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 (황토집)
우리학교는 매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다요인 인성검사를 실시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진영이가 정서불안에 충동장애(자해, 자살)가 높게 나와서 너무 놀랍고 의아했다. 아침에 늘 웃으며 인사하고 지금 기분을 잘 말해주던 아이인데,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방과 후에 불러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 : 진영아, 선생님이 방과 후에 보자고 해서 궁금할 거 같은데... 어때?
진영 : 예 궁금해요.
나 : 학교 끝나고 빨리 가고 싶을 텐데 시간은 괜찮아? 약속이 있거나 학원에 가야하는 시간은 아닌가 살펴지네.
진영 : 괜찮아요.
나 : 선생님은 진영이가 늘 웃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책도 열심히 읽는걸 보고 굉장히 안심되고 든든하고 좋았거든.(진영이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나 : 그런데 이번에 학교에서 한 검사 결과를 보고 좀 놀라고 염려도 되고 진영이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하는 말인데 듣기 괜찮을지 모르겠네. 혹시 긴장되지는 않는지?
진영 : 음 좀 긴장되는 것 같아요.
나 : 갑자기 선생님이 불러서 얘기를 하니 긴장될 거 같아. 그래도 이렇게 선생님 보면서 잘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 선생님은 안심도 되고 고맙기도 하다. 고마워... 지금 기분은 어때?
진영 : 음 아까보다는 편해졌어요.
나 : 아까보다 편해졌다니 참 다행이다. 선생님은 더욱 안심된다. 진영이가 편안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솔직하고 편하게 얘기할게.
진영 : 예
나 : 진영아 요즘 어때? 좀 힘들지 않니? 검사결과 보니 네가 좀 힘들지 않을까 싶어.
진영 : 그냥 뭐 좀 그렇기두 하구....(말끝을 흐린다.)
나 : 진영이가 힘들었나보다. 말하기도 주저될 만큼.
진영 : 예 너무 힘들어요.(눈물이 글썽인다.)
나 : 저런~ 진영이가 정말 힘들었구나. 답답하고 짜증나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견뎠어?
진영 : 그냥 늘 하던 거라 그냥 참았어요.
나 : 그래 그냥 참았구나. 정말 오랫동안 참고 있었네. 아이구야 많이 힘들었겠다. 진영이는 뭐가 제일 힘들었어?
진영 : 학원가는 거요. 영어, 수학 학원가는 게 너무 싫고 숙제가 많아서 힘들어요.(눈물을 흘린다)
나 : 학원가는 게 너무 힘들고 싫구나. 진영이처럼 열심히 하는 친구가 힘들다고 할 정도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나 보다. 선생님은 진영이 말 듣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고 걱정도 되고 진영이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래 실컷 울어.
(잠시 동안 흐느껴 울다가 멈춘다.)
나 : 지금은 기분이 어때?
진영 : 좀 시원해요.
나 : 그래 좀 시원하지? 다행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그렇게 힘든데 부모님께 왜 말씀드리지 않았어?
진영 : 무서워요.
나 : 무섭다고. 누가?
진영 : 엄마요.
나 : 엄마가 무섭구나. 엄마가 무서워 말 할 수가 없었구나. 혹시 때리시니?
진영 : 그런 건 아니고요, 엄마랑 말을 하면 제가 이길 수가 없고, 집에서는 엄마가 말하는 대로 다 돼요.
나 : 엄마한테 말해도 니 말이 통하지 않을 거 같고 집에서 엄마가 힘이 가장 세다고 생각되는구나. 그래서 말하기 무섭고 겁나고 좀 갑갑했겠다.
진영 : 예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요.
나 : 그래, 정말 답답하고 힘들고 말하기 참 무서웠겠다. 많이 힘들었겠다.
진영 : 예 너무 힘들었어요.
(그 뒤로 10분여동안 아이는 자신의 힘든 마음을 얘기했고, 나는 아이의 심정을 알아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나 : 그동안 진영이가 많이 참았네. 말하고 나니 좀 어때?
진영 : 음~ 편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요.
나 : 그래. 훨씬 낫다는 말이 선생님은 참 좋고 안심된다. 그래도 완전히 시원해지지는 않았지?
진영 : 예
나 : 그래 워낙 오래 진영이가 참고 견뎌서 한 번에 시원하고 편해지기는 힘들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얘기하면 더 편해질 거 같아. 그래서 선생님이 좀 도와주고 싶은데, 선생님이 말하는 거 한 번 들어볼래?
진영 : 들어볼게요.
나 : 진영이가 어머니께 말하기 참 힘들겠지만 지금 선생님에게 한 것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해보는 게 어떨까해. 지금처럼 ‘엄마 나 정말 너무 힘들어’ 이렇게 얘기해 보는 거야. 자 따라해 볼래?
진영 : 엄마 나 정말 너무 힘들어.(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인다.)
나 : 다시 한 번 해볼래? 엄마 나 정말 너무 힘들어 학원이 너무 힘들어.
진영 : 엄마 나 정말 너무 힘들어. 학원이 너무 힘들어.
나 : 그래 잘 했어. 진영이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선생님은 막 들어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지금처럼 어머니께 말씀 드려볼 수 있겠니?
진영 : 예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 : 그래 꼭 말씀드려. 그리고 어머니 말씀도 들어보고 이해가 안 되거나 힘들면 솔직하게 또 말씀드리고 알았지? 선생님 얘기 듣고는 어떠니?
진영 : 좀 힘이나요 그리고 편하고 좋아요.
나 : 그래, 선생님도 너무 좋다. 힘내고 있는 진영이가 참 멋지고 힘 있어 보여서 선생님도 참 좋고 든든하다. 힘들었을 텐데 솔직하게 얘기해준 거 너무 고맙고 내 말 잘 들어준 것도 고마워. 그리고 무엇보다 진영이와 더 가까워진 거 같아서 그게 선생님은 너무 좋다. 앞으로도 힘든 일 생기면 솔직하게 다 얘기해보자. 알았지?
진영 : 예 그렇게 할게요. 고맙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어머니와 통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진영이의 현재 상태를 알려드렸다. 어머니는 무척 놀라고 당황스러워 하셨다. 자신은 진영이가 애기 같아서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라고 말씀하셔서, 한참 동안을 어머님의 놀라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알아드리고 오늘은 무조건 진영이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어머님이 논술 선생님이라 그런지 참 논리적이셨다. 진영이가 무섭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한 치의 틈도 없을 것 같은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으리라. 어머님의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은 날카로웠을 거 같다. 앞으로 이 어머니와도 많은 대화를 해야 할 거 같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반성을 했다. 늘 웃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진영이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동안 아침 마다 아이들의 기분과 감정을 살폈던 나로서는 참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이의 겉모습만 보고 안심했구나. 자책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앞으로 아이들을 좀 더 깊게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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