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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호. 우유갑 정리하기

홍석연(봄) 2021. 5. 12. 10:49

김미영 (우리)

며칠 전 빈 우유갑이 뒤집혀져 있는 걸 보고 조금 짜증이 났다. 한 두 번이 아니다. 우유당번 아이들이 우유갑을 원래대로 세우니 조금 남은 우유가 쏟아져 바닥에 얼룩이 진다. 우유 당번 아이들에게 닦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

급식실 가기 전 줄 서 있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나- 얘들아, 자리에 앉아 줄래?

아이들-(긴장하며 우르르 자리에 앉는다)

나- 선생님이 할 말이 있어. 우유갑 때문이야.

아이들 몇 명이 장난을 친다.

나-성준아, 영민아, 지금 선생님이 할 얘기 있는데 들어줄래? 너희들이 내 얘기를 안들어 주는 것 같아 좀 속상하네.

성준, 영민-네

나-우유를 먹고 우유갑을 바르게 두지 않고 던지는 친구가 있나봐.

지성-전 바로 뒀는데

나-넌 바로 뒀는데 선생님이 전체 앞에서 얘기하니까 억울했겠다.

지성-네

나- 지성이는 안그랬겠지만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친구들에게 부탁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들어줄래?

지성-네

나-뒤집혀져 있는 우유갑에서 우유가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바닥에 얼룩이 생기겠지? 우유가 조금이지만 지금처럼 여름이면 나무틈 사이에서 썩을 수 있어. 그럼 냄새가 고약하거든. 작년에 선생님 교실에서 그랬던 적이 있었어. 그래서 걱정돼.

아이들-(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그리고 우유 당번 친구들은 어떤지 궁금해. 직접 얘기 듣고 싶네. 재영아, 너는 우유갑 뒤집혀져 있을 때 어때?

재영-짜증나요.

나-짜증나는구나. 하은이는?

하은-귀찮아요. 힘들었어요.

나-귀찮고 힘들었겠다. 얘들아, 재영이랑 하은이 이야기 들어줘 볼래?

아이들-짜증나고 귀찮고 힘들었겠다.

재영, 하은 - 응

나-선생님은?

아이들- 걱정되셨겠어요. 짜증났겠어요.

나-고마워. 걱정되고 조금 짜증났어. 너희들이 재영이, 하은이를 생각해 주면 좋겠고 우리 교실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우유갑 바로 둘 수 있겠어?

아이들-네

나-이렇게 부탁 잘 들어 주니 샘도 기분 좋다. 내일부터 꼭 실천해 보자.

아이들-네

나-그리고 우유 안 먹는데도 이야기 들어 준 친구들 고마워. 밥 먹으러 가자.

아이들-^^

지적을 감정표현으로! 늘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주일 후

내가 얘기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 우유당번에게 '요즘은 우유갑 바르게 세워져 있어?' 하니 '네' 한다. 일주일동안 계속 그랬냐니까 그랬단다. 내가 그럼 ‘편하겠네?’ 하니 ‘네’ 한다. 친구들한테 어떤 마음이 드냐니까 고맙단다. 선생님한테는? 감사하다고 한다.

나도 기쁘다. 놀랍다.

1교시 시작 전에

나- 우유당번한테 확인하니 너희들이 일주일 동안 우유갑을 제대로 두었다며?

아이들 – 네

나- 우와, 어쩜 그렇게 실천할 수가 있어? 사람이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는데 너희들은 선생님 얘기 듣고 따라준 거네.

창호-선생님이 냄새난다고 하니까 지켜야겠더라구요.

나-내 말 듣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구나. 선생님도 말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고맙다. 우리 반 친구들 멋지다.

내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기꺼이 따라주고 지키려는 아이들에게 고맙다. 오늘 아침에 몸은 무척 피곤했는데 마음은 가볍고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