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공감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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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제21호. 선생님, 틀린 게 아니에요!! 저 맞아요!!

홍석연(봄) 2021. 5. 11. 15:31

김미영(우리)


국어 시간에 짝끼리 단어를 불러주는 받아쓰기 활동이 있었다. 짝끼리 채점하라고 했더니 시끌시끌한 곳이 있다.

나: 무슨 일이니?

나영: 선생님 영수가 틀렸는데 맞다고 해요.

영수: 아니에요. 저 맞았어요. 실수로 그런거예요.

나: 한번 보자. (“닦았습니다”를 “딲았습니다”로 잘못 쓴 것이 분명히 보인다.)

영수: 제가 ㄷ 으로 쓰려고 했는데 모르고 ㄸ 으로 썼어요. (짝이 틀렸다고 표시한 부분을 ○로 바꾸고 자신이 쓴 걸 지운다. )

나: 그래, 영수가 말한 대로 모르고 잘 못 썼더라도 나영이가 보기에는 틀린 거니까 틀렸다는 표시는 그대로 두어야 해. 그래야 영석이가 뭘 잘 못하는지 나중에 확인하고 고칠 수 있어.

영수: (눈물까지 흘리며 ○표시를 하면서) 아니에요. 제가 모르고 그랬어요. ㄷ이라고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나: 영수가 알고 있는데 실수해서 너무 아쉬운가 보다. 100점 맞고 싶었나봐.

영수: 네.

나: 아쉬워도 틀린 걸 맞았다고 할 수 없지.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 나영이가 매긴 건 그대로 두고 옆에다가 고쳐서 써. 규칙은 규칙이니까 지켰으면 좋겠어.

영수: 아니에요. 선생님. (일어서서 나에게 안기듯이 달려든다, 갑자기 주위 아이들이 조용해지며 나와 영수를 지켜보는 것이 느껴진다)

영수: 선생님~ 맞다고요.

나: (영수가 더 가까이 오지 않도록 팔을 잡으며) 얘들아~ 영수가 하는 이야기 들었지? 너희들이 혹시 영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지금 좀 해 줄래? 영수야 앉아봐.

A: 영수야, 과거는 과거야. 지나간 건 다시 돌릴 수 없어. 틀린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B: 영수야, 틀린 건 틀린 거야.

C: 영수야, 지금 틀려도 다음에 잘 하면 돼. 틀려도 괜찮아.

D: 영수야, 지금 못해도 나중에 열심히 해서 잘하면 돼.

E: 우리 엄마는 틀려도 나중에 잘하면 된다고 받아쓰기 못해도 혼 안내요.

나: 그런데 영수가 틀린 걸 맞다고 해 주고 싶은 사람은 있어? (3-4명 손 든다) 어, 있구나. (영수가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그럼 틀린 건 틀렸다고 해야 한다는 사람은? (나머지 대부분이 손 든다) 영수야, 봤지?

영수: (고개를 끄덕인다.)

나: 친구들 대부분이 틀린 건 맞다고 하면 안된다고 하네. 친구들 생각이랑 선생님 생각이 같아. 친구들 말대로 다음에 잘 하면 되는데 틀린 건 틀렸다고 인정하자.

영수: 선생님~ 아니에요.

나: 친구들 이야기 들어도 영수 생각은 같네. 그래도 선생님은 틀린 걸 맞다고 해 줄 수는 없어. 그럼 다른 친구들에게도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해. (무섭고 단호한 표정으로) 이제 선생님은 영석이한테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내 자리에 돌아왔다)

쉬는 시간이 되었고 영수가 할 말이 있는 듯 내 주위를 돌다가 자리에 돌아갔다. 영수는 그 다음 시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나게 지냈다.

다음 날 영수에게 전 날 있었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나: 영수야, 어제 받아쓰기 한 거 아직도 네가 맞다고 생각해?

영수: 아니오.

나: 그래? 생각이 바뀌었네. 어떻게 바뀌었어? 친구들 이야기 듣고 바뀐거야?

