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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호. 도난사건, 어쩌지?

홍석연(봄) 2021. 5. 12. 10:45

한창호 (가을하늘)

교실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나면 참 난처하다.

도난은 예방이 최우선일 뿐, 일단 사건이 일어나면 사실적 해결이 참 어렵기 때문이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종례하러 교실에 들어갔는데

규석이가 앞으로 오더니

지갑을 책상 안에 넣어뒀는데 돈만 없어지고 지갑이 사물함 위에 있더란다.

순간, '아, 왜 지갑을 책상 안에 뒀는데?'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며, ‘교실에서 물건 없어지면 찾기가 매우 힘든데...’ 하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했다. 규석이는, 돈은 2,3만 원 정도라 못 찾으면 어쩔 수 없지만 기분이 매우 안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반 아이들 말로는 다른 반 애들이 딱 규석이 자리에 몰려 있었단다.

나는 아이들에게 돈은 돈이고, 지금 규석이 기분이 어떻겠냐 했고 아이들 반응을 들은 후 규석이의 기분을 물었다. 일단은 이런 정도로 종례를 마치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냈다.

한편 이 이야기를 규석이 부모님께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밴드톡을 통해 어머님께 이런 일이 있었음을 알려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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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

오늘 체육대회 끝나고 규석이한테 기분 나쁜 일이 하나 생겼어요. ㅜㅜ

교실에서 종례하려는데 규석이가 ‘지갑을 책상 안에 두었는데, 지갑이 사물함 위에 올려져 있고 지갑 안의 돈만 없어졌다’고 했어요.

굉장히 짜증나고 언짢고 기분 나쁜 표정이었어요. 제게 말을 할 때에는 담담한 듯 말하려 노력하는 것 같았고요. 그러면서 ‘돈은 2,3만원이라 현실적으로 찾기 어려우면 그건 그냥 어쩔 수 없는데...’ 라고 말을 하더라구요.

이 말이 제겐 이렇게 들렸어요. "돈 못 찾는 건 어쩔 수 없긴 한데요, 저 지금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저는 반 아이들에게 이리 말했어요. "지갑을 서랍 안에 둔 건 규석이로서는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그리 한 걸 텐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규석이 마음이 어떨 거 같냐. 너희들이 규석이 마음 좀 알아줄래? 지금 규석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아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규석이 마음을 알아주더라고요. "빡칠 거 같아요./ 짜증날 거 같아요./ 나 같으면 죽여버리고 싶어요."

"규석이는 지금 기분이 어떠냐?" 하니 "짜증나요."라고 하네요.

음... 그래서 이렇게 어머님께 말씀드리는 건, 규석이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집에 가서 이야기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데 기분은 매우 상해있을 테고... 어머님께 본인의 짜증과 화를 더 표출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혹 규석이가 돈 잃어버린 사실을 이야기할 때 가족 중 누군가가 '그러게 지갑을 왜 책상 안에 두니~'하는 말을 하게 되면 규석이는 기분이 더 나빠지기만 할 테니 이게 저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아주 큰 돈은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요. 이런 상황에서는 잃어버린 돈을 찾는 '사실적인 해결'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우리 반에 와 있었다던 다른 반 아이를 찾는다 해도, 그 아이들을 데려다가 "너희가 돈 가져갔니?" 해봐야 순순히 "네, 저희가 가져갔어요."할 리도 없고요. 이럴 땐, 즉 사실적인 해결은 하지 못하더라도 규석이의 심정을 풀어주는 쪽으로 해결(?)을 해나갈 수도 있어서, 종례 때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을 하긴 했습니다만, 규석이 표정이 완전히 편안해진 것 같진 않았어요. 내일 시간 여유가 있으니, 다시 규석이와 1:1로 이야기 나눠볼까 생각 중입니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서 어머님도 당황스럽지는 않으신지요. 어머님 역시 기분이 언짢으실 것 같고 저도 기분이 언짢고 찝찝하고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이 짜증도 좀 나고요. 어머님은 어떠신지요.

[어머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이런 일이 있었군요^^

제가 밖에 나와 있어서 규석이랑 통화만 했는데(선생님 문자 보기전입니다)‘날씨가 더웠구 집에 왔다’고만 얘기해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규석이랑 다시 통화해보겠습니다^^

한 번씩 이런 일을 겪게 되더라구요..

앞으로 좀 더 조심하는 계기가 되겠지요*^^*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담임]

어머님께서 상황을 여유롭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서 저는 안심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규석이에게, "왜 지갑을 서랍 안에 둬서 이런 일이 생기게 하니?"/ "지갑은 네 몸에 가지고 있었어야지."라고 말씀하실 어머님이 아니시라는 생각에 더 안심되고 든든하고요. ^^

[어머님]

방금 규석이랑 다시 통화했어요. 체육대회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다 올 줄 알았는데 일찍 집에 온 것 같아서 돈 잃어버려서 일찍 왔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라네요. 누군가 자기 자리에 있었다고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애가 가져갔다고 생각할 수는 없잖아.’ 하네요.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담임]

규석이가, 짜증이 많이 날 텐데도 상황을 합리적이고 넉넉하게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참 듬직하네요. 낼 만나면 이 부분을 꼭 칭찬해야겠어요. 이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어머님]

선생님^^ 신경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담임]

에고, 도난 사건 일어나면 참 찝찝하고 난처하고, 당사자와 부모님께 괜시리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드는데 어머님께서 이리 넉넉하게 이해해주시니 제가 더 고맙고 안심되지요.

전에 뵈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어머님의 여유와 깊이가 규석이 역시 그런 사람으로 자라게 해주는 것 같아서 저는 어머님이 참 든든하고 신뢰가 갑니다.

아들 키우는 모범 사례로 어머님의 이야기를 학급 부모님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진심으로요.

[어머님]

별말씀을요^^

아이의 마음까지 생각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담임]

좀 쑥스러우신가 봐요. ^^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수용해주시는 부모님들의 아이를 보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본인 삶에 주도성을 발휘할 줄 알고, 사회성도 좋더라구요.

제가 보기에 규석이와 어머님이 그리 보이셔요.

[어머님]

(비행기 이모티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담임]

하하. 어머님 센스 짱이에요!!

[어머님]

편안한 저녁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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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규석이를 만나

'어머님께 이야기 들었는데, 규석이가 상황을 참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무척 넉넉해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감사합니다.'하며 인사를 하는데, 어제보다는 한결 차분한 표정이었다.

도난 사고를 사실적으로 해결하기 힘들 때에는

이런 식의 심정적인 해결도 한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