가 싫어한다면 하지 않을 거야.
 
선오와 민수에게 수빈이의 기분이 어떨지 찾아보게 하였다. 힘들고 화나고 짜증나고 싫을 것 같다고 찾는다.
아이들과 쓴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오와 민수의 이야기를 듣고 수빈이의 표정이 많이 편안해진 것으로 보였다.
부모님 패드립 문제는 요즘 남자 아이들 사이 갈등에서 자주 나타난다.
선오와 민수가 수빈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으로 보여 안심이 되었다. 그것이 교사인 나의 지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이들 간에 스스로 이루어진 것이 좋았다.
 
갈등 조정 2.
 
현준이와 준서가 나에게 갈등 조정을 요청했다.
 
환공포증 증세가 있는 준서에게 현준이가 원그림을 계속 보여주는 장난을 했고, 화가 난 준서가 현준이의 샤프 촉을 구부려 망가뜨렸다.
현준이는 샤프에 금이 간 것을 보고 화가 나서 필통을 던졌는데 필통 속에 있던 샤프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났다고 한다. 현준이가 준서에게 샤프값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야겠다고 주장하자, 준서는 구부러진 촉을 펴주었고 금이 간 것을 자기는 보지 못했다며 두 동강 난 책임이 현준이에게 있다고 했다.
현준이는 분한 마음에 눈물까지 흘리고 준서는 어이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나 : 두 사람 이야기를 골고루 번갈아 들을게. 괜찮겠어?
 
현준, 준서 : 네.
 
상황에 대한 사실 관계를 각자 이야기하는 동안 쭉 두 사람의 기분을 알아주었다.
현준이는 화나고 분하고 짜증나고 아깝고 걱정되고 한편 준서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준서는 어이없고 억울하고 황당하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30분 정도 이야기하였다. 사실 관계는 확인할 수 없고,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었다. 나는 그저 두 사람 기분만 알아주었다. 눈이 벌개져서 눈물까지 흘리던 현준이는 얼굴색이 돌아왔다. 준서는 펄펄 뛰던 말투에서 누그러졌다.
 
나 : 현준이는 아까보다 표정이 좀 편해보이는데, 어때?
 
현준 : 네. 좀 괜찮아졌어요.
 
나 : 그래, 현준이는 화가 많이 났는데도 침착하게 이야기하는구나. 이 상황에서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준서 이야기도 잘 들으니 기특하다.
 
현준 : 네.
 
나 : 준서는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어이없었겠어. 그런데 화난 상태에서 네 입장이나 상황을 차분하게 말하는 건 선생님을 존중해 주는 것 같더라구. 고마워. 그런데 지금 샤프가 망가진 것이 누구 책임인지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 시간이 너무 늦었고 괜찮으면 이 이야기를 내일 이어서 하고 싶은데, 두 사람은 어때?
 
현준, 준서 : 네, 괜찮아요.
 
나 : 좋아. 지금은 기분이 어떤지? 스스로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선생님에게.
 
현준 : 뭐, 이제 괜찮아졌어요. 준서한테 미안해요. 그런데 샤프 값은 받아야겠어요. 선생님께는 죄송하고 감사해요.
 
준서 : 저도 미안해요. 근데 샤프 값 내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죄송해요.
 
나 : 선생님은 아까보다 편안하고 두 사람 믿는 맘이 있고, 아직 걱정되는 맘도 있고 그래. 나한테 미안하구나. 내가 맘 쓰는 거 알아주는 거 같아서 좋네. 이제 집에 가자.
 
다음날 아침
 
현준이는 샤프값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말씀드렸더니 신경 쓰지 말고 친구와 잘 지내고 시험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현준이는 산 지 얼마 안되는 비싼 샤프가 친구랑 싸우다 망가진 것을 알면 엄마가 걱정할 것 같아 불안하고 염려되는 맘이 가장 컸던 모양이다.
 
현준, 준서와는 오늘부터 시작된 중간고사가 끝나고 이어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을 때 감정만 알아주어도 좋구나. 신기하고 안심된다.
이 때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