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남 (나무)
다음 주 교육여행 준비로 버스와 방 배정, 장기자랑을 정하는 학급회의를 했다. 진행은 회장과 부회장이 주도하도록 부탁했다. 여자아이들에게 예민한 부분이라 버스와 방 배정이 오래 걸릴 것 같았으나 이미 친한 그룹들이 있어서 자연스레(?) 조율되었다. 반에서 아이들과 교류를 거의하지 않는 현진에게 마음이 쓰인다.
문제는 장기자랑, 담임회의에서 반별로 한 팀 이상씩 나오도록 하자는 얘기를 전했는데 회의 진행이 어려웠다. 우리 반 아이들 성격이 나서서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어느 누구도 자원하지 않는다. 댄스반인데 축제 때 공연을 못한 수연이도 할까 하다가 마음을 접고, 몇은 추천을 하는데 당사자는 부담스러워했다. 작년 댄스반이었던 성연이는 며칠 남지 않은 교육여행이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부회장(에고그램 CP, A유형)은 아이들을 푸시하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정해야하는 것은 정하고 싶은 맘일 것이다. "니네 남의 일처럼 하면 어떡해. 의견 좀 내. 시간 안에 못하면 이거 하는 거야." 등의 말을 들으며 나도 긴장이 되고 걱정되고 AC성향 아이들은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은이가 제안한 ‘반 전체가 하는 율동’이 거의 강제적으로 정해지는 듯 했다. 아이들 마음이 많이 불편해 보인다. 부담스러워 하는 게 느껴지며 나도 답답하고 무겁고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미안하다.
교무실에 와보니 다른 반은 몇 팀씩 지원했다는 말에 안심이 된다. 아이들 마음을 풀고 좀 편하게 해야겠다 싶었다. 6교시 교실에 들어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둥글게 앉자고 했다. 아이들도 앉고 나도 그 일부분으로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나 : 아까 회의하면서 나도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더라. 레크레이션이 즐겁자고 하는 것인데 너희들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회의하며 들었던 생각이나 마음들 나누고 풀어보자. 돌아가며 한마디씩 할까? 우선 나는 교무실 가니 마음이 무겁고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 너희들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회장인 지민이와 성지가 힘들었을 것 같고, 어떻게든 진행하려고 한 것은 고맙고, 의견 표현해준 시은이나 지현이도 고맙고. 회의하면서 불편했던 것이나 들었던 생각, 감정, 마음들 말해보자. 지민이부터 돌아가면서 할까?
지민(회장) : 진행하면서 좀 힘들었고, 회의할 때 자기 생각을 표현했으면 좋겠어. 하기 싫은 것도 괜찮으니까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나 : 지민이 얘기 듣고 해주고 싶은 말 있는 사람 하자.
성연 : 고생했어.
성연이가 멋있고, 고맙고, 든든하다.
지민 : (미소)
혜수 :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차분하면서 호소력이 있어서 집중시키는 에너지가 있다.) 교육여행 가면서 잘 정해져서 기분 좋게 다녀오면 좋겠다.
성지 : 의견을 표현하지 않아서 답답했어. 잘 참여해 줬으면 좋겠어.
지현 : 적극적으로 표현 안해서 미안해.
진희 : 어 나는 빗으로 머리 맛사지를 받고 있어서.
시은 : 어, 나는 머리 맛사지 해줘서 미안해. 그리고 의견 낸 것도 미안해.
나 : 응? 무슨 말이야?
시은 : 단체로 하자고 해서 부담준 것 같아서요.
혜지 : 나도 미안해.
성연 : 반별로 한 팀씩 하라는 것이 좀 강제적인 것 같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몇 가지 말을 더 했는데 엄청 진지해졌고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집중이 되었다.)
성지(부회장) : 전체적으로 하는 건데 다른 반에서도 몇 팀 안나오면 좀 그런데....
나 : 그게 걱정되는구나. 나도 걱정 되서 교무실가서 아까 여쭈어보니 어떤 반은 세 팀이 나온다고도 하고, 한 팀 씩 나온다고 하더라.
아이들 : (안심하는 듯, 놀라는 듯) 헐 진짜... 웅성웅성
회장 지민이가 돌아가면서 발언하도록 진행을 한다. ^^
한희 : 별 생각이 없는데...
