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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제2호. 저울 중앙에 선 아이

홍석연(봄) 2021. 5. 11. 14:32

정현주(테야)

이 아이는 늘 미소를 짓는다. 소리도 없는 사진처럼 늘 똑같은 미소. 그리고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 덤덤하다 하고 늘 잠이 온다하고 하루에 14시간이상을 자는 아이다. 보고 있으면 늘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아이는 닫아버린 듯 했고, 꺼질 듯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말에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한다. 어려움은 없느냐고 하니 자꾸 잠이 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잠은 하루에 약 14시간 정도 잔다고 한다. 잠을 자는 것이 내게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으니 아무 고민도, 아무 생각도 안해서 좋다고 한다. 그래서 고민이 있느냐 물으니 딱히 꼭집어 말할 만한 것은 없다고 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자꾸 잠을 자다보니 엄마랑 싸우는 일도 생긴다고 하였다.

교사: 엄마랑 어떻게 싸우노?

학생: 싸우는 게 아니고...엄마가 막 욕을 해요.

교사: 어떤 욕?

학생: ......

교사: 함 해봐라. 주로 무슨 욕을 들어먹노?

학생: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교사: 아 씨발, 좆같이...머 이런?

학생: 똘갱이 같은 년, 정신병자가? 꺼지라...뭐 이런...

교사: 똘갱이 같은 년
정신병자가?
꺼지라 ( 실감나게 감정을 실어 표현해주었다)
그럴 때 기분이 어떻노?

학생: 그냥 자요...아무 기분도 안 들어요

교사: 그렇게 말하는 엄마에 대한 기분은?

학생: 아무 기분도 없어요.

교사: 아무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가? 그럼 그런 말하는 엄마 말고, 엄마하면 떠오르는 기분은?

학생: 아무.... 아무 기분도 안 느껴져요. 그냥 딴 엄마들..그런 엄마에 대한 기분을 말하라고 하면 뭔가 느껴지는데, 우리 엄마를 떠올리면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교사: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너에 대해서는 어떠냐?

학생: 음 그냥... (오랜 침묵.... )

교사: 요즘 너를 보았다. 복도를 지나가는 모습. 지난번 강당에서 강의를 듣는 모습. 한참을 봤다. 너를 보면서 ‘소금에 절인 배추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금에 절인 배추 아나? (아뇨) (시늉을 해보였다) (아~~!) 많이 힘들어 보이고, 기운이 쑥 빠져서 그래서 자꾸 맘이 쓰이고 안타깝더라.

(내가 말하는 동안 울고 있어서 기다림....)

학생: 엄마가 이사를 가려고 하는 걸 알겠는데, 아빠랑 통화하면서 나를 아빠에게 보내려고 해요. 엄마가 저를 짐스러워 하는 것 같고, 엄마도 엄마 살길 찾아야겠지만...

교사: 엄마가 너를 짐스러워 하는 걸로 보인단 말이제? 그럴 때 니 기분은 어떻노?

학생: 섭섭해요....

(운다. 소리없이 눈물만 계속 흘린다. 울게 내버려 두었다)

학생: 저울 중앙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교사: 그게 어떤 기분인지 말해줄래?

학생: 자칫 잘못하면 기울어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고...불안해요...

교사: 많이 불안한 모양이구나.

학생: 아버지에게 가든, 엄마에게 있든 이제는 상관 안해요.

교사: 둘 다 괜찮다는 뜻이냐?

학생: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저를 키우는 것 같고 그냥...키워야 돼서...

교사: 엄마니까 어쩔 수 없이 엄마 노릇만 하는 걸로 보이나 보구나.

학생: 그리고 아빠는 동생이랑 산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동생이 좀 안좋으면 그게 전부 저때문이라고....

교사: 니 때문에 동생이 안 좋은 행동을 한다고 탓한다는 말이제

학생: 네... 그리고 아빠하고 저는 생각도 많이 다르고... 그러니까 어디를 가도 별 다를 게 없어요.

교사: 참 속상하고 서럽겠다. 부모가 자기를 짐처럼 생각한다고 느끼면 얼마나 서럽고, 속상하겠노? 자기들이 낳아놓고 짐으로 생각하고 형식적으로 대한다고 느껴지면 뭘 어찌해야할지 암담하고, 슬프고 불안하겠다.

(한참을 운다.)

교사: 뭐라 말할 수도 없고, 다시 떠맡겨지게 될지 불안하고.... 세상 모든 게 다 귀찮았겠다. 그래서 생각하기 싫고 그래서 자꾸 잠만 자고 싶었구나...자고 또 자고... 도망가고 싶고, 숨고 싶어서....

( 한참을 울고, 그 아이만의 특유한 미소를 짓는다. )

교사: 그 미소. 어떤 의미냐?

학생:....

교사: 괜찮다고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 거냐? 나는 너의 그 미소가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힘든 데도 애써서 괜찮은 쪽으로 힘을 내고 있다고 보여서 정말 기특하고, 그러면서도 여기에서조차 애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기서는 잘 지내는 척,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돼. 자꾸 참고 참으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고, 그래서 자꾸 무기력해지고... 여기서는 니 하고 싶은 대로...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게. 알겠지?
지금 기분은 좀 어떠냐?

학생: 많이 홀가분해요.

교사: 그래 그런 기분을 누려라. 그래서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을 키우는 거야. 알았지? 다음에 또 보자. 선생님은 니가 자꾸 보고싶데이....알제?

이 아이가 서운하다 말한 것이 너무 반가웠다. 그 말 한마디라도 꺼낸 것이, 어떤 상황을 이야기할 때도(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어요) 우는 것을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아이가 울 수 있는 것도 반가웠다. 자기 감정을 누르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누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이 아이와 그 이후 상담이 2번 더 진행되었다. 어제는 드디어 "학교에 꼭 가야한다"고 자기전에 자기 암시를 했고, 깨울 때 한 번에 일어났다고 자랑을 한다. 아주 신나보인다. 그래서 아이와 새로운 기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뭔가 새롭고 좋은 기분이라고 이야기했다. 보는 내내 감사하고, 1년 정도 지속적으로 만날 계획을 하고 있어 천천히 가려하지만 작은 변화가 많이 반갑고,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