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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호. 선생님이 미웠겠다

홍석연(봄) 2021. 5. 11. 14:47

추주연(단풍나무)

 

1회고사 역사 서술형 답으로 일본이 조선을 따먹으려고 한 것이다.’ 라고 쓴 학생이 있다.

역사 선생님께서 학생부에 회부해야할 답안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수업에 들어가서 영화에게 물었다.

 

: 영화야, 너 서술형 답 쓴 거 이거 뜻을 알고 쓴 거야? 이게 어떤 의미로 쓰이는 말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영화 : 아니요.

 

: 내가 어이가 없다. 네 답을 학생부에 회부하자고 의견까지 나왔어. 따먹으려고 한다는 표현은 안 좋은 의미의 은어로 사용되는 말이야. 무슨 뜻인지는 애들한테 물어봐. 아니면 이 시간 끝나고 나한테 와도 돼.

 

뜻을 모른다는 영화의 대답에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 우습기도 하였다. 그래서 가볍게 넘기고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을 진행하는데 영화가 눈물을 흘리고 운다. 난감하다. 학습지를 정리하는 시간에 영화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많이 속상했나 보구나.’하고 말을 건넸다. 영화는 말이 없다. 단단히 삐친 모양이다. ‘이 시간 끝나고 선생님한테 오도록 해.’ 라고 이야기하고 수업을 마저 진행하였다. 쉬는 시간에 영화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는 내내 운다.

 

: 뜻을 모르고 쓴 건데 이런 상황이 되어서 많이 속상하겠다. 놀라기도 했나봐?

 

영화 : .

 

: 선생님은 가볍게 생각했는데 네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속상해 하니 난감하다. 그렇지만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그건 받아들여져?

 

영화 : .

 

: ... 그래도 계속 우는 거 보면 어지간히 속상한가 보다. 애들이 다들 듣는데 이야기를 해서 속상한 거야?

 

영화 : .

 

: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구나.

 

영화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어야 했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아 스스로 자책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당연히 지도할 상황이고, 뜻을 모른다 해서 가볍게 뜻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 한 것뿐인데난감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 영화 많이 속상했겠어. 아까는 선생님이 미웠겠다.

 

영화 : .

 

.’ 라는 대답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그건 아니에요.’ 뭐 이런 대답을 기대했나 보다.

 

: 니가 이렇게 속상해 하니 선생님이 미안해지네.

 

,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억울하고, 이건 아닌데 싶었다. 미안하다고 말한 것이 후회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많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으로 여겨졌던 영화가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졌다. 겁났다. 영화가 나를 영원히 미워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너무 억울하다. 그 뒤에 영화를 알아주는 말을 좀더 하고 교실로 돌려보냈다.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 주말

아들 쭈니를 호되게 야단쳤다. 혼내고 나서 쭈니에게 묻는다.

 

: ~ 아까 혼날 때는 엄마가 미웠겠다?

 

쭈니 : .

 

... .... 그래, 미웠겠다. 그리고 나도 미웠지. 쭈니가...

 

: 그래, 밉기도 했겠다. 아까는 엄마도 화가 많이 나고 속상하고 니가 밉기도 했어.

 

쭈니 : 그랬을 것 같아요. 저는 무서웠어요.

 

: 그랬어? 무서웠구나.

 

... 무섭겠다. 그래, 혼내는 엄마가 무섭고 밉기도 하겠다. 야단맞는 그 순간, 그랬겠다.

 

: 그래, 지금은 어때?

 

쭈니 : 괜찮아요.

 

: 지금은 엄마 안미워? 안무서워?

 

쭈니 : 그럼요~

 

: 엄마도 너 안미워. 사랑해.

 

쭈니 : 알죠~ 제가 어린앤가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죠.

 

: 하하, 그러게. 어린애 아니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쭈니 : 잘못했죠. ... 쪼끔 억울하기도 해요. 친구가 졸라도 절대 빌려주지 않는 건데, 하도 졸라서 지겨워서 빌려줬더니...

 

(쭈니가 갖고 있던 돋보기를 친구가 빌려서 불장난을 하는 바람에 학교에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 친구가 하도 졸라서 빌려준 건데 그것 때문에 야단 맞은게 억울한가봐?

 

쭈니 : 그렇죠. .. 진짜 억울하다.

 

: 그럼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건 뭔데?

 

쭈니 : , 그래도 잘못했죠. 끝까지 빌려주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선생님이 갖고 다니지 말라고 한걸 가방에 계속 넣어뒀으니까요. 꺼내놨어야 하는 건데 자꾸 까먹어요.

 

: 그래, 한번 지적 받은 거니까 돋보기는 가지고 다니지 않았어야 했지. 그리고 친구가 장난치려는 걸 알면서도 빌려줬으니 엄마는 그게 아쉽지. 니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니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겠네?

 

쭈니 : 당연하죠. 절대 안그래요.

 

: 알겠어. 안심이 된다. 그런데 니가 아까 야단맞을 때 엄마 미웠다 그래서 엄마 흠칫했다.

 

쭈니 : 야단 맞는데 미운게 당연한 거 아닌가? 물론 금방 안미워져요.

 

: 하하하, 그래 니말이 맞다. 엄마도 그래. 그 순간에 니가 미웠고, 지금은 안미워.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쭈니 : 당연하죠. 저두요.

 

영화에게 선생님이 미웠겠다라고 확인하던 순간 난 두려웠다. ‘라는 영화의 대답에 당혹스럽고 막막했다. 쭈니와 이야기하고 나서 영화에 대해서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영화도, 쭈니도 나도... 미운 순간이 있다. 그리고 감정이 흘러간다. 영원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