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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호. 사범님이 놀지 말랬어요

홍석연(봄) 2021. 5. 11. 16:04

정유진 (낄낄)

일주일 전, 급체 때문에 병가를 하루 냈었다. 그날 우리 반에 들어가셨던 연구부장님은 엄청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질려서 정말 불쌍하다는 듯이 나를 보며 힘들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는 별 생각 없이 넘어갔었는데 알고 보니 그날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난 일주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민이가 현이한테 말을 거는 것을 보고)

홍 : 어, 니 사범님한테 현이랑 놀았다고 다 캐.

민 : (깜짝 놀라며) 아 맞다. 안 놀게 안 놀게.

이게 무슨 소리지 싶어서 홍이, 민이를 불러 물었다.

홍 : 현이가요 선생님 안 오신 날 저한테 엄청 큰 욕을 썼거든요. 그래서 태권도 갔을 때 사범님한테 카니까 사범님이 현이랑 놀지 말래요.

우리 반에 그 태권도에 다니는 아이가 5명.

1학년답게 사범님이 그랬다고 진짜 안 놀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가끔은 까먹고 또 놀다가 생각나거나 누가 말하면 또 안 놀고.

내가 듣고 진짜 어이가 없고 사범님한테 화도 났다가 생각해보면 사범님은 그냥 한 말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나 : 현이 나와봐.

현 : (우물쭈물 한참을 망설인다. 나한테 그동안 말 안 한 것도 지가 욕했다고 애들이 그러니까 혼만 날까봐 말 안 한 것 같다.)

나 : 현이 많이 속상하고 친구들한테 섭섭했겠다.

현 : ...

나 : 현이가 욕을 하기는 했어?

현 : 네..

나 : 그래도 현이가 욕을 할 정도로 화가 나서 한거지, 가만 있는데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현 : (갑자기 큰 소리로) 홍이가 먼저 저 쳤어요!

홍 : 아니에요! 전 그런 적 없어요!

민, 준 : 저희가 옆에 있었는데 못 봤어요!

나 : 그랬구나. 홍이는 현이를 친 적이 없구나. 그러면 홍이가 지나가다가 홍이도 모르게 받혔을 수도 있겠다. 선생님은 홍이도 믿고 현이도 믿고 둘 다 똑같이 소중하거든. 그래서 둘 다 믿을거야.

민 : 그치만 현이가 너무 큰 욕을 했어요!

현 : 홍이가 저를 이렇게 쳤다구요! (하면서 나를 퍽 때린다.)

나 : 어. 그럼 현이가 방금 선생님 때렸으니까 선생님도 현이한테 욕해도 되겠네?

현 : (놀라더니 고개를 젓는다.)

나 : 그래, 현아, 사과할 기회도 안 주고 욕하면 잘못을 했더라도 기분이 나쁘잖아. 맞지?

현 : 네...

나 : 홍이는 홍이도 모르게 현이를 치고 지나간 것 같은데 (홍이는 자주 그런다. 크크) 홍이가 먼저 사과해 줄 수 있어?

홍 :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쳐서 미안해.

현 : 괜찮아...

나 : 현이도 욕한 건 잘못인 것 같은데?

현 : 욕해서 미안해.

홍 : 괜찮아.

나 : 현이 지금은 기분이 어때?

현 : ...

나 : 친구들한테 서운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지? 니가 욕했는 것만 보고 니 마음을 몰라줘서.

현 : 네

나 : 홍이, 민이, 준이, 혁이는 욕보다 더 나쁜 행동을 했어. 그게 뭘까?

혁 : 현이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나 : 그래, 현이가 마음이 아팠을 것 같아?

혁 : 네

현 : 그리고 준이는 친구들한테 이거 소문냈어요. 사범님이 그랬다고.

나 : 준아, 현이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준 : 나빠요..

나 : 그럼 사과해 보자.

혁 : 우리가 니 마음 몰라줘서 미안해.

준 : 속상한 건데 소문내서 미안해.

민 : 사실은 나도 소문냈어. 미안해.

홍 :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쳐서 미안해.

현 : 괜찮아.

친구들은 들어가고 현이와

나 : 기분은 이제 괜찮아?

현 : 네 (괜찮아 보인다.)

나 : 미리 말하지~ 일주일 동안이나 속상했겠다. 선생님이 미리 못 알아채서 미안해.

(애들이 까먹고 놀 때도 많았기 때문에 진짜 몰랐다. 흑)

현 : 괜찮아요.

나 : 엄마한테라도 말하지, 엄마는 뭐라셨어?

현 : 말했는데 앞으로는 욕하지 말래요.

(나중에 통화를 해보니 사범님 이야기부터는 몰랐다고 하셨다.)

나 : 현이가 더 속상했겠다. 그런데 현아, 욕하니까 진짜 억울한 일이 많다. 그치. 먼저 친구가 잘못했어도 니가 욕하고 나니까 다들 그 이야기만 하잖어.

현 : 네 (글썽글썽)

나 : (현이를 안고) 우리 현이 많이 속상하고 섭섭하고 무서울 때도 있고 외롭고 억울했겠다.

현 : (안 우는 녀석인데 흑흑 운다.)

나 : 현이 그래도 너그럽게 친구들 용서해주고 멋졌어. 근데 앞으로는 욕하지 말자? 니가 억울해지는 것도 싫고, 나쁜 행동인 건 맞잖아.

현 : 네!

글로 적어보니 내가 거의 사과를 시키고 진행을 해서 아이들 마음을 많이 못 들어준 것이 아쉽다. 이야기 하는 중에 나머지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던지고 놀아서 마음이 급해서 집중도 잘 못했다. 그래도 현이 마음이 풀어지고 녀석들이 다시 잘 지내게 되어서 그걸로 됐다 싶기도 하다. 사범님 전화번호를 받아서 전화했는데 안 받고 오후에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1학년 2반 담임입니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연락드려요. 보시면 문자 주세요~ ^^’ 이렇게 보냈는데 아마 애들이 가서 말했지 싶다. 곤란해서 연락 씹은 듯.

사범님께서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놀지 말라고 안 할테니 친하게 잘 지내라 이렇게 사과해 주시면 좋을텐데. 학교에 아이들 데리러 오시는 분은 관장님이셔서 괜히 말하면 사범님이 너무 곤란해지실까봐 말았다. 아직도 고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