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주연(단풍나무)
8반. 추석 이후 8반과의 첫 수업이다. 오늘의 핵심어는 존중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존중받고 싶다. 나도 아이들을 존중하자.
장면 1.
8반 아이들은 1시간 안에 화장실에 가겠다는 아이들이 4-5명이 기본이다. 존중을 최우선에 놓고도 수업 5분도 지나지 않아 화장실 가겠다는 2명의 아이들이 먼저 가겠다고 서로 경쟁을 하자 발바닥을 한 대씩 때리고 보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신형이가 한마디 한다.
신형 : 샘, 왜 때려요? 화장실 간다는데...
나 : 응, 넌 못마땅한가 보구나.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간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샘도 감당이 안되거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수업 시간을 지켜주길 바라는 의미지. 너희들은 몸이 먼저 기억한다면서? 선생님 수업에서 약속이잖아.
이 정도에서 넘어갔다. 신형이와 이 문제는 2번째 거론되는 것인데, 신형이의 대안은 엉덩이로 이름을 쓰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신형이 외에는 찬성하는 사람이 없다. 벌주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
8반은 수업 시간에도 화장실을 드나들며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있다.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을까? 발바닥 한 대 맞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보여도, 숫자는 줄었다. 화장실을 간다는 아이들을 발바닥을 때리는 것은 내 교직 생활에서도 처음이다.
정말 화장실이 급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인권침해라는 생각도 든다. G7은 화장실에 한번 가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 수업이 지루해서 가는 것도 있겠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 가는 경우도 있겠고, 화장실이 가고 싶은 경우도 있겠지 싶다.
내 수업의 원칙은
1. 한번에 한명씩 간다 : 여러 명이 가서 함께 담배 피우거나 수업 땡땡이 방지 목적이다.
2. 발바닥을 한 대 맞는다 : 그나마 숫자나 횟수를 줄이고자 하는 마음과 경각심 조성. 지도를 한다는 것을 알리는 목적이다. 효과가 있다. 방법은 못마땅하다.
어떤 것이 진짜 이유인지 가려내기가 어렵다. 답답하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 쓰다 보니 좀 혼란스럽다. 화장실 가서 시간 때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수업을 하고 싶다. 아이들 말을 더 들어봐야겠다.
장면 2.
정치의 개념에 관한 수업이다. 문화상품권(문상)을 한 장 걸었다. 학급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문상을 받게 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갖는다. 8반은 시작하고 5분 동안 조마조마했다. 문상을 갖고 싶은 사람이 손을 들고 손 든 사람들끼리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신형 : 이건 아니지. 기여한 사람이 받는 거잖아. 투표로 하자.
실장인 신형이가 스스로 앞으로 나왔다. 별명이 ‘인사만 실장’인데 기특하다. 6명이 자기 자신을 추천했고, 각 1표씩만 나오고 1명이 2표가 나왔다. 문상을 함께 쓰기로 하고 얻은 표이다.
&& : 과반수 이상 나와야지. 2표 나온 건 쫌 아니다.
이때 누군가 성건이를 추천했다. 성건이는 8반에서 가장 힘이 약한 아이다. 여기 저기서 성건이 이름이 나온다. 놀랍다.
!! : 그래, 성건이가 받아야지.
투표를 하자 성건이는 대부분 아이들이 지지를 받아 선정이 되었다.
나 : 야~ 8반, 완전 놀랍다. 난 사실 처음엔 조마조마했는데, 너희들이 학급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 성건이를 선정하는 과정이 놀라웠어. 가위바위보에서 추천과 투표로 바뀌는 과정도 흥미로웠구. 자발적으로 진행한 신형이도 멋있고 든든했어. 궁금한데 성건이는 어떤 역할로 우리 반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거야?
아이들 : 휴지요, 성건이가 휴지를 1주일에 1통씩 대줄 걸요?
나 : 그렇구나. 그렇다면 정말 너네들한테 큰 기여를 한거네. 그래서 이렇게 박수가 절로 나왔구만. 8반 아무튼 감동이다.
지용 : 왜요? 우리 반이 이럴 줄 몰랐어요?
나 : 어? 8반에게 기대가 없었냐는 거야? 그럼 너는 좀 서운할 것 같은데.. 선생님은 그건 아니구. 그렇게 보였다니 나는 좀 억울하네. 초반에 가위바위보 할 때 조마조마했다는 거야.
지용이는 ‘아~ ’ 하며 웃는다. 두 가지 장면을 적고 나니 묘하게 연결이 되네. 아이들에게 휴지와 화장실은 정말 중요한 거구나. 아이들이 경험한 과정으로 ‘정치’의 개념을 설명하였다. 바위덩이처럼 잠들어 있는 주형이와 아프다는 재석이 빼고는 수업을 듣는다. 필기도 한다. 기쁘다. 날마다 8반과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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