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남 (나무)
우리 반 H는 머리가 똑똑한 편인데 종이나 서류 등을 잘 챙기지 못한다.
수행평가와 같은 것들은 특히 챙기기 귀찮아하고 싫어해서 주변의 아이들이 챙겨주고 많이 도와주는 경향이 있다.
며칠 전에도 결석계를 제출하라고 세 번 정도 말했는데 계속 잊어버렸다.
나도 답답함이 쌓였다. 반장인 미연이는 특히 아이들을 잘 챙겨주는데 때론 H가 스스로 챙기지 않을 때 속상해하고 조금 짜증도 내는 듯 보였다.
오늘 행정실 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미급식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세 번 이상은 얘기했는데 그 때마다 "아 맞다." "이따가 낼께요." 하길래 나는 낸 줄 알았는데 웬걸 안내고 있었던 것이다.
11월에 급식을 먹는지 여부를 행정실 샘께서 메시지로 물어오신 것이다.
내용을 보니 H에 대해 답답하고, 이참에 지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불러 이야기를 했다.
H : (약간 긴장, 쭈뼛) 샘 저 왔어요. 제가 뭐 잘못했나요?
나 : 응(공감 안함ㅋ), H야 행정실 샘께서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것 좀 볼래?
H는 빠르게 읽는다. 그리고 약간 당황해하고, 미안해하는 듯 보인다.
나 : H야, 전에 너에게 내 기억에는 3 번 이상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나는 행정실에 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구나. 게다가 오늘 이런 문자까지 받으니 힘이 좀 빠져. 힘이 빠져. 음, 이제 챙겨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기도 해. 내 말 듣고 어때? 여기 좀 앉아보렴.
의자를 당겨 앉는다.
H : (고개를 숙이며)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 : 그래, 나한테는 죄송하고... 그 얘기 들으니 좀 더 편안해진다. 너 스스로는 어떤데?
H : 스스로는... 좀 제가 종이 같은 것을 잘 못챙겨요.
나 : 응. 좀 자책이 되는 거야?
H : 가려고 하면 야단맞을 것 같고... 피하는 것 같아요. 회피.
나 : 야단맞는 게 싫구나. 귀찮기도 하고.
H : 네... 근데 기다리고 계실 줄을 몰랐어요.
나 : 그러게. 그 샘은 어떠셨을 것 같아? 기분이?
H : 신경쓰셨을 것 같아요.
나 : 그래, 궁금도 하고, 답답도 하고, 신경도 쓰이셨을 것 같제?
H : (끄덕)
나 : 나도 너가 스스로 잘 챙겼으면 좋겠어. 이제 말씀을 드려야겠지?
H : 네
나 : 지금 수업 종 쳤으니까 마치고 바로 내려가서 10월의 사정도 말씀드리고, 너를 이해받을 수 있게 11월에 어떻게 할지도 말씀 드리렴.
H : 네.
(일어나며 나가려다가)
H : 샘, 저 사탕 먹어도 되요?
나 : H야~ 지금 그 분위기 아니거덩~
이 상황에서 사탕이라니 당황스럽다. 귀엽고 천진스럽기도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어서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돌아보니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대화 마지막 부분 ‘나도 너가 스스로 잘 챙겼으면 좋겠어’ 한 뒤에 ‘이제 말씀을 드려야겠지. 지금~ 말씀드리렴’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하라고 결정하고 지시한 것 같아서 아쉽다. ‘이 문제에 대해 너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고 물어 스스로 해결을 찾아가도록 돕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또 공감하는 것도 잘 안되어서 아쉽다.... 흐흐
야단 맞을까봐 피한다는 아이의 가기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알아주면 어땠을까.
사탕은 자주 와서 먹는 편인데, 날 찾아올 때 단지 사탕 먹고싶은 마음 뿐일까? 그 마음을 물어보고 알아주면 어떨까?
새로운 건 H가 귀찮거나 잊는 게 아니라 야단맞는 게 두려운 거였다는 것.
음, 새롭다.
내 짐작대로 철썩 같이 믿지만 아이는 아이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래, 있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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