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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제126호. 전교짱이 공개사과를 하기까지

홍석연(봄) 2021. 5. 21. 09:02

김인수 (담쟁이)

 

강전(강제전학)을 두 번 당한 전교 짱이 우리 반(3)에 있다. 살짝 겁이 났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올라왔고, 마음 리더십 배운다는 걸 다 아는데 잘못해서 비웃음을 사거나 마리의 공신력을 떨어뜨릴까 부담도 됐다.



센 듯 안 센 듯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의 아이와 비교적 평화롭고 친밀하게 2주를 보냈다. 마리를 적용해 순간 거칠어진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고 새로 시작하기 좋을 때임을 계속 반복해서 얘기했다. 아슬아슬했지만 다행스러웠고 쌤들은 '벌써 잡았다'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셋째 주 금요일 종례직전, 아이가 사물함 앞의 의자 다섯 개를 하나씩 하나씩 험악하게 발로 차며 욕설 비슷한 말들을 내뱉었다. 아이들은 얼어붙었고 막 종례하러 들어왔던 나도 영문도 모른 채 머리 속이 하얘졌다. 당황스러웠고 무서웠고 위축됐고 괘씸했고 정말 난감했고, 그 순간 말리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고 있는 내가 쪽팔렸고 나머지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큰소리로 거칠게 제지하면 내가 봉변을 당할 것 같았다. 폭력을 폭력으로 제지하면 저 녀석은 절대 평화를 배울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묘안은 뭘까 머릿속이 분주했지만 그냥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아마도 분노를 담아, 그것만 하고 종례를 마치고 아이들을 보냈다. 복도에 따라나가 쌤이랑 대화를 하고가야 한다고 했고 복도파 스무 명 정도가 모인 상태에서 그 녀석은 호기롭게 맘대로 하라고, 학교 안다니면 그만이라고 소리치고 사라졌다. 그 순간은 겁도 나고 화끈거릴 정도로 쪽팔렸다. 허이구야~ 교실에 남아있던 아이들의 진술을 모아보니 사물함에 책을 갖다두러 가는데 '찐따'가 길을 막고 있었다고 승질을 부린 거라 한다. 기가 막혔다.



교무실에 와서 3학년 쌤들에게 사건과 감정을 토로하고 난 뒤 많이 가벼워졌다. 마리 배우기 전 같았으면 며칠은 괴로워하고 골몰했을 크기의 감정들이 아주 작아져서 살짝 걸리는 정도로만 남았다. 스스로 기특하고 마리가 신뢰로웠다. 해결방법을 선별하는데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다. 교감쌤과 의논했고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분별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선도는 하는 걸로 가닥을 잡았다.



주말 마리연수 뒤풀이에서 자문을 구했다. 거의 처음 보는 쌤들이었는데 느닷없이 문제꺼리를 들이밀어 죄송했으나 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했으므로 필사적인 마음이었다. 편안쌤은 나머지 아이들을 보호하는 문제와 그 아이를 지도하고 관계를 풀어가는 문제를 분리시켜주셨고 선도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해 주셨다. 가랑비님은 사람을 때리진 않은 걸 칭찬할 수 있다고 하셨고 로또님은 그런 식으로 가오를 잡아야만 하는 삶을 사는 게 얼마나 불쌍하냐고 하셨다. 놀라웠다. 고 녀석이 괘씸해서 로또님의 견해에 저항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깊고 따뜻하고 진심으로 상대 입장에 선 마음이었다. 관점이 확 전환되었다.



일요일 낮에 용기를 내서 녀석에게 카톡을 보냈다. 잽싸게 응하면서 애들에게 미안하고 쌤께도 죄송하다며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너무 쉬워서 불안했다. 일단 인정하고 칭찬해줬다. 사건 당시 그녀석의 감정상태도 수용해줬고 나머지 아이들의 감정과 나의 감정상태도 물어서 답을 듣고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이미 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을 했다. 격한 반발이 시작됐다. 사과하면 끝인 거 아니냐고, 사람도 안때렸는데 무슨 처벌이냐고, 이런 거지같은 학교 안다니겠다고, 차라리 자살하겠다고. 정말 허걱이었다.



녀석이 말하는 대로 입으로 듣기하고 감정듣기 하다가 설득하고, 반발하면 다시 입으로 듣기하고 감정듣기 하다가 설득하기를 세 차례 정도 반복한 거 같다. 중간중간 학교생활 잘하고싶었던 가장 큰 본심도 알아주고 확인시켜줬다. 세 시간여에 걸친 톡 끝에 그녀석의 맨 마지막 멘트는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였다.
솔직히 무지하게 다행스럽고 기뻤다. 유능감도 크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이 아이에게는 미안했다. 그래도 난 해결해야했다. 아이도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한다. 내 기쁨을 수용했다.



선도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아이는 여전히 아슬아슬했다. 교무실에서는 솔직하고 고분고분했고 아이들 앞에서는 무례해서 난감했다. 그놈의 '가오'가 여전히 문제였다.



아이엄마와 통화하면서 폭력아빠가 있다는 것 외에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에게는 더없이 다정다감하고 심부름 잘하고 장난 잘치고 어떤 면에선 많이 소극적인 아이였다. 사람 많은 곳에선 공황장애 비슷한 걸 느낀다고도 하셨다.



아이의 두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가오 잡을 때 가끔 어설프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던 것도 이유가 있었다. 안쓰러웠다. 아이를 조용히 불러서 물어보았다. 쌤이 본 걸 종합해보면 넌 따뜻하고 대화도 잘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짱 역할을 감당하느라 많이 힘들지 않냐고. 아이가 수줍게 고개 숙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놀라웠고 다행스러웠고 고마웠다. 하지만 3,4월엔 짱노릇을 계속해야 된다고 했다. 나는 4월부터 그만하자고 제안했다. 가볍고 재밌었다.



엄마의 사정을 배려하여 저녁 여섯 시에 대선도를 열었고 교감쌤을 비롯 위원들의 따뜻하면서도 엄격하고 정확한 조언들이 이어졌고 엄마가 많이 우셨다. 모자가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갔다. 함께 선도에 참여해주신 쌤들이 고맙고 멋있었다.



다음날 아침 보니 아이의 얼굴빛이 달라져있다. 애기 같고 편안해보였고 조금 상기되어있다. 신기했다.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 아이가 전날 동의해준 대로 학급에서 공개사과를 했다. 사과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용기 있는 일인지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얘기를 했고 녀석은 약간 유머러스하게 조금은 수줍게 진심을 담아 미안함을 전했다. 애들이 다 같이 와다다다 박수를 쳐줬다. 놀라웠다. 따뜻했다. 진심 기뻤다. 뭉클했다. 고마웠다.



한편의 드라마 같다ㅎㅎ
무엇보다, 잘하고 싶었던 아이의 본심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한 기특한 내가 있었다. 기특한 내가 되는데 마리와 편안쌤과 도반들이 있었다. 감사하다. 다행스럽다. 수고한 나를 인정하고 보살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