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공감교실

따뜻한 협력, 성장의 다살림 공동체

교실 속 관계가 자라는 연수, 배움회원 모집 자세히보기

마리로 가꾸는 공감교실이야기

제43호. 분노를 넘어 아름다운 우정으로

홍석연(봄) 2021. 5. 11. 16:28

안숙희 (요정)

쉬는 시간이 끝날 무렵 6반 복도를 지나가는데 진영이와 현우만 남은 교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교실에 들어갔더니 진영이가 주먹을 쥐고 현우를 때리려는 찰나. 깜짝 놀라서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아슬아슬하고 긴장되고 걱정됐다.

나 : 잠깐!! 얘들아~ 무슨 일이야?

진영이가 목발을 짚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을 참고 있는 표정으로 오른쪽 주먹을 힘껏 쥐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걱정되고 불안했다. 눈물을 보니 안쓰럽고 맘이 아팠다.

현우는 놀라고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때리면 공격할 듯한 방어적인 자세로 진영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가 난 듯 보였다. 둘 사이가 감정이 꽉 차있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져서 걱정스러우면서도 '서로 하나하나 이해하고 풀어 가면 되겠지' 하는 믿음과 안심되는 마음도 있었다. 두 아이를 믿는 마음과 나를 믿는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편안하게 도울 수 있는 마음상태가 자각되어 반가웠다. 오랜 경험에서 생긴 자신감에 안심됐다.

나 : 진영아~ 너는 너무너무 분하고 억울한가보구나. 현우야~ 너도 너무 화나고 놀랬나보네. 샘은 너희가 걱정되는데 무슨 일인지 얘기해 줄 수 있겠니?

진영 : 샘~ 현우 한대만 때리면 안돼요?

치켜 올린 주먹을 휘두르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나는 아이 주먹 앞쪽에서 두 손을 흔들어 제지하는 동작을 보였다.

나 : 꼭!! 때리고 싶을 만큼 분하고 화나나보다. 참기가 너무너무 힘든가보다.

진영 : (눈물을 계속 뚝뚝 흘린다. 안타깝고 짠하다.) 네. 한대만 때릴게요. 때려야 분이 풀릴 것 같아요.

나 : 너무너무 화나고 분하구나. 때려야만 분이 풀릴 만큼. 현우가 너무 밉고 싫은가보구나.

진영 : 짜증나고 싫어요. 한 대만 때릴게요.

나 : 이만저만 짜증나고 싫은 게 아닌가보다. 그 동안 쌓인 게 많았나보네.

진영 : 현우가 목발을 치고 저를 밀었어요.

나 : 저런, 깜짝 놀라고 화났겠다. 미는 순간 휘청하면서 넘어질까봐 불안하고 순간 무섭기도 했겠어.

진영 : (여전히 주먹은 움켜쥐고 올리고 있다.) 한 대만 때리게 해주세요.

나 : 얼마나 화나고 놀라고 무서웠으면 때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단 생각이 들겠나? 샘은 네가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든다. 때리라고 하고 싶지만, 네가 때리면 현우도 가만히 맞고 있진 않을 텐데... 그러면 너희 사이가 더 나빠지고 다치게 될까봐 샘은 걱정돼.

현우를 봤더니, 눈에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고 진영이가 때리면 받아칠 기세다.

현우 : 저도 때릴 거예요.

나 : 거봐라.

샘은 너희가 서로 간에 오해가 있으면 풀고 이해하게 되어서 편안하고 좋은 관계로 지내게 돕고 싶어. 진영이도 현우도 너무너무 화난 거 같은데... 때리고 싶은데도 참고 샘 말 들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렇게 화가 났는데도 때리지 않고 참고 있는 너희가 대단하고 기특해.

나 : 현우도 화가 많이 난 거 같은데... 어떤 사정이 있는지 들려줄 수 있어?

현우 : 제가 체육복 갈아입으려고 하고 있는데, 진영이가 제 귀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어요.

나 : 저런, 너무 너무 놀라고 심장이 떨어지는 거 같았겠다. 놀래서 반사적으로 밀었겠네.

현우 : 아니요. 화가 나서 밀었어요.

나 : 화가 났었구나. 화가 나기까지 했다니...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거니?

현우 : 어릴 때 할로윈데이날 스크림 분장을 하고 아빠가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었어요.

