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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호.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다

홍석연(봄) 2021. 5. 25. 10:55

홍석연 (봄) 

 

현성이는 화를 잘 낸다. 4학년 때도 엄청 울었다고 한다.

 

지난 주 체육시간에 반 아이들을 여럿 때리고 화를 내고 울고, 끝나고 나서도 계속 울어서 잠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아빠랑 할머니랑 자기 방에서 물건을 던지며 싸웠던 게 떠올라서 무섭고, 집에서도 화가 날 때가 많지만 자기 때문에 아빠랑 할머니랑 또 싸울까봐 화를 못 낸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라도 친구들에게 이해받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상황은 안타깝고, 현성이는 안쓰러웠다. 그렇다고 다 들어주어야하나 막막했다.

 

오늘 2교시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잘 못해서 또 화가 났나보다.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친구에게 욕을 하고 10분 정도 더 울다가 들어왔다. 점심시간에 현성이랑 이야기를 나누었고, 5교시 쉬는 시간에 현성이에게 물었다. 친구들에게 현성이가 화낼 때 어떤지 물어봐도 되냐고.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현성이가 화를 내고나서 화가 풀린 것처럼 아이들도 너를 보고 불편해진 마음이 있다면 말하고 풀리면 좋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불편해지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6교시 끝나기 5분 전

 

교사 : 오늘 체육시간에 현성이가 화를 냈다면서요.

 

학생 : .

 

교사 : 선생님이 현성이에게 요청한 게 있어요. 친구들이 현성이를 보고 불편한 마음이 생겼을 수 있는데, 같이 이야기해서 친구들의 불편함을 풀면 좋겠다고요. 현성이도 동의했어요. 현성이도 친구들이 편안해지길 바라나 봐요. 혹시 불편했던 친구 있나요?

 

33명 중 3~4명 빼고 거의 다 손을 들었다. 좀 놀랐다. 이 정도로 영향을 끼쳤을 줄은 몰랐다.

 

교사 : 현성아, 한 번 봐봐. (아이들 말을 다 듣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주어진 시간은 5.) 보고 어때?

 

현성 : 제가 불편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해요.

 

교사 : 미안하구나. (아이들을 보며) 듣고 어때요?

 

영민 : 아까 현성이가 저한테 욕을 했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아요.

 

교사 : 사과 받는 것 같구나.

 

영민 : .

 

교사 : 아까 사과는 했었고?

 

영민 : 사과하긴 했는데, 지금 더 풀리는 것 같아요.

 

교사 : 더 풀리는 것 같았구나. 현성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있나요?

 

민식 : 저는 현성이가 이해 돼요. 제가 1학년 때 달리기를 잘 못했었는데, (생략) 그래서 이해가 되고요, 그렇지만 화를 내는 건 줄여주면 좋겠어요.

 

교사 : 너는 현성이 이해가 되고 안쓰럽기도 했나봐. 옛날 생각도 나고. () 그렇지만 화를 내는 건 줄여달라는 말이지?

 

민식 : .

 

교사 : 현성이는 듣고 어때?

 

현성 : 말해줘서 고맙고요,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사 : 민식이가 널 이해해주는 것 같았구나. (.) 그리고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민식이는 듣고 어때?

 

민식 : ... 저는 이해해주려고 한 말은 아니고...

 

교사 : 고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을 한 거구나.

 

민식 .

 

교사 : 민식이는 말을 부드럽게 한다~. 상대방이 너의 바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아. 현성이도 고치길 바란다는 말은 다 알아들었지?

 

현성 : .

 

교사 : ?

 

인우 : 저는 화난 건 아니고요, 왜 그러는지 걱정되었어요. 그런데 아까 현성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야기해줘서 이해가 됐고요. 앞으로는 화를 좀 안내려고 노력하면 좋겠어요.

 

교사 : 듣고 어때?

 

현성 : 고마워요. 미안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우 : 저도 현성이 이해가 돼요. 저도 예전에 분노가 잘 조절이 안 되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행히 고쳐서 참는 편이에요. 현성이도 이제 화가 안 나게 되면 좋겠어요.

 

교사 : 태우는 너도 고쳤으니까 현성이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

 

태우 : .

 

교사 : 듣고 어때?

 

현성 : 말을 해주는 친구들 다 고마워요. 다 고마워요.

 

교사 : 현성아, 니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따라해 봐. 일어서서. 전체에게. 얘들아,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현성 : 불편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꾸벅)

 

학생들 : 괜찮아~

 

괜찮다는 말에 살짝 감격했다. 30명 가까이 불편하다고 손을 들었는데, 3명 정도의 이야기만 들어서 아쉬웠고 나머지 아이들의 마음이 궁금하고 염려되었는데, “괜찮아~”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릴 때 안심이 되었다. 짧게라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길 잘 한 것 같았다. 현성이는 이해받길 원하는데, 이해받아서 좋을 것 같았다.

 

정작 불편한 마음은 표현이 안 되어 여전히 궁금하고 신경 쓰이기는 하다. 나중에 이런 일이 생기면 그 때는 시간을 두고 좀 길게 다 말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현성이가 관계 속에서 조금씩 안정감을 갖고,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