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현 (우짜)
우리 반에는 보라색 작은 상자가 있다. ‘내 속마음 상자’이다. 아이들은 하루를 보내며 화났던 일, 미안한 일, 칭찬하고 싶은 일,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상대에게 짧은 편지 형식으로 쓴다. 그러면 종례시간에 상자를 열어 마음비우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한다.
쪽지 1 “진영아, 너가 선생님 앞에서 머리를 때려서 나는 너무 당황하고 기분이 나빴어. 앞으로는 머리 때리는 것 안 해 줄래?” - 현빈이가
나 : 현빈아, 진영이한테 화가 많이 났나보네. 더구나 선생님 앞에서! 진영아, 너는 듣고 어떤데?
진영 : 흐흐흐(멋쩍고 미안해하는 눈치다)
나 : 미안한가보네?
진영 : 흐흐흐
나 : 왜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멋쩍어?
진영 : (갑자기 일어나 현빈이 쪽으로 걸어가 어깨를 툭툭 친다) 미안해.
쪽지 2 “얘들아 우유 곽 버릴 때 바르게 놓아줄래? 어제도 우유가 바닥에 흘러서 내가 치웠어. 부탁할게.”-비공개-
나 : 우유 흐른 걸 치운 사람이 썼나보네? 그런데 비공개네? (눈치가 은지다.)
은지 : (눈이 마주치자) 애들이 자꾸 우유 곽을 던져서 넣어요!
나 : 은지는 우유당번이라서 그런 모습 보면 싫고 짜증나겠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은지 : 네, 제발 우유 곽을 제대로 놓았으면 좋겠어요.
나 : 얘들아 은지 말 듣고 어떠니? 찔리는 사람 있겠네?
아이들 : (웃는다. 애들은 찔리면 웃는 것 같다.)
나 : 이제 바로 넣을 거지?
아이들 : 네~~
나 : 약속 지킬 거야?
아이들 : 네~~
쪽지 3 “영주야, 넌 정말 공평한 것 같아. 사회 시간에 모둠별로 게임할 때 규칙도 잘 지키고 모둠 아이들 의견을 골고루 잘 들어줘서 정말 공평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 고마워.”-익명-
나 : 영주야, 네가 평소에 친구들의 입장을 두루 살피는 게 사회 수업 게임할 때도 돋보였나보네? 샘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거 쓴 친구 누군지 눈이 진~짜 밝네.
다은 : (실실실 웃으며) 그거, 사실 제가 썼어요.
나 : 다은이가 관찰능력도 좋고 친구 칭찬하는 마음도 진짜 최고네!! 그렇지 영주야?
영주 : 네, 다은이가 다른 친구들도 칭찬 많이 해줘요.
나 : 영주가 다은이까지 칭찬해 주니까 캬~ 우리반 훈훈하네? 안 그래 얘들아? ^^
아이들 : 네~
항상 종례가 길어지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속마음 상자를 꼭 열어보자 하고, 읽는 동안 다른 이야기를 서로 못하도록 한다. 반에서 갈등이 매일매일 벌어지지만, ‘그래도 이렇게 비우니 쌓이지는 않겠지~’하는 소망으로 흐뭇하고 기특하게 여기면서 보고 있다. 작은 상자 속에서 아이들의 화도 미움도 고마움도 미안함도 모두 보석이 되길 소망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서로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 같고, 쌓아두지 않고 그 때 그 때 표현해서 학급이 풍요로워 질 것 같다.
쓰고 보니 우리반 학급살이가 담담하게 보인다. 아이들이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반갑다.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반이 되면 좋겠다. 매일 ‘내 속마음 상자’를 통해 마음비우기와 칭찬하기, 부탁하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 것 같고, 내가 꾸준히 본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표현한 것이 쌓여가는 것 같다. 마음리더십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주고 받는 관계가 되면 참 좋겠다. 아무도 소외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기처럼 꾸준히 기록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싶은 생각도 드니 스스로에게 아쉽고 애가 쓰인다. 한편으로는 ‘바빴지? 힘들지? 즐겁게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자.’ 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소망이 있으니 조금씩 그리되리라 믿으며 끈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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