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공감교실

따뜻한 협력, 성장의 다살림 공동체

교실 속 관계가 자라는 연수, 배움회원 모집 자세히보기

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제38호. 선생님은 인문계잖아요.

홍석연(봄) 2021. 5. 11. 16:12

박상민 (인디언)

농고로 수업 지원(순회)을 나가는 3일 째 아침, 알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아이들과 관계 맺기 위한 활동을 준비해서 첫째 날과 둘째 날 수업에서 시도했는데,

아이들 반응이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힘 빠지고, 걱정이 되었다.

잠에서 깨어 누운 채로 '오늘은 어떻게 수업하지?' 생각해 보았다.

'준비한 대로 선사 시대 수업을 해야 하나, 아니면 관계 맺기 활동을 한 번 더 해봐야 하나?'

마음이 잡히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관계 맺기 활동이 별로였으니 차라리 본격적인 수업을 위한 전 단계로 강백수밴드의 '타임머신' 뮤직비디오를 보여줄까?

그걸 보고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할까?

여기에다 가을하늘님이 밴드에 올린 성균관스캔들의 정약용 장면을 보여주고, 질문의 중요성에 대한 얘길 함께 하면 한 시간 수업이 되겠다.'

이렇게 생각이 흘러갔다가도 '아이들이 잘 들을까? 제대로 하긴 할까?'라는 생각이 들면

선뜻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설익은 걸 내놓기보다는 준비한 수업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조경과 교실에 들어갔는데,

기대 이상으로 아이들이 반응해주어 안심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2교시는 뷰티과 수업이었다.

첫 수업에서부터 엎드려 자고, 껌을 씹고, 거울을 꺼내어 화장을 하는 아이들이 있던 여학생 반이다.

2학년인 얘들은 산전수전 다 겪고, 알 건 다 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문계인 우리 학교와는 너무나 분위기가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난감하고 막막했다.

그런 반에

1교시 때 조경과에서 받은 기운과 긴장을 함께 안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교단에 서자 맨 앞에 앉은 아이가 물었다.

가영: 선생님, 저 첫 시간에 안 와서 프린트 못 받았는데, 어떻게 해요?

나희: 그건 없어도 된댔어.(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짝꿍이 답해주었다.)

나: 지난 시간에도 못 본 거 같은데?(가영이에게 물었다.)

가영: 지난 시간에는 잤어요."(미안해 하는 눈치다. 안심 된다.)

나: 그렇구나. 얼굴 보니 반갑다.

가영: 쌤은 우리 학교에 새로 오셨잖아요. 어느 학교에서 오셨어요?

나: 아, 쌤은 원래 충북고 선생님이야. 여기로는 수업 지원을 오는 거고.

다솜: 그럼 월급 두 배로 받아요?

나: 아니. 월급은 똑같아.(웃으며 답해주었다.)

상희: 기름값도 안 나와요?

나: 기름값은 나온다더라.

민선: 얼마나요?

나: 글쎄. 아직 안 받아봐서 모르겠는데?

수업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들이 반가워서 얘기를 계속 들어주었다.

미정: "그럼 시험 문제도 충북고랑 우리 학교랑 두 개 내요?

나: 그렇지.

지숙: 우리는 쉽게 내주세요.

나: 쉽게 내면 좋겠어?

미정: 당연하죠. 우리는 실업계잖아요.

가영: 서술형도 있어요?

나: 아, 그건 다른 반 가르치는 선생님이랑 상의해서 정해지는 대로 알려줄게.

나희: 문제 다 찍어주고 쉽게 내주셔야 되요.

나: 그래, 쉽게 낼게.

시험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가영이가 툭 말을 던졌다.

"쌤은 인문계잖아요. 우린 농고니까...(말끝을 흐린다.)

무시하지 마세요."

가영이 말을 듣고 먹먹해졌다.

'우린 농고니까'라는 말이 자꾸 귓가에서 울렸다.

다른 아이들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얘길 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징소리의 여운처럼 가영이의 말만 계속 맴돌았다.

대답을 못하고 가영이를 바라보는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가슴 아프고 미안했다.

잠시 후 아이들의 시선이 의식되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요동쳤다.

'아이들과 나누던 대화를 이어가야 하나, 내 상태와 마음을 알려야 하나?'

만난 지 사흘 밖에 안 된 아이들, 그것도 여학생들 앞에서 이게 뭔 창피인가 싶었다.

괜히 눈물을 보였다가 물렁한 쌤으로 보이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눈물 나는 내 상태를 드러내고 싶은 쪽으로 갔다.

"얘들아, 잠깐만!

쌤이 지금 눈물이 나와서..."

그러자 아이들이 초집중한다.

의아해 하는 것 같다.

"아까 가영이가 '쌤은 인문계잖아요. 우린 농고이고.'라고 한 말을 듣고 쌤이 눈물이 나네.

아,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것도 같고, 흥미로워 하는 것도 같았다.

몇몇 아이들이 뭐라뭐라 말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쌤 모습이 좀 의아하지?

가영이 말 듣고 마음이 좀 아파서...

쌤은 인문계 아이들이나 너희들이나 사람의 수준 차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아.

쌤은 너희랑 만나는 동안 너희들을 존중해주고 싶어.

그리고 쌤도 너희한테 존중받고 싶고."

그러자 여러 아이들이 동시에 말을 했다.

"쌤, 너무 착한 것 같아요."

"쌤이 우리 담임 해주세요."

"오글거려요."

웃으면서 고맙다고 답했고,

몇 가지 대화를 더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수업을 했다.

수업 중간에 미정이가 뜬금없이 얘길했다.

"선생님, 내년에 우리 학교로 와주세요. 그래서 우리 담임 해주세요."

"이야, 감동이다, 야."(미영이를 보며 밝게 웃어주었다.)

그런데 수업 마칠 때쯤 보니 미정이는 엎드려 자고 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농고이다 보니 학교 일찍 마치면 새벽까지 알바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 나에 대한 호의는 호의고, 피곤한 건 피곤한 거지.'

좀 아쉽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했다.

첫날 수업 때, 엎드려 자거나 껌을 씹거나 화장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막막하고 두려웠다.

'이래서 선생님들이 실업계는 힘들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나?'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이런 아이들과 한 학기를 어찌 보낼지 걱정되고 불안했다.

하지만 이날, 가영이의 말을 듣고는 아이들이 달리 보였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 같아 안쓰러웠다.

'지금껏 얼마나 많이 무시 받았을까?' 짠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눈물이 맺히고 '사람의 수준 차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건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 미안함이 커진다.

'사람의 수준 차' 이야기는 진심이었지만,

나 또한 실업계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낮은 기대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래도 가영이 말 듣고 눈물이 날 때

내 마음을 아이들에게 열어 보인 건 다행스럽다.

선입견과 다른 실제 아이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안심된다.

상처가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불신도 있고,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알바도 많이 하고,

관심과 사랑을 바라고,

배움에 대한 흥미도 있는 아이들인 것을 알았다.

한 명 한 명은 또 다를 것이다.

그 한 명 한 명과 만나고 싶다.

두근거린다. 그 느낌이 반갑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