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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호. 친구들과 함께 풀어가는 갈등중재

홍석연(봄) 2021. 5. 11. 16:29

김정석 (소망)

난 학생부 일을 맡고 있는데 동료 샘이 ‘지한이’와 ‘성현이’ 간의 갈등을 중재해 달라고 의뢰를 했다. 두 녀석의 갈등이 1 년 이상 지속되어 왔고, 어제 또 싸웠다며 이번에 중재가 안 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해 오셨다.

두 학생을 불러다가 갈등 중재를 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지한이’랑 ‘성현이’가 안타깝기도 했고, 두 녀석 다 3학년 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아이들이라 잘 하면 3학년 전체 아이들과의 관계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또, 왠지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었다.

두 녀석에게 각각 믿을 만한 친구 2명을 데리고 교무실로 모이라 했다. 당사자 2명, 각각 친구 4명, 나까지 총 7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교사 : 지한이, 성현이 니네 둘 서로 싸웠다며. 학폭 위원회를 열어야 하는데,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중재를 서 보는 거야. 니네들 사이에 갈등이 오래되었다고 들었는데, 성실하게 임할 거면 샘이 중재해 보고, 아니면 그냥 학폭으로 가고. 어때? (이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평소 성격을 고려해 중재 과정에 보다 책임감 있게 임하도록 하기 위해 약속을 받아두고 싶었다.)

지한, 성현 : 네.

교사 : 좋아. 그럼 원칙이 하나 있다. 너희 둘끼리 직접적인 의사소통은 금지. 한 명이 말할 때 끼어들어서는 안 되고, 샘이 발언 기회를 줄 때만 말할 수 있어. 지켜줄 수 있겠어?

지한, 성현 : 네.

교사 : 그리고 니네들 4명. 참 멋지다. 평상시 니네들이 각자에게 신뢰를 주는 친구였었나 보다. 누군가한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 니네들 역할은 범퍼 역할이야. 범퍼 알아? 얘네 둘이 격해진다거나, 중재하면서 샘이 격해지면 범퍼 역할을 하는 거야. 알겠지?

친구들 : 네.

교사 : 그럼, 둘 중에 먼저 말하고 싶은 사람이 무슨 일로 어제 싸우게 되었는지 말해 볼래?

성현 : ~~~~ (뭐라뭐라 함)

지한 : 아니, 그게 아니라 ~~~ (뭐라뭐라 함)

교사 : 지한이, 너!! 너 선생님 말 안 들을래? 둘이 직접 말하는 거 없다고 했지! (나는 평소에 지한이의 문제는 상대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게 문제라고 여기고 있었던 터라 화가 나고, 답답해졌다. 화를 내고 보니 지한이뿐만 아니라 나머지 4명의 친구들도 긴장한 표정이다. 침묵이 흐른다.)

교사 : (민망한 듯 웃으며, 친구들에게) 야, 니네들 뭐하는 거야? 샘이 화날 때 범퍼 역할 해야지. "쌤, 화가 많이 나셨나봐요." 이렇게. 해 봐.

친구들 : (웃는다. 나도 웃었다. 한 고비 넘었다.)

성현이는 지한이를 때린 적 없다는데, 지한이는 자고 있는 자신을 성현이가 때렸다고 했다. 증인들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성현이가 때렸다고 굳게 믿던 지한이도 얘기하는 과정에서 차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한참 공방이 이어졌다. 듣고 요약하고, 마음을 알아주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했다.

친구 1 : 누가 그랬는지 찾아내기는 참 어려울 것 같네요.

교사 : 우와! 그런 놀라운 발견을.. 대단한데. 원래 사람끼리 생긴 문제는 원인 찾는다고 해결되는 법이 아니지.

교사 : 서로에게 뭘 원하는지 말해봐. (이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시원했다. 해결될 것 같은 기대가 순간 찾아왔다.)

성현 : 지한이가 심한 장난을 안 쳤으면 좋겠어요.

교사 : 어? 약한 장난은?

성현 : 괜찮아요.

교사 : 심한 장난이 문제였구나. 그래 힘들었겠다. 그래도 서로 맹숭맹숭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조금씩 장난도 치면서 지내고 싶었구나.

성현 : 그렇지요.

교사 : 지한이, 너는 뭘 원하는지 말해 봐라.

지한 ; 성현이가 저한테 너무 심하게 장난을 쳐요.

교사 : 너도 심한 장난이 문제구나. 원하는 게 뭐야?

지한 : 장난을 정도 것만 했으면 좋겠어요.

교사 : (성현이 표정은 더 없이 해맑은데, 지한이 표정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다.) 지한이,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데?

지한 : 아니에요. 뭘 좀 생각해 보느라고.

교사 : 뭔데?

지한 : 제가 자고 있을 때 성현이가 절 때렸나 안 때렸나 하는 거요.

교사 : 여전히 미심쩍기도 하고, 그런 일이 있을 때 어찌하면 좋겠나 궁리중이냐?

지한 : 네.

교사 : 기특하네. 그런 생각도 다하고. 묻고 확인하면 되지. (이 말을 하고 난 후 지한이의 표정을 보니 뭔가 더 탐색할 게 있는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교사 : 자, 이제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소감을 한 가지씩 이야기하고 끝내기로 하자.

7명이 돌아가면서 오늘 소감을 이야기 했다. 기억에 남는 아이들과의 대화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성현 : 1년 동안 갈등이 해결된 것 같아 좋아요. (아주 해맑은 표정이다.)

교사 : 그렇게 되도록 도와준 니 친구들에게는?

성현 : 고맙죠.

교사 : 그런 자리를 만든 샘에게는?(나의 애씀을 이해받고, 갈등 중재 능력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었다.)

성현 : 선생님 멋지세요. 고맙습니다.

친구 1 : 오늘 자리가 다행인 것 같아요. 샘이 대단하시고요.

교사 : 둘 보기가 안타까웠나 보네.

친구 1 : 네. 둘 다 친구니까요~

교사 : 그렇구나. 샘이 보기에는 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아이들 사이 혹은 아이들과 나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중재를 서 줄 수 있는 친구들을 데려와서 함께 이야기를 하게 해서 갈등을 중재해 보는 시도를 해 보았다. 친구들이 완충 작용과 중재 역할을 잘 해 주어서 놀라웠다.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관계들이 생겨나고 그 관계망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서로 배려하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게 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또한 교사 앞에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친구의 존재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아울러 나에게는 집단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문제를 해결을 시도해보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