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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호. 갈등 조정의 새로운 시도

홍석연(봄) 2021. 5. 12. 15:45

정유진 (낄낄)

 
상민이 승후는 학기초에 진짜 매일 몇 번씩 싸웠다.
모둠에서 대각선으로 앉아 있기 때문에 다른 모둠원 2명도 괴로워했다.
승후는 느리고 말이 적어서 친구들이 많이 답답해하는데
예민해서 잘 삐지고 고집은 또 세서 나도 답답한 면이 많다.
상민이는 매사에 대충해서 내는 편이고 승후가 싫어하는 말을 하며 ‘관종’이라는 표현과 같이 심정을 거슬리게 하는 말을 써서 싸움을 유발한다.
반 아이들도 나도 이제는 둘에게 짜증이 났다.
 
처음에는 싸울 때마다 불러서
마음 알아주기, 본심 나누기, 칭찬으로 마무리하기 등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때 뿐인 것 같아서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녀석들이 서로 이해했으면 해서 에고그램 수업도 했는데.
(덕분에 좀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싸운다.)
 
아이들도
- 아 선생님 쟤네 또 싸워요.
- 이승후, 좀 쓸 데 없는 걸로 삐지지 좀 마라.
 
결국 나도
- 승후야, 선생님 생각에는 니가 기분 나쁜 포인트가 다른 친구들과 다른 것 같아. 그걸 친구들에게 이해시키든지, 니가 마음을 넓게 쓰든지 해야 될 것 같다. 아니면 괜히 너만 잘 삐지는 친구가 되잖아.
그리고 상민이는 아무리 장난이라도 욕을 섞어 하거나 친구가 싫다는 말을 계속 하는 건 정말 고쳐야 할 것 같다. 관종이라는 말은 옆에서 들어도 기분 나쁘고 불쾌해.
둘은 오늘 둘의 관계에 대해서 마음비우기 공책 써와.
 
결국 둘은 마음비우기 공책에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써왔다.
참 어이없을 정도로, 어쩌면 당연하게도 둘의 마지막 문장은 거의 똑같다.
“좋아하는 친구고 잘 지내고 싶은데 자꾸 싸우게 되어서 힘들다.”
 
나는 댓글에 ‘싸우는 게 꼭 나쁜 게 아니다. 싸우면서 그 친구가 싫어하는 걸 알게 되니까. 대신 알게 되면 조심해 주는 노력은 필요하겠지? 선생님은 너희가 싸우더라도 조금씩 이해해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친해지려는 마음이 있으니까.’라고 써주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싸우더라도 개입하지 않았다.
 
태현 : (따로 와서)선생님, 저를 저 모둠에 넣어주세요. 저는 다 잘 지낼 수 있거든요. 제가 화해시키고 승후 좀 챙길게요. 승후가 좀 느리고 그래서 챙겨야 할 것 같아요.
 
나 : 고마워 태현아. 든든하다. 그런데 태현아, 둘 다 친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서 일단은 둘이 싸우고 화해하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기다려보고 꼭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면 어떨까?
 
태현 : 네! 나중에 안되면 제가 해결할게요.
 
민호 : (모두가 있을 때) 선생님, 친구끼리 싸우면 반성문을 쓰는 학급규칙에 대해 제안을 하겠습니다. (종이에 제안서를 써 왔다. 목적, 방법 등이 적혀 있다.)
 
아이들 : 네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상민이랑 승후 너무 자주 싸워요.
 
나 : 우리 반을 위한 규칙을 제안하는 게 고맙고 멋지다. 민호가 우리 반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구나. 그런데 친구랑 싸우면 반성문을 쓴다는 건 친구랑 싸우는 게 잘못이라는 거야?
 
아이들 : 네~ 잘못이죠~
 
나 : 그래 사이좋게 지내야한다고 생각하는거지? (네) 그런데 친구랑 싸우는 거 자체가 잘못은 아닌 것 같아. 친해지는 과정이고, 싸우기도 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거잖아. 싸운다고 반성문 다 쓰게 할 필요가 있나? 혹시 너무 심해져서 욕이나 폭력까지 쓴 경우에는 모르겠지만.
 
아이들 : 그건 그래요.
 
나 : 그리고 상민이랑 승후, 선생님은 둘이 친해지는 과정으로 보고 기다려주고 싶은데. 상민이 승후 어때?
 
상민, 승후 : 네 요새는 점점 덜 싸워요.
 
나 : 그래? 잘됐구나. 그리고 얘들아, 저렇게 자주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꼭 화해하고 다시 노는 걸 봐라. 싸우는 것만 보지 말고 화해하는 것도 보면 걱정이 덜 되지 않을까?
 
아이들 : 어 맞네~
 
이 대화 후에는 둘이 싸워도 아이들은 웃으면서 ‘야야 또 싸우냐~’ 정도? 그리고 점점 싸우지 않게 되었다. 요즘도 가끔 투닥이고 말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금방 화해하고 그럴 때는 내가 굳이 개입하지 않는다. 며칠 전 마음비우기 공책에 두 녀석이 ‘요즘 서로 친해져서 참 좋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이번 사건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1. 개입을 줄인다. 지켜는 보되 믿고 기다리기
2. 대신 주변 친구들이나 학급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 친구들의 본심을 보도록 하기
3. 필요한 경우에는 따로 불러 마음을 알아주기였다.
 
스스로 관계를 맺어가도록 믿고 기다려주기!
나에게는 꽤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동안 초등학생들과 있으면서 내가 너무 다 해주려고 하지는 않았나 반성도 해본다.
 
상민이와 승후 뿐 아니라 둘씩 친한 아이들이 마음비우기 공책에 투닥거리며 싸운 이야기를 많이 적는데, 댓글로 마음 알아주고 지지해주되
둘을 불러 중재는 신중하게 하고 있다.
지켜는 보되 믿고 기다려주기. 주변 살펴주기.
상민이와 승후 덕분에 배운 또다른 갈등중재 방법이다.
 
쓰고 나서 지금 기분은
흐뭇하고, 뿌듯하고, 고맙고 든든하고 안심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