나 : 저런 저런, 너무 너무 놀라고 무서웠겠다. 어릴 때라 더 무서웠겠고, 스크림 분장이라 공포스럽기까지 했겠다. 너무나 충격적인 기억이겠어. 그런 무서운 장난을 한 아빠에게 너무 화났었겠다. 네겐 귀에 소리 지르는 게 참을 수 없는 공포스러움을 떠오르게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는 건가보네.

현우 : (눈빛이 풀리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 보였다.) 네. 그때부터 큰 소리만 나도 놀래고 싫어요.

나 : 그랬겠다. 놀래고 싫겠어. 소리에 대한 자극이 네게는 참기 힘든 거겠어.

나 : 지금은 어때? 맘이 풀렸어?

현우 : 네.

나 : 진영이는 아직 맘이 불편해 뵈는데, 네가 진영 마음이 어땠을지 알아줄 수 있겠어?

현우 : (한참동안 생각에 잠긴 듯 보이다가) 화나고 짜증났을 거 같아요.

나 : (진영의 주먹은 풀려서 목발을 짚고 있고, 눈물도 멈췄고, 표정도 좀 편안해 보인다.) 그랬어?

진영 : 네. 화나고 짜증났어요. 아이들이 목발을 가져가서 장난치고, 목발을 짚고 있으면 툭툭 치고. 그동안은 화 안내고 웃어넘기고 참았는데...(울컥하는지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눈물을 훔친다.)

나 : 저런, 약오르고 짜증나고 속상했겠다. 아이들이 신기해서 그러나보다. 장난치고 싶은가보다. 이해하는 마음 내면서 받아주고 웃으며 대처하다가, 참을 만큼 참았다 싶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겠다. 너는 두 달이 넘도록 불편한 다리로 고생하며 지내는데, 맨발이 드러나서 시리고, 목발 짚으려면 겨드랑이도 아플 거고...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답답하고 아프고 힘들고... 친구들이 도와 주기는 커녕 너를 장난스럽게 대하니 서운하고 짜증나고 화났겠어.

나 : (진영이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현우가 소리에 그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줄 모르고 친근하게 장난친 거였는데, 현우가 밀었을 때는 놀라고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의아했겠어. 다른 친구들이 목발로 장난쳤을 때 감정이 더해져서 너무 분하고 짜증나고 화났었겠어.

넘어질 뻔 할 때는 위태롭고 불안하고 무섭기도 했겠고.

현우 : (가만히 듣고 있더니) 미안해. 미안해. (눈물을 왈칵 쏟는다. 진심이 담긴 현우의 말에 내 맘도 울컥했다.)

진영 : 나도 미안해.

나 : 그래. 그래.(등을 토닥토닥 해줬다.) 미안하구나. 기특하다. 사과하는 맘이... 진영이도 현우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려고 그랬던 거구나. 둘 다 기특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 열고 받아주어서. 이쁜 녀석들

진영 : 세수 좀 하고 올게요.(표정이 편안하고 밝아져 있다.)

현우 : 저는 체육복 갈아입고 올께요.

나 : 그래. 그래. 얼른 준비하고 수업 가렴. 체육샘께는 사정이 있어서 수학샘이랑 얘기 나누느라 늦었다고 전하고. 샘 필요하면 부르렴. 가서 얘기 해줄게. 샘은 교실 문단속 하고 있을게.

문단속을 다 하고 나가려는데, 화장실에서 목발을 짚고 세수하고 있는 키 큰 진영이의 등을 작은 키의 현우가 손을 길게 뻗어 토닥토닥 해주고 있다. 짜식들~~~

그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고 흐뭇하던지... 미소가 절로 씨익 났다.

엘리베이터까지 부축하듯 도와서 함께 꼭 붙어 걸어가는 진영이와 현우의 모습을 보니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좀 전에 서로 으르렁대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ㅋ

그 일이 있은 후 둘 사이를 유심히 살펴보게 됐다. 서로 꼭 붙어 다니고, 친근하게 장난도 치고, 재잘재잘 수다도 떨고, 해맑게 웃고... 그런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ㅎㅎㅎ

"서로 어떻게 지내? 맘은 시원하게 다 풀렸어?" 하고 물어보면

"잘 지내요. 다 풀렸어요." 한다.

수업 시간에도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미소 띈 얼굴로 유난히 집중해서 수업을 잘 듣는 두 아이. 나의 관심과 애정도 더 깊어진 계기가 됐다. 우리 셋만 아는 이야기가 우리 사이를 더 다정하고 친근한 사이로 이어주고 있다.

우리 셋의 작은 역사로 맺어진 아름다운 우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