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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호. 꾸중 대신 불편했던 마음 알아주기로 생활지도하기

홍석연(봄) 2021. 5. 21. 09:09

김미영 (우리)

 


준영: 선생님~ 성훈이가 화장실에서 물 뿌려서 이도 못 닦았어요.


성훈: 저는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성훈이 때문에 못 들어갔어요.


교사: ? 알았어. 선생님이 이야기 해 볼게.


(성훈이가 교실에 들어오는데 윗옷 소매랑 배 부분이 젖어 있다)


성훈아, 아까 또 화장실에서 물장난 쳤다며? 맞아?


성훈: (고개 끄덕인다.)


교사: 그렇다면 선생님도 이제 화가 많이 난다. 지난 번에도 준영이 옷 다 젖게 해서 준영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또 그랬단 말이지? 실망인데...


선생님 생각에는 성훈이가 친구들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야 다음에는 안 할 것 같아. 앞으로 다른 친구들도 이렇게 할 거니까 잘 봐두면 좋겠어. 성훈이는 선생님이 하는 것처럼 너 때문에 불편했던 친구들을 공감해 주면 좋겠어.


성훈: (끄덕끄덕)


교사: 얘들아, 성훈이가 오늘 물 뿌려서 불편했던 사람 일어나 볼래?


준영, 성훈, 태희, 주영이가 일어난다.


교사: 그럼 이 친구들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들어봐. 불편했던 친구들은 이렇게 말해줄래?


나는 기분이 화났어. 왜냐하면 이러이러했기 때문이야. 이렇게 말야.

 


(앞에 앉은 친구부터 차례대로 시켰다.)


태희: 나는 무서웠어. 왜냐하면 우리 엄마가 내 옷 젖으면 엄청 화내시기 때문이야. 지난 번에도 옷 젖었다고 엉덩이 맞았단 말이야.


교사: 성훈아, 공감해 줄래? 무서웠겠다.


성훈: 무서웠겠다.


태희: 괜찮아.


준영: 나는 지난 번에도 그랬는데 또 그러니까 좀 그랬어.


교사: 어땠는데?


준영: 화가 정말 많이 많이 났어요. (지난 번 쌓인 것까지 말을 꽤 오래 한다.)


교사: 정말 화났겠다. 성훈아, 해봐.


성훈: 정말 화났겠다.


준영: 쬐금 내려갔어요. 아직 완전히는 아니에요.


교사: 그래, 그게 그렇게 쉽게 풀리겠어? 더 내려가면 얘기해 줘.


성훈: 나는 정말 안좋았어.


성훈: 안좋았구나.


성훈: 괜찮아.


교사: 근데 주영이는 화장실에 같이 안 있었는데 왜 일어났지?


주영: 나는 성훈이 때문에 선생님이랑 공부하고 싶어도 못해서 안좋았어요.


교사: 불편했겠네.


주영: .


교사: 성훈아, 해봐.


성훈: 불편했겠다.


주영: 괜찮아.


교사: 주영이가 지금 불편한 걸 얘기해 주니 정말 좋아. 아주 솔직하게 얘기해 주니 성훈이가 친구들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았을 것 같아.
성훈아, 이제 친구들이 어떤지 알았지?


성훈: .


교사: 성훈이가 앞으로 물장난 안치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겠어?


성훈: .


교사: 그럼 한번 친구들한테 얘기해 줄래?


성훈: 얘들아, 미안해, 앞으로 화장실에서 물장난 안할게.


교사: 아이구, 우리 성훈이 멋지다. 친구들 다 보는데서 힘들 수도 있는데 친구들 마음도 알아주고 사과도 하니까 정말 용기 있어. 또 선생님 하자는 대로 해줘서 고마워.
지금 기분은 어때? 혹시 속상할까봐 걱정되기도 하는데 괜찮아?


성훈: . 괜찮아요.


교사: 다행이다. 1학년 5, 봤어요?() 앞으로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면 성훈이처럼 이렇게 마음 알아주기 할 거에요. 성훈이가 정말 잘 해내서 우리 반 친구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잘 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가요?() ~ 좋아요. 다음 수업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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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잘못을 꾸중하는 대신 상대방의 정말 불편했던 마음을 알게 된다면 행동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시도해 보았다.


이 시도가 조금이라도 효과적이라 여겨지는 이유 몇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성훈이가 장난이 심하지만 날 좋아하고 결이 고운 아이라 잘 따라주었던 것 같다.


둘째, 자신의 물장난 치는 행동에 대해 저항 없이 인정했기에 시도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요즘 성훈이가 집에서도 물장난에 꽂혀 있다는 걸 학부모 상담을 하며 알게 되었다. 얘기 듣고 나니 성훈이가 더 이해되고 귀엽기도 했다.)


셋째, 무엇보다 아이들간의 관계가 조금 긍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내가 화났다는 걸 표정이나 말로 표현해서 아이가 무서움을 느껴서 따랐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였을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성훈이가 어땠는지 마지막에 확인하고 성훈이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 1학년이라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아이들이 비언어적 메시지에 민감해서 나의 화난 표정 몇 번만 봐도 바로 긴장하는 게 느껴지고 아이들이 교사나 학교를 편안하게 생각하지 않게 될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학기 초가 좀 지나면 나도 불편한 감정을 편하게 표현하고 아이들도 나에 대해 좀 더 알아가면서 편하게 받아들일 거라는 기대도 있다.

 

다음 날, 평소에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고 내가 안그랬어요.’ 라고 하거나 울기만 하고 말하지 않던 아이가 자기 때문에 아팠던 친구를 공감해주는 말을 했다. ‘아팠겠다.’ 한 마디이지만 그렇게 말한 게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고 공감교실을 꾸려나가는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점점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