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배 (달콩아빠)
난생 처음 119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행히 이석증이라는 진단에 안심하며 쉬고 있던 저녁에 갑자기 병실에 나타난 딸. 가방을 내 몸에 집어던지더니 “이게 뭐야?”하며 운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반가우면서도 미안하고, 고마우면서도 아프고, 애틋하면서도 미운 딸 달콩.
“우리 딸 아빠 좋아하나 보다!”
대답 없이 울음을 그치더니 갑자기 가방을 연다.
팥빵, 크림빵, 이름 모를 빵들. 포도쥬스, 꿀차, 요플레, 삶은 계란 등등을 잔뜩 꺼내놓는다.
나: “뭐가 이렇게 많아?”
딸: “만원도 안 들었어!”
나: “니가 좋아하는 것들 아니가?”
딸: “다 아빠 좋아하는 거야! 이거만 던져주고 갈라했는데...”
또 운다.
나: “우리 딸 아빠 좋아하는 거 맞네. 그럼 좋다고 말해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갔다.
한 달 전 아내와 아들이 3박 4일간 어디론가 떠난 날.
자고 있는데 딸이 안방으로 온다.
나: “왜?”
딸: “무서워.”
나: “16살이나 먹은 애가 뭐가?”
딸: “좀 있다 갈게.”
나: “혼자 자는 게 난 좋아. 니 방 가!”
딸: “오늘만...”
아침에 일어나니 곁에 그대로 있다. 다음 날도 그랬다. 질풍노도가 시작된 5학년 이후 거의 처음으로 곁에 와서 잤다. 아내와 아들이 돌아온 이후에도 거실에서 자는 아들과 내 곁에 멀찍이 드러눕는다.
나: “여기서 자려구?”
딸: ......
나: “더워서?”
딸: ......
나: “선풍기 있잖아?”
딸: “여기가 시원해.”
그렇게 여름 내내 거실에서 셋이 잤다.
몇 년 동안 딸이 내게서 멀어졌다고 느낄 때 달콩이를 생각하면 아프고 미안하고 슬펐다. 달콩이를 위해서 체면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난생 처음 해본 것이 너무나 많을 정도로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왜 아프고 미안하고 슬픈 마음이 더 크게 올라올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린 딸이 더 클 때까지 내가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을 오래 가지고 있었나 보다. 상황은 바뀌었고, 나는 건강하게 옆을 지켜줄 수 있고, 어쩌면 내가 없으면 오히려 더 잘 살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아픔과 슬픔이 이런 착각에서 왔다 생각하니 편하다.
더구나 이젠 다시 편안하게 때론 살갑게 다가오는 게 보이니 안심되고 반갑고 기쁘다. 앞으론 딸을 떠올려도 기특하고 대견하고 고맙고 이쁘고 웃기고 뿌듯한 맘이 더 크게 느껴지겠다. 또 어느 때는 짜증나고 화나고 답답하겠지만... 적어도 슬프고 아프고 미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보면 아들은 텐트(?)를 심하게 쳐서 이불이 솟아있고, 딸은 가슴이 봉긋하다. 불쑥 큰 달콩알콩이의 아버지로 있는 내가, 낯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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