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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호. 우리반 아들들과 청소하기

홍석연(봄) 2021. 5. 18. 12:52

추주연 (단풍나무)

 

우리 반 아들들 따뜻하고 든든하다.

 

남자 아이들과의 교실 청소는 만만치가 않다. 책상 밀기며 바닥 쓸기며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내 잔소리와 닦달이 있어야 움직인다. 그래도 청소 시간에 아이들과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며 이렇게 저렇게 청소를 끝내곤 했는데, 오늘 청소 시간엔 책상 두 개가 완전히 뒤집혀 있다. 뒤집힌 책상으로 장난을 치느라 청소는 더 늦어졌다.

 

종례 시간

 

: 책상 이렇게 뒤집은 사람 누구야?

 

현준 : 저요. 저는 민규꺼만 뒤집었는데요?

 

: 그래? 그럼 상진이꺼는 누가 그랬어?

 

아무도 말이 없다.

 

: 상진이 책상 뒤집은 사람이 없다는 거야?

 

아이들은 계속 말이 없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화가 났다. 청소가 늦어지고 책상 주인이 싫어하고 나도 보는 맘이 편치 않으니 책상 뒤집는 걸 다시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시험기간이라 빨리 종례를 마치고 집에 가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랐다.

 

: 그럼, 상진이 책상 뒤집은 사람 나올 때까지 전체 기다리겠습니다. 공부할 것 꺼내세요.

 

상진 : 선생님 전 괜찮은데요?

 

: 내가 안괜찮아.

 

어우~ 하는 소리가 들린다. ~ 누구야? 하는 소리도 들린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올해 아이들에게 한 말 중에 가장 폭력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을 뒤집은 한 사람 때문에 전체에게 남으라 하다니... 스스로 어이없고 부끄러웠다. 그만큼 화가 났다. 정말 화가 났구나. 좋게 말하는데 나오지 않다니 너무 하네. 혹시 다른 반인가? 난감하고 짜증나고 이런 일이 반복될까봐 불안했다. 청소는 제대로 하지 않고 뒤집혀 있는 책상으로 장난을 치던 실장이 책을 꺼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얄미웠다.

 

: 얘들아, 선생님 지금 화가 난다. 청소가 늦어지고 너희들은 장난치는데 열중하는 것 같아서 선생님은 힘들었어.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반복될까봐 불안해. 지금 내가 바라는 건 이걸 누가 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하고 싶어. 마음이 불안해서 너희들한테 약속을 받고 싶었어. 너네는 듣고 어때? 선생님 안심시켜 줄 수 있나?

 

현준 : , 오늘 처음으로 애들이 장난친 건데. 앞으로는 안할게요.

 

: , 좀 안심이 되네. 너네도 샘 말 듣고 황당했을 것 같은데..

 

인호 : 아니에요. 선생님, 힘내세요.

 

민준 : 선생님, 힘 드셨겠어요.

 

: , 고맙다. 더 많이 안심되고 샘 힘든 것도 알아주니 인호랑 민준이 고마워~ 샘 맘이 풀린다. 그럼 이제 집에 갈까? 가서 시험 준비 잘 하구.

 

부끄럽다. 3학년 전체적으로 아이들을 엄하게 통제하자는 분위기라 부담이 되었다. 자꾸 지위파워를 쓰고 화를 내는 것 같아 부끄럽다.

 

오늘은 그 순간, 아이들에게 감정과 본심을 전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무엇보다 놀란 건, 우리 반 아이들이 그 상황에서 힘내세요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자기들 말로 오글거리는 그런 표현을 하다니!

 

종례가 끝나고 한 녀석이 옆으로 슥 다가와서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도망치듯 간다. 밤에는 또 다른 녀석이 지금 되게 추운데 쌤 감기 조심하세요. 내일 뵈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장난치는 재미로만 사는 것 같던 녀석들이 오늘은 따뜻하고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