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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호. 15년만에 남편에게 내 마음을 이해받다!!

홍석연(봄) 2021. 5. 11. 16:05

추주연 (단풍나무)

남편과 이런 저런 방학 계획과 여행 계획을 짜는 중이었다.

나 : 개학은 3일이고 2일에 공동연수라 출근해야 해.

남편 : 아니 뭐하러 공동연수를 하는 거야? 충북은 정말 제도가 이상해.

나 : 뭐, 하루 먼저 나와서 개학 준비하라는 거지. 나는 개학날 애들이랑 같이 우왕좌왕 하는 거 보다 하루 먼저 출근해서 준비하는 게 낫더라.

남편 : 너처럼 미리 나올 사람은 나오고 알아서 하는 거지. 강제로 다 나오라고 하는 건 아니지.

나 : 당신은 되게 못마땅한가보다.

남편 : 그렇지. 나는 내가 알아서 준비하는데 누가 시키면 더 하기 싫더라.

나 : 당신은 알아서 자발적으로 하는데 시키면 반발심이 생긴다는 거지?

남편 : 어. 그렇지.

나 : 근데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 보면 다 당신같이 알아서 하는 게 아니니까 관리자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겠지. 그러니까 제도로 만들어 놓고 다 같이 개학준비를 하라는 거겠지?

남편 : 그게 잘못됐다는 거지. 준비를 안하는 사람을 딱 지적을 해야지. 제도로 두리 뭉실.. 잘하고 있는 사람도 기분 상하게 말야.

나 : 자기는 잘하고 있는데 두리 뭉실 다 같이 지적하는 게 기분 나빴겠다.

남편 : 그렇지.

나 : 근데 그게 교사 집단의 특성인 거 같아. 아이들한테 지적하는 거랑 다르게 동료끼리는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아. 수평적인 관계로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딱 집어서 지적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더라.

남편 : 아니 왜 당신은 관리자 입장을 대변하는 거야? 잘못하는 사람만 딱 지적하는 게 관리자 역할인 거지.

남편은 짜증스럽고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남편이 못마땅해 하는 제도나 관리자의 태도에 대해 내가 그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나는 막막하고 답답하고 억울했다.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제도나 관리자의 입장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상대의 입장이 이해되면 못마땅하거나 불편했던 마음이 좀 편안해 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속상하고 어떻게 해야 남편의 마음이 편안해 질까 막막하고 답답했다.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에 울컥했다.

나 :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관리자 입장을 대변한다고 말하니까 너무 답답하고 막막해. 그리고 진짜 억울해. 나는 당신이 마음 불편해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지길 바랬고... 그래서 당신 마음 편해지라고 말했던 건데.. 그건 내 방식이긴 하지. 내가 그렇더라구. 나는 상대가 이해되면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구. 아 그 사람은 그럴 수 있었겠다, 그럴 만 했겠다.. 그럼 내 마음이 편해지니까 당신한테도 그렇게 말한거지. 내가 왜 관리자 입장을 대변하겠어? 나는 어디까지나 당신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는 거지.

남편 : 하... 참... 그래. 이해된다. 그래. 너는 그랬겠다. 나 처음으로 이해가 된 것 같아. 이제까지 왜 너는 항상 내가 비난하는 사람 편을 들어서 말하나? 그랬거든. 니가 내편을 안들어주고 딴사람 편을 들고 그러니까 꼭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이해가 되네. 니 표현이 내 마음에 확 와 닿았어. 정말 내가 마음으로 이해가 됐어. 너랑 15년 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이해가 된 것 같아.

나 : 어.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나두 시원하다. 안심도 되구. 울컥했던 게 가라앉는다. 다행스러워. 당신도 좀 시원하겠다. 내 맘이 이해가 돼서...

남편 : 어. 정말 이해돼.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서 니 방식을 썼구나. 그게 이해가 돼.

놀라웠다. 정말 놀라웠다. 남편이 15년 동안 살면서 내 마음이 처음 이해가 된다고 했다.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15년만에 내 마음을 정말 이해하게 되었다니... 그리고 마음이 한없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울컥 울먹이던 것이 잠잠해지고 잔잔해졌다. 남편이 힘들어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으로 여겨지면.. 걱정되고 불안하고 불편한 내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편의 감정도, 바라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구나. 남편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익숙한 내 방식을 쓴 것이다. 내가 내마음을 알게 되었다. 반갑다. 남편에게 마음을 전했다. 남편에게 이해받은 것이 정말 안심된다. 남편이 든든하고 고맙다. 남편과 대화하며 나를 보게 되고, 남편을 보게 되고, 내 바람을 보게 되어 좋다. 편안하다. 이제는 남편이 바라는 것을 보고 싶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고.. 좀 더 살펴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