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주 (트리앤트리)
우리 반 성빈이가 몸살로 점심을 먹기 어려우니 죽을 사러 가겠다고 해서 외출증을 써 주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위조가 의심된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는데 외출증 이름 부분에, '박효진'을 더 써넣어 효진이도 같이 외출하였다. 위조된 외출증을 본 순간 매우 놀라고 배신감이 느껴졌다. 수빈이와 효진이 둘 다 내가 매우 신뢰하던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5교시 우리 반 수업 때 당장이라도 이 일에 대해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여유있게 대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일단 모르는 척 수업을 했다.
종례 후 수빈이와 효진이를 불렀다.
나: 효진이와 수빈이 선생님한테 할 얘기 없니?
아이들:(당황하며) 아! 점심시간에 무단외출 했어요.
나: 그래... 샘이 외출증에 효진이 이름 써넣은 것을 보고 믿기지가 않았어. 배신감도 느껴지고. 샘은 수빈이와 효진이가 하는 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너무 속상해. 난 너희 둘을 정말 믿었고 계속 믿고 싶거든. 샘은 이제 어쩌지?
아이들: 죄송해요.
나: 우리 효진이와 수빈이가 왜 그랬을까?
효진: 수빈이가 아파서 혼자 가는 것이 걱정됐어요.
나: 그런 이유라면 수빈이가 외출증 받을 때 얘기하지 그랬어.
효진: 샘이 허락해주지 않으실 것 같아서요. (효진이의 성향과 말하는 느낌이 완전히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나: 네 얘기를 들으니 샘이 섭섭해. 걱정되기도 하고. 효진이가 샘을 믿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나 필요한 얘기를 못할 때도 있을까 싶어서.
효진: 아니에요. 샘! 사실 학교를 벗어나 자유롭게 외출하고 싶었어요.
나: 수빈이가 나간다고 하니 효진이도 학교를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잠시나마 느끼고 싶었구나. 확 공감이 되는 걸!! 샘도 근무시간에 외출하면 꿀잼이긴 하더라구.
효진: 네.
나: 그러고보니 우리 효진이가 FC 성향이었지!! 그럼 더더욱 유혹을 느꼈겠구나. 그럼 효진이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배워야할 게 있어. 효진이는 자유로운 영혼이니까 충동적으로 규율을 어기고 싶을 때가 있을거잖아. 그럴 때 오늘처럼 하면 신뢰를 잃을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럴 땐 신뢰를 지키면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겠어. 샘 얘기 어때?
효진: 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마음이 편해 보임) 샘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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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상담하거나 지도할 때 문제점과 개선해야 하는 이유, 올바른 생각과 행동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곤 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변화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관계마저 멀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운산고에 와서 공감교실 모임을 만나게 됐다. 공감교실의 진정한 의미를 내면화하고 대화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했다. 2주에 한 번씩 운영되는 교내 공감교실 교사동아리와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수도권 교사공감교실 워크숍이 좋은 연습의 장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생각과 본심을 잘 성찰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사가 되고 싶다. 이러한 나의 바람을 지원해주는 공감교실이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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