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낄낄)
학부모 상담주간, 오후 6시 30분에 직장을 마치고 상담시간을 잡으신 학모님 한 분이 학생과 함께 오셨다. 평소 맞벌이 집안이라 외할머니께서 아이를 자주 돌봐주고 계셨는데 입학식 날, 외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서 ‘아이가 소심하다’며 걱정이라는 말씀을 수없이 하셔서 인상적이었더랬다. 이번에도 오자마자 아이 손을 붙들고 ‘아이가 소심해서 걱정이다, 저거 오빠 반만 닮아도 걱정이 없겠구먼. 얼마나 소심한지... 선생님 야 발표도 안 하지요?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교사: 안녕하세요? 일을 마치고 바로 오시느라 바쁘고 힘드셨을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니에요. 애가 소심해서 너무 걱정이라 와봤어요. 야가 보기보다도 더 소심하거든요. 발표도 잘 안 하지요?
교사: 걱정이 많이 되시나 봐요. 발표도 잘 안 할 것 같고.. 하지만 발표도 잘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그래요.. 그나마 다행이네... 친구 관계는 잘 하나 모르겠네요. 야가 워낙 소심해서 말이에요. 먼저 말도 못 걸걸요.
교사: 걱정이 많이 되시나 봐요. 소심하다고 생각이 되시니까 특히 친구 관계에서.
어머니: 네, 그렇죠. 저거 오빠 반만 닮았어도 얼마나 좋을건데.
교사: 오빠랑 성격이 많이 다른가 봐요.
어머니: 네, 또 저거 오빠는 성격이 얼마나 천방지축인지 말도 못해요. 둘이 반반 섞으면 좋을텐데.. 암튼 야가 정말 소심하거든요. 잘 좀 봐 주이소.
교사: 네, 걱정이 많이 되시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잘하고 있으니 염려 놓으세요. 학교도 처음 오고해서 다들 걱정이 많으시더라고요.
어머니: 그렇지요. 게다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야가 너무 소심해서 친구가 괴롭히는데도 꾹꾹 참고 말도 못해서 걱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교사: (아하, 이제야 과도한 걱정이라 여겨지던 부분이 이해가 된다.) 아이코, 어린이집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 정말 걱정이 많이 되셨겠네요. 안 그래도 요즘 학교폭력이다 뭐다 말이 많으니까요.
어머니: 네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괴롭힘 당하고도 아무 말도 못할까봐.
교사: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정말 걱정이 되실만 하네요. 지연아, 혹시 학교에서도 그런 일이 있어?
지연: 아니요.
(사실 지연이는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고, 남학생들이 장난을 걸면 꿀밤을 주기도 하는 등 그리 소심해 보이지는 않는다. 약간 목소리가 작고 발표를 대다수 1학년들이 죽기살기로 하는 것보다는 좀 덜 한 정도.)
교사: 혹시 그런 일이 있으면 혼자 참지 말고 선생님이나 엄마한테 꼭 말해야 한다?
지연: 네
어머니: 지연아, 니 또 꾹꾹 참고 그러면 안된다. 꼭 말해 알았지?
지연: 끄덕
어머니: 요새 학교 생활은 괜찮아?
지연: 재미있어.
어머니: 그래. 에효..... (한숨을 상당히 자주 쉼) 저거 오빠 반만 닮아도 걱정을 안 할텐데.
교사: 어머니께서 걱정이 많이 되시나봐요. 그래도 이렇게 관심을 많이 보여주시니 어머니 덕분에 지연이가 든든하고 무슨 일이 생기고 그러진 않을 것 같아요.
어머니: 그런가요? (표정이 조금 놓인다.)
교사: 그런데 어머니 제가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어머니: 예? 예...
교사: 어머니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지연이가 자신감 있게 씩씩하게 다니는 것이지요?
어머니: 그렇지요. 그거죠. 자신감있게 씩씩하게.
교사: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계속 한숨을 쉬시고 니가 소심해서 큰일이다. 오빠 반만 닮지 이런 소리를 계속 하시잖아요.
어머니: (깜짝 놀라는 듯) 네? 아 제가 그런가요. 아 제가 그랬네요.
교사: 네.. 물론 지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셔서 걱정스런 마음에 하시는 말씀이지만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지연이가 자신감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어머니: 그렇겠네요.. (이때, 나는 확실히 보았다. 지연이가 고개를 돌리고 씨익 웃었다!)
교사: 듣고 마음 상하지는 않으세요?
어머니: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건 고쳐야죠.
교사: 잘못이라기보다는.. 어머니께서 지연이를 더 잘 도울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요.
어머니: 네.. 칭찬을 많이 해야겠네요.
교사: 잘 찾으셨네요. 칭찬 듣고 자란 아이가 잘못될 일은 잘 없을 것 같아요.
어머니: 네.. 참 선생님 그런데 이거 우리 지연이 교과서인가요?
교과서와 글씨, 수학 이야기를 좀 더 하다가
어머니: 에효, 네 이런 거는 야가 그래도 따라가는 것 같은데 소심해서 걱정...
(순간 깜짝 놀라며 내 눈치를 보고) 흠흠
지연아~ 교실 한 번 볼까? 저거 지연이가 한 거야? 우와 잘 했네~~
지연이 손을 잡고 일어나서 지연이 작품들이 게시된 것을 하나하나 보며 칭찬을 해주셨다. 중간 중간에 잔소리가 삐져나왔지만 자제하고 칭찬을 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인사를 하고 8시가 다 되어서 (다사는 촌이라서 아주 어두워집니다. ㅠㅠ) 급히 나가셨다.
상담을 마치고,
내가 어머니의 걱정을 ‘과도’하다고 인식하고 ‘저러지 말지, 잔소리가 심하군.’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머니 마음을 충분히 알아주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NP-AC로 보여지는데 걱정이 많고 소심하지만 섬세하고 따뜻하며 정이 많고 배려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알아드리면 좋았을 텐데 칭찬도 많이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칭찬을 하려고 노력하신 점이나 자신감을 위해 칭찬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실 때 내가 지지하고 칭찬했으면 좋았을 텐데. 상담을 할 때 마음 알아주기, 칭찬이 기본이라는데 이번 상담은 참 아쉽다.
다음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폭풍 칭찬으로 꽉 찬 마음이 되어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1학년 학생처럼 혼나고 눈치 보듯 하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그 후에 아이가 칭찬을 받았고, 적어도 내가 아이 편이라는 생각을 가졌는지 더 밝고 명랑해져서 그 부분은 좋았던 것 같다.
'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6호. 준영이와의 상담 (0) | 2021.05.11 |
---|---|
제5호. 관계의 패턴 (0) | 2021.05.11 |
제4호. 꼬마들 갈등 중재 (0) | 2021.05.11 |
제2호. 저울 중앙에 선 아이 (0) | 2021.05.11 |
제1호. 있는 그대로 수용하니 내 마음이 가볍다! (1) | 2021.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