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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호. 엄마와의 대화

홍석연(봄) 2021. 5. 12. 15:43

신지원 (온돌)

 

상황:

 

어느 날 엄마가 남편차로 언니네 있는 큰 화분을 옮겨 달라 했다.

화분이 다 죽었는데 언니가 치우지 않고 베란다 구석에 밀어두었고, 새로 심으라고 사다준 군자란을 바닥에 봉지째 놔두었다며 엄마라도 가져가 키워야겠다고 하셨다.

 

언니네 들른 김에 화분을 봤는데, 화분은 생각보다 넘 크고 무거워 보였고 차로 옮기려면 시트에 눕혀서 옮겨야해 흙이 쏟아지는 걸 감수해야 했다.

언니는 엄마의 의도가 안 치우고 그냥 둬서 대신 치워주려는것이면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두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스냅작가로 일하는 언니의 하루는 좀 빡빡한데 많이 피곤해 보였고 화분을 방치하고 있는 상태가 이해되기도 했다.

나는 엄마에게 자동차로 옮기는 건 무리이고 언니가 알아서 한다 하니 그냥 두시라 전했다.

 

그리고는 몇 주가 지났다.

언니는 식구들과 며칠 여행을 가면서 10분 거리에 사는 엄마에게 고양이 밥 주는걸 부탁했고, 오늘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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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대화

 

*엄마. 언니네서 화분가져왔엉. 테잎을 온몸에 둘둘 감았음.(의료용 테이프. 일 하면서 근육통도 잦고 관절이 다 망가져 자주 쓰신다.) 엄마가 사준 다육이 언니네는 다죽어감. 막내딸이 젤 잘키우고 그담엔 우리거가 잘크고 있음ㅎㅎ

 

내가 군자란 가져다 주었는데 봉지째 그냥 두고 물도 한 번 안 주었는데 꽃도 피고 있더라구. 그래서 불쌍혀서 내가 가져다 심어났엉. 에구.

 

*(깜짝 놀람) 화분을 들고왔다고? 그 큰걸?

군자란만 가져온다는 거 아니었어?

 

(나는 이때부터 화가 잔뜩 나기 시작했고, 엄마가 이해 안 되어 답답했다.

도대체가 몸도 안 좋은 양반이 그게 무리일게 뻔한 상황에서 그걸 기어코 들고 왔다니 답답했고

하지마시라 했던 걸 기어코 하시는 건 또 무슨 고집이래?’ 싶어 답답했고.

우리는 원치 않는 걸 없는 돈까지 써가며 예고도 없이 떠넘기듯 가져다놓고서는 안 쓴다고 뭐라 하셨던 그간의 경험들이 오버랩 되어 짜증이 솟구쳤다.

그리고 엄마가 그간 화분을 안 가져다준 나와 언니를 탓하는 것처럼 여겨져 맘 상하기도 했다.)

 

*엄마두 번 갔다 왔엉. 젤루 큰 건 못 가져왔구. 바퀴 달린 가방으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잉.

 

(‘그러게 도대체 그 큰 걸 왜 가지고 왔어!’를 쓰다 지우고,

그러게 하지말란 건 왜 기어코 하시고는 아프다하신데?’ 하는 말을 쓰다 지웠다.

아픈 건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해서 그런 거니 나한테 아프다마셔.’ 라는 생각에 미치니 내가 참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본인이 원하는 걸 하면 힘든 건 감내해야 한다는 걸 요구하고 있구나.

엄마는 서운함과 원망도 있겠지만 그냥 이해받고 싶으신 거겠지. 나는 알아드리기만 하면 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니 알아드리고 싶은 맘이 조금 들었다. )

 

*에구. 힘드셨것네.

 

*엄마아무도 안 가져다 주고 몸살났엉어잉.

 

(엄마가 책망하는 것 같아 다시 욱하는 맘이 올라왔다.

그리고 답답함이 올라왔다. 군자란만 가져다 다른 화분에 심으면 간단한 것을....

미련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리 가져와야겠다 싶으셨구만.

언니가 알아서 버린다고 했는데 군자란만 가져오지 그랬엉.

