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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호. 너, 화났구나!

홍석연(봄) 2021. 5. 12. 10:39

이선희 (평화)

어제

친구들과 함께했던 활동을 그림으로 그려 모자이크로 꾸미는 모둠 활동을 했다. 색종이 오려붙이기는 너무 버거워할 것 같아 면봉으로 점묘화를 하기로 했다. 어제 사진 찍을 때 교실로 들어와서 친구한테 퍽큐를 날려 나를 몹시 화나게 했던 희준이. 나를 자꾸 시험에 들게 한다. 나의 수용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매를 들고 싶은 충동을 올라오게 한다. 네 번 정도 감정 알아주고 훈계를 했다가 “희준이가요” 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아무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매를 들어서라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었다. 화내며 언성을 높이는 내가 못나 보이고 아이들한테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었다.

잠시 호흡을 하고 놀랐을 아이들 마음도 풀어주고 희준이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주었다. 희준이가 감정적으로 안정된 걸 확인하고, 나도 아이들한테 표현해 이해받아 감정을 비우고 수업을 했다. 마음 리더십 공부한 게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오늘

모둠별 수업을 시작하는데, 수민이가 또 나온다.

수민: 희준이가요. 자기 있는 부분 표현하라고 했는데 엉뚱하게 해요. 면봉으로 점을 콕콕 찍어야하는데 장미꽃 부분을 직직 그려요.

나: 수민이 말은 희준이가 점으로 그림을 그려야하는데 면봉으로 직직 그려서 그림이 망가져 속상하다는 말이구나.

수민: 네. 말해도 안 들어요.

나: 희준이한테 말해도 안들어서 난감하고 속상하겠어. 선생님이 희준이한테 말해서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단 말이지?

수민: 네.

나: 그래. 함 가보자.

3모둠 그림을 보니 희준이 얼굴은 빨간색으로 점을 마구 찍어 놓았다.

나: 그림에 희준이 얼굴이 빨간걸 보니 화가 난 걸 표현한 모양이네.

희준: 네.(굳은 표정이 풀린다.)

나: 무엇이 희준이를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을까.

희준: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수민이가 하지 말라고 소리 질러요.

나: 희준이는 면봉에 물감을 묻혀 이 부분을 그리려고 하는데 수민이가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뭐라 했다는 거네. 속상하고 짜증났구나.

희준: 네. 맞아요. 수민이가 자꾸 나한테 소리 질러요.

나: 수민이가 친절하게 말해도 되는데 소리 질러서 화난거야?

희준: 네.

나: 지금 기분은 어때?

희준: 괜찮아졌어요.

나: 좀 편안해 졌구나. 그럼 네가 맡은 부분을 점으로 표현할 수 있겠어?

희준: 해볼게요.

나: 그래. 정성들여 재미있게 표현해보면 좋겠다. 수민이는 어떠니?

수민: 희준이가 한다고 하니까 괜찮아요.

나: 그래 힘 모아 같이 해 보자.

조금 있다 3모둠을 보니 희준이 손이 온통 빨갛다. 책상 위도 빨간 물감 천지다.

나: 희준아(처음엔 화가 나서 이름을 힘주어 불렀는데 가만 보니 물감 튜브에서 물감이 한꺼번에 쭉 나온 거였다.) 저런, 희준이도 당황스럽겠다. 어쩌다 물감이 쭉 나왔어. 우선 얼른 손을 씻고 오렴.

희준: (손을 씻는다고 나갔다.)

나: 3모둠 친구들아, 와, 거의 다 했네. 사람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어. 점찍어 표현했는데 생동감 넘치는구나. 참 멋지다.(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감상한다.) 수민과 성민이가 자기를 실제처럼 표현해 놓았구나. (희준이가 들어오는 걸 보고) 희준이도 많이 했구나. 네 주변의 장미를 표현하면 작품이 완성되겠네.

희준: (씩 웃으며 앉아서 조금 하다가 이내 돌아다닌다.)

나: (좀 두고 봤다. 2시간 마치고 놀이 시간이 되니 희준이는 마치지도 않았는데 공을 들고 나선다.) 희준아, 하던 거 마쳐야 놀 수 있는데, 어쩌지?

희준: (오만상을 찌푸리며) 네.(대답을 하고는 듬성듬성하게 점을 찍고 다했다고 나간다.)

나: (놀고 오게 했다. 다 된 작품을 큰 스케치북에 붙여 전시 했다. 아이들이 만족스러워하는 걸 보고 나도 흐뭇했다. 3교시에 소감 나누기를 했다.) 점묘화를 화면서 기분이 어땠는지 누가 말해볼래?

성준: 힘들었는데 점이 찍혀 그림이 되니까 신기했어요.

채민: 힘들지만 재밌었어요.

동형: 같이 만들어서 즐거웠어요..

나: 다들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도 모두 이렇게 완성을 해서 기쁘겠다. 그림 볼래? 선생님은 너희들이 참 대견해. 어쩜 이렇게 정성들여 열심히 할 수 있었어. 너희의 끈기가 놀랍다. 성준이, 채민이, 동형이 표현처럼 너희도 신기하고 재밌고 즐거웠니?

아이들: (활짝 웃으며) 네.

나: 기특하다. 수고해서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낸 우리 모두를 위해 박수를 쳐볼까?

아이들: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양치를 하러 들어가다가 깜짝 놀랐다. 문짝이고 벽이고 뻘겋다. 희준이가 들락거리며 온통 물감을 발라 놓았다. 나는 아이들을 시켜 희준이를 오게 했다. 늦게까지 점심을 먹은 희준이가 왔다.

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희준아, 손 씻으러 왔다가 물감이 이렇게 묻었나봐. (걸레를 들고 닦아가며) 이렇게 하니까 모두 닦이는구나. 여자화장실은 선생님이 닦을게. 남자화장실은 희준이가 닦을 수 있을까?

희준: 네. (내가 다 닦은 걸 보더니 바로 걸레를 받아 남자화장실의 문짝과 벽에 묻은 물감을 쓱쓱 닦는다. 그러더니 물감 묻은 걸레를 나한테 건넨다.)

나: 걸레는 어쩔까? 빨아놓아야 되겠지?

희준: 네.(남자화장실로 걸레를 가지고 가더니 열심히 빨아 수건걸이에 걸어 놓는다)

나: 잘했어. 우리 희준이.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서 개운하겠다.

희준: (씩 웃으며) 네.

나: (어깨를 토닥여주며) 교실로 가서 공부하자.

넷째시간

희준이는 수업에 집중했다. 집에 갈 때까지 편안해 보인다. 기특하다. 순수한 희준이의 마음이 보여 안심되고 편안하다. 초반에 그림에서 화난 희준이를 알아준 것이 참 잘했구나 싶다. 희준이와 마음 편하게 지내서 다행스럽다. 희준이도 수업에 집중할 수 있고,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고, 말도 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 참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