나 : 회의하면서 들었던 기분이나 마음들은?
한희 : 2학년 전체에서 하는 게 껄끄러워요.
나 : 어? 어떤 말이야?
한희 : 우리 반끼리 하는 것은 괜찮은데 2학년 전체 앞에서 하는 건 껄끄러워요.
나 : 아~~ 그렇구나.
성지 : 그런데 자치위원 회의할 때는 레크레이션 안하는 것으로 정했는데, 왜 전체 레크레이션이 들어간 거예요?
나 : (살짝 긴장되고 불편하다.) 아~ 자치위원 회의할 때 레크레이션 안하는 것으로 했는데 들어가서 궁금하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하단 말이지? (당황스럽다.) 그런데 나는 레크레이션 안하자는 얘기는 못들었어. 학년 전체 레크레이션이 의미가 크거든. 서로 얼굴보고 단합도 하고.(약간 버벅, 왜냐하면 합당한 이유를 그럴 듯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나조차도 의미 없이 그냥 순응적으로 부장님의 의견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성지 : 네.
나 : 반드시 해야 하는 게 부담이 됐을 것 같아. 어떻게든 학교에서 하자고 한 거니까 맞춰서 진행하려고 한 거 아니니?
하은 : 저는 별 생각이 없어요.
나 : 응~ 옆에 설희는?
설희 : (엎드린다)
나 : 왜 갑자기 자는 척 해. 소연이는 어땠어? 회의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기분...
소연 : 저도 별 생각이 없어요.
나 : (끄덕)
지민이가 그 옆에 아이들이 표현하도록 진행을 한다.
선영 : 부담이 됐어.(다른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난다.)
은빈 : 서로 원만하게 해서 즐겁게 갔으면 좋겠어.
(은빈이의 한마디에 아이들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NP의 말의 힘이 부럽고 고맙다.)
나 : 이런 맘들이구나. 부담을 극히 주면서까지 하게 하는 것은 담임인 나도 원하지 않고 학년부 샘들도 원치 않으실 것 같아. 이제 반 장기자랑을 할지 안할지, 한다면 무엇을 할지 얘기 나눠 보자. 지민이가 진행해 볼래?
지민 : 그러면 부담 내려놓고 시간이 좀 있으니까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신청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성연 : 혹시 다른 반은 하는데 우리 반만 안해도 괜찮은지? 혹시 맘에 걸리는 친구가 있는지 확인해 보면 어떨까?
지민 : 어때 얘들아?
아이들 : 괜찮아. (성연이도 끄덕하며 안심하는 듯)
나 : 그래 ^^ 그런데 얘들아 중간고사도 있어서 시간이 너무 촉박하게 알려준 것 같아서 담임샘으로서 미안해.
지민과 아이들 몇 : 에이 아니에요.
나 : (안심되고 자책에서 조금 가벼워지고 고맙다. 왠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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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고 나서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가볍고 아이들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마음 나누기를 하고 난 후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는지 나눠보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지 않은 이유 또한 있다. 더 길어지면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거나 하기 싫어할까봐 두려웠다. 물론 안전교육을 해야 하기도 했지만 두려움과 망설임 그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안전교육 때 가볍게 너스레도 떨고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읽고 반응해준다. 평소보다 아이들 대하는 것이 편하다. 아이들도 더 가볍게 대해주는 듯 하다.
마음나누기를 시도해 본 내가 자랑스럽다. 아이들도 진지하게 듣고 표현해준 것 같아서 고맙다. 진지한 분위기에 잔잔히 마음들이 표현되니 불편함들도 조금 누그러드는 듯 보여 안심된다. 한편으로는 AC성향의 마음들을 뒤에서 더 알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리고 궁금하다. 생각이 없다는 말의 의미가... 내가 봤을 때 표정으로는 참 많이 애쓰고 마음 썼던 걸로 보였는데, 집단에서의 문제인가. 아이들 마음을 더 듣고, 더 알아주고, 더 칭찬할 지점들이 참 많았는데, 그 순간들이 아쉽다. 지나고 나서야 생각이 나는 것일까.
매 순간이 만남이 깊어질 순간인 것을.
지금 나는 따뜻하고 평온하고 조금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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