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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호. 아들과의 평화로운 대화

홍석연(봄) 2021. 5. 25. 10:50

이기영 (비비)

 

6학년 아들이 영어학원에 아직 안 왔다는 학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과 통화가 되어 어디냐 물었더니 학원 갔다 오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화를 내면서 학원부터 가라고 한 뒤 다녀와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은 후 마음 비우기를 위해 만남일기를 썼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여러 부정감정들을 분류해서 정리하니 차츰 안정되었다.

 

 

아들과 마리대화로 풀어보려고 마음먹으니 기대도 되었다. 축 쳐져서 돌아온 아들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나: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한 번 들어보자.

 

아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우물우물)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수학학원에 갔더니 5분 늦었다고 혼났어요. 그래서 기분이 상했어요.

 

나: 네 말은 오늘 몸 컨디션이 안 좋은데다 선생님이 늦게 왔다고 혼내서 기분이 상했단 말이지?

 

아들: , 게다가 누나가 가르쳐준 수학문제를 스스로 풀지 않았다고 잔소리도 하셨어요. 그래서 좀 억울했어요.

 

나: 정말 억울했겠네. 몰라서 누나한테 물어본 것도 풀어 보려고 노력한 건데 스스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받았으니... 그래서?

 

아들: 마치고 영어 학원을 가는데 민혁이랑 준서가 30분만 놀고 가라고 해서... 기분도 안 좋고 그래서...

 

나: 분전환 삼아 친구들이랑 30분 정도 놀았구나. 그러다 엄마 전화를 받았.

 

아들: , 엄마가 어디냐고 해서, 어차피 영어 학원 갈 거라서, 엄마가 잔소리할까봐 영어 학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어요. 엄마 오실 때쯤이면 영어마치고 집에 가 있을 거니까.

 

나: 그랬었구나. 영어 학원 빼먹으려고 한 게 아니고 30분 늦게 갈 건데, 괜히 엄마가 알면 언짢아할까봐 엄마 기분 상하지 말라고 거짓말한 거구나. 일종의 하얀 거짓말인거네.

 

아들: .

 

나: 집에 올 때는 기분이 어땠어?

 

아들 :기운이 하나도 없고 힘이 빠졌어요.

 

나: 기운이 없고 힘이 빠졌구나. 마음이 무거웠겠다. 나름 너대로 이유가 있는데 어쨌든 거짓말을 했으니까 엄마한테 변명할 말이 없을 거 같아 기운이 하나도 없었나 보네.

 

아들: ....

 

나: 지금은 어때?

 

아들: 편해요. 안심돼요.

 

나: 변명이 안통할 거라 생각됐는데 네 얘기를 할 수 있어 안심되는구나. 얘기하고 나니 편하고.

 

아들:

 

나: 엄마한테는 어떤 기분이야?

 

아들: ... 거짓말 한 건 죄송하고 화 안내고 제 얘기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나: 그렇구나. 그렇게 얘기해주니 엄마도 안심된다. 엄마도 아까 전화 끊고 나서 엄마가 너한테 화만 내고 너도 엄마한테 화나서 삐쳐있게 될까봐 걱정되었거든. 네가 편해졌다니 엄마 얘기도 좀 들어줄래?

 

아들: .

 

나: 처음에 네가 학원서 돌아오는 길이란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어. 그 다음에는 화나고 실망스러웠어. 네가 거짓말을 하니까. 배신감도 들었고. 그리고 괘씸하고 의심스러웠어. 저번에도 학원 안 빠지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을 어겼다고 여겨져서 괘씸하고 이제까지 계속 거짓말하고 학원 빠진 거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했어. 그러다가 또 걱정되고 염려 되었어. 네가 앞으로도 계속 거짓말하고 약속도 자꾸 어길 거 같아서 말이야. 착잡하기도 하고... 엄마랑 너랑 둘 사이가 이거밖에 안되나 싶어서. 엄마 얘기 듣고 어?

 

아들: 제가 엄마라도 그럴 거 같아요. 죄송해요.

 

나: 우리 아들 쿨하네. 이해해줘서 엄마도 편해지고 괜찮아졌어. 그런데 걱정은 남아있어.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하는 걱정. 학원을 빠져서 약속을 어기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거짓말한 건 한 거잖아. 앞으로는 사정이 생기면 엄마한테 얘기하고 영어학원에 늦거나 빠지고 싶다고 솔직히 얘기해주면 좋겠어.

 

아들:

 

나: 혹시 오늘과 같은 잘못을 하게 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아들: 오늘과 같은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지만 혹시나 그러면 외출금지에 컴퓨터게임 금지 할게요.

 

나: 기간은 얼마나?

 

아들: 3?

 

나: 알았어. 약속한 거다. 지킬 수 있겠어?

 

아들: ~

 

오늘도 아들을 믿어본다.

 

이 녀석이 학원을 여러 번 빼먹었는데 그 때는 나 혼자 일방적으로 화내고 훈계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외에는 대답할 수 없도록 다짐을 시켰다.

 

오늘은 마리 대화로 인해 나는 화내지 않고 제 입에서 저절로 다짐이 나오는 걸 보니 정말 평화롭다. ~ 만남일기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