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열음)
아버지는 올해 1월 중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퇴원하고 나서도 4개월 사이에 세브란스 병원의 응급실을 수 차례 드나드셨고, 그 사이 병실 입원도 두 차례 하셨다. 이제 아버지는 감기만 걸려도, 조그마한 자극에 쉽게 흔들리는 ‘유리 아이’가 되어 버렸다. 잠들면 영원히 못 깨어나실 것 같으신지 저녁에 잠도 잘 못 주무신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친정집에서 갑작스럽게 걸려오는 전화소리는 늘 나를 늘 튀어오르게 하였고 그러는 몇 달 사이에 나와 동생은 아버지와 이별할 현실적인 준비들을 하나씩 하고 있다. 남동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 5살, 3살인 아들과 제주도 여행을 3일간 다녀오고, 우리 가족 모두가 들어간 가족사진도 찍고, 아버지와 어머니 영정 사진도 준비하고, 여수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이장하는 일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아버지와 이제는 기억조차 까마득하던 일상들을 추억 삼아 이야기 나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자전거 타고 소아과 병원 갔던 일, 함께 만화책 보며 셋이서 낄낄 대던 일, 늘 들려주시던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 지금은 기아 타이거즈가 되었지만 그때는 해태 타이거즈의 어린이 야구단 단복을 입고 포즈를 잡던 일, 동물원에 같이 가서 커다란 보아뱀 보며 놀래다가 솜사탕 하나에 기분 좋아 내려온 일, 극장에서 같이 본 영화들, 음반 가게에 들려 같이 음악 듣던 일, 아버지가 나와 동생 고등학교 3년 내내 등하교 시켜주셨던 일, 대학 합격할 때 ARS 전화에 들리는 합격 소식 듣고 기뻐했던 일, 임용고사 합격했다고 나를 부둥켜 앉고 아버지가 엉엉 우셨던 일, 남동생의 대학 합격과 사법 시험 합격 소식에 기뻐하던 모든 일들... 아버지가 갑자기 저혈당으로 쓰러져 신부 입장할 때 같이 입장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80년 5월, 귓전을 울리던 군헬기와 탱크 이야기까지 아버지와 연결된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 나눈다.
대학 때 시골로 전해진 선배들의 편지를 뜯어 보았던 근심 많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릴적 춤을 추고 싶어 했고, 대학 다니면서 대학원을 가고 싶어했고, 디자인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는데 교사가 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 속 깊은 이야기들, 동양사를 공부하고 싶어 하던 남동생을 꿇어 앉혀 경제학을 공부하게 했고, 결국에 법 공부를 하게 했던 이야기까지..
그 상황 속에 아버지는 우리에게 70 평생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할머니의 비루한 삶과 그 할머니에 대해 가졌던 속상함과 서운함도 꺼내주신다. 초등학교 이후 마음 둘 데 없이 다른 사람 집에 얹혀살면서 공부해야 했던 비참하고 서글펐던 당신의 삶도 나누어 주신다.
그리고 4살 때 잃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도..
아버지가 담담하고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나와 동생은 그런 아버지를 토닥이며 참 많이 애썼다고, 진짜로 수고가 많았다고 알아준다.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우리는 참 좋다고 말한다. 좋은 머리와 괜찮은 외모와 남에게 폐끼치지 않으려고 하고, 약한 사람들 보면 도우려고 하는 우리는 각자가 속한 조직과 사회 속에서 무던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 아버지로부터 받은 소중한 유산이라고, 그래서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잘 전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할머니와 화해하고 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수용하고 있다. 듣고 있는 나와 동생은 안심되고, 다행스럽다. 아버지가 이제는 더 편안해지실 것을 안다.
정신없는 응급실과 잠시 검사를 위해 들리는 병실과 중환자실의 짧은 면회와 다시 격리 병동에서의 까다로운 면회, 투석실에서 우리는 만날 때 마다 서로의 소중함을 알리고, 전하고, 마음을 나눈다. 여러 의사들의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안내에도 아버지는 힘겹지만 이겨낸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 고마워한다.
병원 퇴원 후 아버지는 1주일에 4일씩 집 근처 병원에서 4시간의 혈액투석을 한다. 15일 이상의 중환자실 생활과 2달간의 병원 생활로 힘들어진 약한 몸은 회복이 쉽지 않아 혼자 걸을 수 없기에 휠체어는 누가 밀어주어야 움직이고, 투석 마친 후에는 누군가 도와주어야 한다.
때마침 방학이라 시간의 여유가 있는 나는 4시간의 투석을 마치는 12시 30분이 되면 아버지가 누워 계신 병원에 가서 식사도 챙겨드리고, 신발 신는 것도 챙겨드리고, 알콜솜도 빼드린다. 환하게 웃으며, “아버지 수고했어~” 라고 “아버지 짱”이라고 알아준다.
아버지가 나를 많이 든든해하고 고마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무릎 꿇어 아버지에게 신겨 드리는데, 의자에 앉아 발을 내밀고 계시던 아버지가 말한다.
아버지 : 미안하다. 딸아~ (울컥한다.)
나 ; (아버지를 쳐다보며) 아버지가 나한테 많이~ 미안한가 보네.
아버지 : 응. 그렇지. 너도 많이 바쁜데... (뇌경색으로 말이 어눌하시다.)
나 : 진짜.. 나는 이렇게 아버지랑 같이 있어서 정말 좋은데,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 근데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좋아?
아버지 : 응.. 그럼.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나 : 그치, 내가 기특하지?
아버지 : 응 (눈물이 고이는 것 같다.)
나 : 그럼 내가 말해 달라고 하는 대로 해줄 수 있어. 아버지라면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버지 : 응. 할게.
나 : 그럼 이제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고맙다’고 해줘요. 나는 그 말이 더 좋거든. 아버지도 나나 경준이 그리고 엄마에게 번거롭게 하는 미안한 마음보다는 곁에서 잘 챙겨주고, 아버지 맘을 잘 알아주고,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아버지를 1순위로 여겨 내어주니 진짜 고마운 거잖아. 그게 아버지의 귀하고 소중한 맘인 걸 아니까, 나도, 경준이도 엄마도 그런 마음들을 잘 느끼고 누리고 싶거든. 듣고 어때?
아버지 : 응. 그렇지.
나 : 자~ 그럼 지금 바로 해봐요.
아버지 : 고맙다. 딸~
나 : 오~ 잘했어요. 아버지 고마우시죠? 저도 이렇게 아버지랑 같이 있을 수 있게 아버지가 힘내주셔서 고마워요.
옆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담당 간호사가 우리에게 한마디 건네신다.
간호사 : 아버님~ 보기 좋으세요.
아버지 : 고마워요.
나 : 와~ 우리 아버지는 한다면 바로 하시네.. 대단하네. 간호사 선생님. 보기 좋으셨나 봐요? 저는 감사해요. 저희 가족들은 모두 선생님들께 늘 많이 감사하고 있어요.
간호사 : (웃으며) 저희야 아버님이 투석 잘하고 계시니 고맙죠..
아버지 : 근데, 너 말 진짜 잘한다.
나 : 아버지가 엄청 기쁜가 보네. 뿌듯하지? 근데 누구 딸이어서 그럴까?
아버지 : 응, 내가 잘 키운 딸.
나 : 그치. 잘 키운 딸... 고마워요. 아버지
다음 번 병원을 다녀오신 아버지는 그 간호사분이 투석도 잘한다고 칭찬했다고 좋아라 하신다. 그리고 ‘고맙다’라고 얼굴 보고 말했다고 하셔서 칭찬 도장 5개를 찍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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