영수: 네.

나: 기특하네. 앞으로 영수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바로 인정하면 좋겠다. 그럼 선생님과 친구들이 영수랑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럴 수 있겠어?

영수: 네.

나: (머리 쓰다듬으며) 아이고, 예쁘다...

교사공감교실이야기는 쓸 때마다 부끄럽다. 쓰면서 더 부끄럽다. 사실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이 학급 아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초점을 두는 훈육 방식에 관한 내용이라 어설프지만 시도를 해 보았던 것이 뿌듯하여 기록하리라 마음먹었다. 지금은 뿌듯해서가 아니라 대화에 문제가 많아서 꼭 기록해야겠다 싶다.

<영수는 어떤 아이?>

먼저 영수는 어떤 아이인가? 학기초부터 게임이든, 놀이든 자신이 졌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내가 제일 싫은 건 때, 장소 가리지 않고 나한테 딱 달라붙어서 울어버린다는 거다. 밉다. 미워. 하는 생각을 가지던 중 방학이 왔고 2학기 되니 또 이번 일이 터졌다.

<이번일의 작은 성과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나마 성과라면 지금까지 영수와의 일 중 내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 것 치고 가장 빨리 해결되었다는 거다. 1학기 때에는 1시간 넘게 내 책상 앞을 떠나지 않고 운 적도 있었다. 아님 아이들이 정신없을 때나 내가 바쁠 때 대충 넘어가 주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참여했기 때문일까? 의문이다. 아님 영수가 컸기 때문일까?

<영수와의 일에서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들, 생각해 볼 거리.>

1. 그 문제가 과연 걱정될 정도로 큰 일인가?

영수를 위해 버릇을 고쳐 주겠다는 생각, 아이들에게 잘못된 예를 남기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잘못 쓴 답안을 인정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일 아닌 듯 넘어갔더라도 이번 일로 영수가 영원히 도덕적 결함이 있는 아이로 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즉, 앞으로 영수가 절대 고치지 못하면 어떡하나?, 우리 반 아이들이 따라하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은 올바른가에 대한 회의가 온다.

2. 학급 아이들을 끌어들인 것인가? 참여시킨 것인가?

학급 아이들을 끌어들일 때(?) 영수의 반복되는 행동이 벅차서 나 대신 아이들이 영수를 설득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건 진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인가? 아이들의 힘을 빌려 영수를 교묘하게 누른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관계는 서로 상생하는 것인데 그 순간 영수는 주고 받지 못했고 듣기만 하면서 일방적으로 생각을 강요받았다. 행동이 어떠한지 의견을 구했을 때 실제로 내 마음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혹시 영수가 맞다고 해주고 싶은 사람?’ 했을 때 몇 몇 아이들이 손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아이들에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그 순간에는 가슴이 철렁하여 그 아이들을 모른척 외면했다.

3. 삐진 것인가? 단호함인가?

영수가 더 이상 말하지 못하도록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영수가 선생님 눈치를 보고 고집을 꺽을 것 같았다. 그건 교묘하게 단호함을 위장한 삐짐이었던 것 같다. 단호하게 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방식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꼭 토라진 애인마냥 행동함으로써 영수가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나중에 쉬는 시간에 나와서 내 주위를 맴돌 때 영수를 모른척 한 나의 행동이 바로 증명해 준다. 사실 피곤해서 더 말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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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영석이의 문제 행동
1.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 여러 번 반복된 것
2. 울면서 교실 앞으로 나와서 자기 주장을 내세움으로써 수업을 방해한 것
은 분명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에는 억지로 잘못을 인정한 것 같은데 다음에도 또 되풀이 될 것 같은 불안은 여전하고 대처하기 난감하다. 특히 나한테 안기듯이 달려들 때 너무너무 싫다. 별 것 아닌 일에 그렇게 매달리는 그 절박함이 날 질리게 한다. (속이 시원하네) 내가 그 아이에게 불편함이 정말 많았구나 싶다. 소소한 불편함은 또 다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