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 (낄낄)
(매일 학교로 전화해서 아이에 대해 묻고 애가 조금만 뭐라 그러면 시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님. 벌써 5번 교무실로 직접 전화를 해서 온 학교가 다 알게 되었고, 선물을 안 받는다고 화를 내어 마음이 몹시 불편했던 학부모님과의 전화통화.)
학부모 : 선생님, 저 사랑(가명)이 엄만데요.
나 : 네 안녕하세요.
학부모 : 제가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연락드리는 건데요. 우리 사랑이가 요즘 밥을 못 먹겠대요.
나 : 급식을 잘 못 먹나요?
학부모 : 사랑이가요. 사랑이 앞의 아이가 뚱뚱해서 그런지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도 어제랑 그 전날은 저녁까지 못 먹었어요.
나 : 저녁까지요?
학부모 : 네에, 사실 우리 사랑이는 바이올린을 워낙 열심히 하니까요. 유치원 때는 11시까지 바이올린을 시켰어요. 매일 레슨을 3개씩 하구요, 주말에도 오케스트라 가고 레슨 또 받고 대회 준비 레슨을 또 따로 받아요. 학교 다니기 시작하니까 애가 일찍 일어나야 하고 눈도 난시가 심해지고 그래서 많이 줄인 거예요. 그런데 저녁을 못 먹으니까 걱정이 많이 되죠.
나 : 레슨을 굉장히 많이 하네요. 점심도 못 먹었다는데 저녁까지 못 먹으니까 걱정이 많이 되시겠네요.
학부모 : 네에. 그 애는 1학년인데 집에서 잘 안 씻나 봐요.
나 : (불쾌해져서)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그 아이도 부둥켜안고 하는데, 냄새가 그리 나진 않거든요. 그렇지만 전에 하루 냄새가 났던 기억이 사랑이에게 남아있으면 이제는 냄새가 안 나도 자꾸 생각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학부모 : 우리 사랑이가 좀 예민하지요.
나 : 사실 조금 걱정이긴 하네요. 그 정도 친구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거기다가 저녁까지 못 먹을 정도라고 하시니까요.
학부모 : 제가 봐도 예민해요. 많이. 사랑이가 비장이 안 좋아서요. 많이 토하고 유치원 때는 쓰러진 적도 몇 번 있어서 119에서 우리 집 위치를 알 정도예요.
나 : 아이고 몸이 많이 안 좋았네요. 늦게 만난 귀한 딸인데 걱정이 많이 되셨겠어요.
학부모 : 그렇죠.
나 : 밥 문제는 제가 친구들에게 티 나지 않게 ‘키가 변했네’ 하면서 순서를 잘 바꿀게요. 그래보고 한 번 더 지켜보기로 해요.
학부모 : 네네.
나 : 어머니께서 사랑이에 대한 정성이 정말 지극하시네요. 사랑이 상태도 계속 체크하시면서 알려주시니까 저도 그런 부분이 도움이 돼요. 앞으로도 많이 알려주세요.
학부모 : 네 그럼요.
나 : 어머니 그런데 제가 바이올린 레슨 시간을 들으니까 좀 많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많이 되네요.
학부모 : 좀 많이 하긴 하지요. 하지만 선생님 저는 마흔 넘어 본 아이라서 제가 진짜 훌륭하게 키우고 싶구요. 아무래도 나이가 더 있다 보니까 다른 엄마들보다 미래를 좀 본다고나 할까요.
나 : 정말 귀한 아이다 보니 재능을 많이 키워주고 싶으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 이렇게 예민한 것이나 유치원 때부터 토하고 쓰러진 적도 많았다고 하고, 눈도 난시가 와서 시력이 많이 안 좋은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으니까요. 제 생각에는 바이올린보다 아이의 건강이나 마음 상태에 집중하셔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학부모 : 사실 저도 제 욕심인가 싶은 생각이 들긴 해요.
나 : 훌륭함 전에 행복한 아이가 되면 좋겠네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학부모 : 네,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은 하루에 3개 듣고 대회 레슨 월, 수, 금 듣고 있는데요. 대회 레슨만 집중하고 다른 건 줄일게요.
나 : 사실 어머니께서도 정성에, 시간에, 경제적인 부분까지 많이 투자하셨을 텐데 제 이야기를 이렇게 수용해 주시니 감사해요. 정말 통이 크신 분인 것 같아요.
학부모 : 호호 아니에요. 사실 그런데 선생님은 좀 냉정하신 것 같아요.
나 : 선물을 안 받아서요?
학부모 : 네.
나 : 어머니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저랑 친근하게 지내고 싶으신 거지요? 그래서 사랑이 소식도 많이 듣고 감사 표시도 하며 잘 지내고 싶으신 거잖아요.
학부모 : 그럼요.
나 : 저는 이미 어머니께서 녹색 어머니, 명예사서 같은 신청을 다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구요. 선물만 딱 빼고 친근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부모 : 그래요?
나 : 네, 명예사서 하러 오실 때 저희 교실에서 차 한 잔 하고 그러세요.
학부모 : 호호, 네.
며칠 동안 이 학부모 생각만 하면 불쾌하고 욕이 올라왔었다. 그래서 통화 중에도 공감 칭찬이 안 나와서 무뚝뚝한 대화를 했지만, 내 나름 노력해서 관계 개선의 시작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그래도 진짜 어렵다. 할 말은 다 해서 속은 좀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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