 

*엄마그려. 언니두 매일 가져다준다구 말만 하구.

 

(화와 답답함과 짜증이 계속 올라오는데... 거기에 가려진 감정이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엄마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길 바랐던 건 왜일까 생각해보니, 속상했던 거다.

이건 표현해도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마니 혼자 힘쓰고 아픔 속상하자너.

 

*엄마그럼 어디다 심어.

 

*빈화분을 하나 사징.

 

*엄마비싸.

 

*(이런식으로 사실문제 해결을 해봤자 뭔 소용인가 싶어)

오마니 고생하고 아프다하니 속상해서 하는 소리여~

그래서 이뿌게 심어 놓으셨어?

 

*엄마그래두 가져와서 속이 시원혀. 담에 와서 구경혀유.

 

*(좀 안심이 되었다. 내가 먼저 '시원하시것네.'하고 전환시키려다 엄마 입에서 먼저 나와 나도 시원했다. 그러자 맘을 더 알아드리고 싶은 맘이 들었다.)

그러시것네. ㅎㅎ

맨날 기둘고 계시다가 안 되겠다 싶으셨구먼.

 

(나는 대화를 마치려니 아쉬움이 좀 올라왔다.

내 입장에서는 언니가 충분히 이해되다보니 엄마가 언니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맘이 들어서였다. 그러면 좀 덜 원망스럽지 않으실까 싶기도 하고.

언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나저나 요즘 언니도 정신 없나보네.

전보다 바쁜가보징?

 

*엄마그려. 마져유. 내가 참아야지.

 

*ㅎㅎ 오마니 맘이 태평양이시네.

 

*엄마여행가서 며칠 있었나벼. 오늘 온대. 고양이 밥 주고 똥 치우고 왔엉.

 

*글쿠먼.

언니도 오마니 가찹게 사니 도움 받고 든든켔구먼.

 

*엄마울 딸 담에 만나유.

 

*오마니가 일 끝나자마자 가서 고생하셨네.

그려유~ 8일 저녁에 봐유.

 

*엄마: (하트 이모티콘)

 

*: (하트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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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고....

 

엄마는 그냥... 언니 욕이나 함께하고 힘들고 아픈 걸 이해받고 싶었을 것 같다.

거기에 욱해 하며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나를 보면서, ‘엄마에 관련된 일들은 내가 쉽게 여유를 잃는구나.’ 싶다.

그간의 엄마에 대한 인식들이 눈앞의 엄마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언니의 자리에 빙의되어 언니편을 들고 있구나 생각되었다.

 

그래도 톡 중에 감정을 탐색하고 다른 감정을 선택하여 표현하고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시도를 한 내가 장하다.

대화를 마치면서는 화와 짜증도 풀어지고 마음도 그럭저럭 편안했다.

엄마가 느꼈을 속상함 안타까움 서운함 애쓰임 힘듦들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에게는 마음 알아주기가 참 쉽지 않은데 이 정도 한 것도 용하다 싶다.

... 신랑에게는 태평양 같은 수용력을 보이는데... 엄마한테도 그리하고 싶다.

 

주말에 강사과정에 참여하며 이 사례를 가지고 마음 비우기를 했다.

행복하니, 쿨장미, 강물님이 내 감정을 알아주니 수용 받는 것 같아 안심 되었다.

엄마에 대해 느끼는 귀찮음, 성가심, 짜증들이 이해받아지는 것이 참 안심되었는데... 그 감정들은 느끼면서도 스스로 '엄마한테 이런 감정 느껴도 되나?' 제동을 걸고 있었나보다.

 

내가 찾은 본심은 '내 인식 속의 엄마가 아니라 실제의 엄마를 만나고 마음을 알아주고 싶다. 그걸 통해 엄마를 사랑하고 싶다.' 였다.

3번 선언하면서 마음이 먹먹하고 울컥했다.

내 속에 있던 엄마에 대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만난 것 같았다.

 

덕분에 연수 끝나고 만난 엄마가 다시 한 번 화분 옮기던 상황을 언급하셨는데 편안하게 맘을 알아드렸다.

안심되고 반갑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