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 (낄낄)
초등학교. 1학년과의 본능표출의 삶을 살고 있는 요즘.
드디어 10월 예술제의 날이 돌아왔다.
예술제를 위해 공연할 때 앞에 붙일 현수막을 예쁘게 만들었다.
하나는 내가 한지에 단풍, 은행, 산 등을 꾸며 붙이고 만든 것이고
하나는 학년에서 공통으로 쓰자며 플로터로 뽑아준 현수막이다.
1학년이지만 아이들의 날이니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두 개를 보여주고 고르라고 했다.
내가 들어서 보여줬는데도 또 우르르 달려나왔다.
“얘들아 이거 밟으면 안돼- 예쁘고 깨끗하게 그날 붙이자.”
“네~ ”하고 들어가는데
평소 내 눈에 배려 없는 행동을 제일 많이 하는 녀석이
(그래서 나한테 제일 많이 혼나는 녀석이)
어김없이 현수막을 밟는다.
그것도 뻔히 보고 네 발자국이나 걸었다.
일부러 저러나 싶을 만큼 어이가 없었다.
아이들이 으아악 김00!!!! 하고 난리가 났다.
“얘들아, 다 들어가.”
다 들어가서 00이는 또 혼날 것 같으니까 눈을 반들거리고 정말 몰랐다는 표정을 또 짓는다.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하지만 또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예술제를 준비하며 마음의 여유도 없고 아이들은 붕~ 떠서 화를 많이 냈기 때문이다.
“00이는 다시 나와.
그리고 선생님 위로해줘.“
00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선생님이 있다가 이거 발자국 지우개로 지워야 해. 그러니까 위로해 줘.”
아이들이 위로하라고 난리다.
자기들이 가르쳐주려는 듯 나한테 와서 “죄송합니다.”하고 꾸벅 인사를 마구 한다.
“그래, 고마워. 그런데 그건 사과잖아. 사과 말고 위로 해줘.
사과해도 되는 건 맞지만, 선생님은 지금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래.”
00이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이들도 모른다.
“선생님 꼬옥 안고 선생님 어떡해요, 힘내세요. 해줘.”
00이가 나를 꼬옥 안고 선생님 힘내세요. 한다.
아이들이 서로 하려고 안고 또 난리가 났다.
“아 선생님이 00이가 이거 밟기 전보다 더 힘이 났어요.”
아이들이 환하게 웃더니 지우개를 들고 뛰어 나온다. 그리고 막 열심히 지워서 깨끗하게 만든다. 감동스러웠다. 너무 고마워서.
“고마워 얘들아. 역시 너희 밖에 없다. 선생님이 살 맛이 난다.”
들어가다가 또 장난꾸러기 최고봉 녀석이 실수로 다시 밟았다.
아아악 아이들이 또 난리다. “뒷면이야, 괜찮아~”
“선생님 우리 전시도 같이 해요. 우리도 액자 걸고 붙이고 잘 할 수 있어요.”
“고마워, 그래 그러자.”
1학년, 다 컸네? 헤헤.
그 전처럼 또 화를 냈다면 아이들은 얼음. 00이도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나는 화를 내서 죄책감과 부담감에 속이 상했을 것이다.
00이는 이미 일을 쳤을 때 잘못을 알았을 것이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다.
사과하고 위로하는 경험이 어쩌면 00에게 필요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화를 내느냐, 사과를 받느냐에 따라 이렇게 많이 달라질 수 있다니 놀랍다.
나는 사과와 위로를 받았고, 아이들은 좋은 일을 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00도 혼나지 않고 자기가 피해를 준 사람에게 사과하고 위로할 수 있었다.
단 한 순간의 행동에 따라.
깨어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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